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함이 무기가 되는 세상 속 아이러니, 영화 <조조 래빗>
'Ignorance Is Bliss'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복잡하고 비극적인 속사정을 알고 지내는 것보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보고 싶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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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상, 제44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관객상 등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전 세계를 '조조' 열풍을 일으키며 화제가 된 작품인 <조조 래빗>은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용감하고 대담해지고 싶어 하는 모습이 마냥 귀여운 10살 소년 조조의 시선에서 본 '제2차 세계대전'은 과연 어떤 색을 띠고 있었을까?
영화 <조조 래빗>은 '전쟁'이라는 소재에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합쳤다. '세계 대전'이라는 같은 배경을 다룬 영화 <1917>이 '전쟁'과 '체험'의 서사의 결합이라면, <조조 래빗>은 '전쟁'과 '성장'의 서사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저 독일 소년단에 들어가 남들처럼 총과 칼을 들고 멋있게 싸우는 것이 전부이자 목표인 조조. 그는 전쟁이 그저 일방적인 힘을 드러내는 재미있는 '놀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다다르면서 그런 조조의 세계가 흔들리는 순간, 관객들은 안도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전쟁에 대한 무지함과 열 살 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은은한 순수함이 공존하는 조조의 역설적인 모습은 우리를 웃게 하고 동시에 울게 한다.
<조조 래빗>의 '조조'를 보면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가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
옥희는 아저씨와 어머니의 사랑을 보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옥희는 어머니와 아저씨의 조심스럽고 망설이는 눈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시선은 표면적인 모습이 전부가 아닌,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 어른들의 세계를 단번에 캐치하기 힘들다. 조조도 마찬가지이다. 힘차게 '하일 히틀러'를 외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조조의 순수한 눈빛이 계속해서 맴돈다. 담장 위에서 춤추는 엄마의 모습을 보기 위해 위를 쳐다보기보다는 자신의 위치에서 그대로 보이는 엄마의 구두에 먼저 눈길이 가는 조조의 모습도.
조조 역을 맡은 배우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정말 토끼상이다. 영화의 이름에 걸맞게 정말 토끼를 닮은 배우를 섭외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영화의 분위기에 걸맞은 순수하고 맑게 빛나는 마스크를 가졌다. 심지어 이번 작품이 데뷔작이라고 한다. 조조의 엄마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은 매 작품 기대 이상이다. <결혼 이야기>에서는 이혼 앞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심리를 깊이 있게 표현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당차고 씩씩하고 유쾌하지만 감정적으로는 깊고 촘촘하게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정말 바람처럼 다가와 바람처럼 날아가듯이 순식간에 지나간 영화 속 그녀의 여운이 아직까지도 강렬하다.
영화의 소재와는 반대로 전체적인 연출이 밝고 산뜻해서 그런지 더 아름답고 슬프다.
우리도 한 때 지나온 순간의 조조 래빗이었던 적이 있었고 모든 게 그저 일차원적인 순간이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 건 이제 어느 순간에도 조조가 될 수 없다는 거 아닐까.
하지만 또 모른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새로운 시작 앞에서는 우리는 언제나 조조 래빗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