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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티 Greentea Jan 28. 2020

빛나는 일상의 단면들과 한 가지의 꿈으로 완성되는 삶

삶을 보여주는 것에서 나아가 비로소 얘기하다, 영화 <작은 아씨들>

시트콤을 좋아한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다채롭게 만들어가는 삶의 유쾌한 모습들. 우리와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기 때문에 더 좋고 재미있다. 100부작이 훨씬 넘는 그 일상들은 정말 감칠맛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복작복작하고 애틋한 그 일상들이 부럽기도 하다. 심지어 시트콤은 보는 방식조차 우리 일상과 매우 잘 어울린다. Sit-com, 그저 편하게 TV 앞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즐기면 된다. 여러모로 시트콤은 우리와 제일 밀접하게 닮아 있는 장르임에 틀림없다. 개인적으로도 MBC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돌려보곤 한다. 아직까지도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일상들, 메시지들이 애틋하고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이렇게 나는 지금까지도 사소하고 작지만 생생히 살아있는 이 일상의 힘을 나는 믿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런 일상의 힘들이 모여 빛을 발하는 또 다른 작품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영화 <작은 아씨들>이다. 2월 12일 국내 개봉 예정인 <작은 아씨들>을 CGV 2020 아카데미 기획전을 통해 미리 만나고 왔다. 사실  <작은 아씨들>의 캐스팅을  처음  보고  나서  그저  팬들이  만든  가상의  캐스팅인  줄 알았다. 2018년 강렬한 화제작으로 주목을 받았던 영화 <레이디 버드>를 연출한 그레타 거윅 감독, <브루클린> 시얼샤 로넌, <해리포터> 엠마  왓슨, <미드소마> 플로렌스  퓨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티모시 샬라메까지, 앞으로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황금 캐스팅이다. 감독부터 배우들까지 훌륭한 조합인 만큼 영화도 그만큼 잘 나왔으리라 기대를 가득 안고 관람했고, 역시 영화는 그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와 줬다고 생각한다.


영화 <작은 아씨들>은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 소설가 ‘루이자 메이 알코트’가 쓴 소설이 원작이며 앞서 1995년 이미 영화화된 적이 있다. 그 당시에도 소니 픽쳐스가 제작을 했었는데, 2020년 개봉하는 이번 작품 역시 소니 픽쳐스의 작품이다. 줄거리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영화를 보기 전에 꼭 1995년 작품을 먼저 보고 가기를 추천한다. 미리 원작의 인물에 대한 정보를 알고 가면 영화를 더 수월하게 잘 즐길 수 있고 비교하는 재미도 상당히 있을 것이다. 이번 작품도 역시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그리고 이웃집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가 만나 인연을 쌓아가고 함께 성장해 나가면서 일어나는 유쾌하고 가슴 벅찬 일상들을 담은 영화다.      



<작은 아씨들>의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일상’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작은 아씨들>의 60%가 인물들이 서로 부대끼며 함께 유쾌하고 따뜻한 일상을 그려내는 내용이다. 자매들만의 연극을 만들고, 밥을 먹고, 거리를 걸어가고, 밤새 수다를 떠는 평범한 그 일상 속에서도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인물 하나하나의 개성을 놓지 않았다. 역시 감독의 디렉션과 배우의 소화능력이 빛을 발한 것이겠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라인뿐만 아니라 대사, 목소리 톤, 눈빛 등 세심한 요소 하나하나도 그 인물만의 고유성을 톡톡히 살려냈다.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신념들을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얘기하는 장면도 있지만 작은 일상의 한 단면과 행동 하나하나를 통해서도 제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또한 감독의 정교함을 엿볼 수 있었다. 1995년 작품은 그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내용을 시각적으로 옮기는 것에만 중심을 두었다면, 이번 작품은 그레타 거윅만의 섬세한 숨결과 정교한 시각을 불어넣어 더 풍부한 감정과 따뜻한 감성이 추가된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매들의 일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현대의 시각으로 <작은 아씨들>을 시트콤이나 드라마로도 다시 리메이크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두 번째 키워드는 바로 ‘꿈’이다. 영화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한 가지의 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꿈들은 서로 다르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신념도 확고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두운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자매들은 주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나서고 그 과정 또한 뭉클하고 애틋하다. 영화를 보면 아마도 잘 알겠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명도 뒤쳐지는 인물들이 없다. 모든 인물이 살아있고 생기가 있으며 온 몸으로 삶을 느낀다. 아마도 이에 대한 원동력은 역시 ‘꿈’이지 않을까.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는 각자의 꿈과 개성을 소소한 일상 속에 끊임없이 투영하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다. 가끔은 서로 질투도 하고 시기도 하면서 싸우기도 하지만, 이런 자매들의 성장기가 마냥 뻔하지만은 않다.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전체적인 외부적 완성도도 뛰어나다. <작은 아씨들>은 다양한 인물과 사건에서 오는 재미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다양한 요소들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19세기 미국의 남북전쟁의 시대적 배경 속 대략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콩코드 주의 아름답고 광활한 숲, 꽃밭 그리고 과수원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시대 속 인물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앤티크한 건물양식과 자매들의 소소하지만 의미 깊은 물건들 그리고 음식들까지, 소품 하나하나에 정성스럽게 신경 쓴 것이 영화를 보다 보면 확실하게 느껴진다. 배우들의 싱크로율도 정말 훌륭하다. 원작 소설과 1995년 작품 속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인물만의 특성을 시얼샤 로넌, 플로렌스 퓨, 엠마 왓슨, 엘리자 스캔런, 티모시 샬라메 배우가 다시 한번 잘 표현해주었다. 원작 인물의 향수를 그대로 살리면서 배우들만의 아우라로 재해석한 연기들이 정말 인상적이다. 95년도 작품을 보고 난 후에 관람을 하면 아마 배우들의 매력을 비교하는 소소한 재미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모두가 한 편의 소설이다’라는 포스터의 문구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계속해서 맴돈다. 소설에도 주인공이 있고 사건이 있고 결말이 있는 것처럼,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고 나 스스로가 일상 속에서 사건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예측하기는 항상 힘들지만, 결말 또한 나의 손에 달려있다. 그런 불투명한 미래 속 인생이라는 소설을 우리가 계속해서 써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꿈’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언젠가는 그 꿈에 다다를 것이라는 희망으로 오늘도 우리는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작은 아씨들>은 삶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 삶을 얘기하고 있는 영화다. 극 중 인물들을 통해서 잘 나타난 것처럼, 우리가 어느 위치에 있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것이 엄청난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자매들의 입을 빌려 생생히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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