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 사이의 아름다운 불협화음, <레볼루셔너리 로드>
2020년 최고의 화제작 <1917>을 연출한 ‘샘 멘데스’가 연출을, <타이타닉>의 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을 맡은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관람했다. 감독부터 주연까지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지만 최근 넷플릭스에 업로드된다는 사실을 알고 뒤늦게 발견한 작품이다. 제목만 얼핏 봐서는 마치 웅장한 전쟁영화를 연상시키지만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한 부부의 흔들리는 일상을 고요한 폭풍처럼, 소리 없이 강렬하게 그린 영화다.
서로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무사히 골인한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과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만 이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길면 긴, 짧으면 짧은 인생을 자유롭게 보내고 싶어 하는 에이프릴은 평범한 일상을 뒤로하고 파리로 떠날 것을 제안하지만, 프랭크는 안정적인 직장과 잔잔한 일상을 추구한다. 과연 두 사람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불협화음을 듣고 있는 것처럼, 불안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가시들이 하나하나 다 느껴진다고 할까. 그만큼 영화는 템포가 빠르지 않고 극적인 장면들 또한 등장하지 않는다. 별다른 기교 없이 카메라는 그저 두 사람을 지그시 응시한다. 같은 일상을 살아오고 있지만 서로 다른 삶을 바라보게 된 그 순간, 동상이몽의 미묘한 심리를 담백하고 씁쓸하게 담아냈다.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불안한 단면을 그려낸 이 영화는 ‘물질적 풍요’와 ‘내면의 빈곤’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에이프릴과 프랭크를 통해서 드러냈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질주하고 난 후의 공허함.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니 이제는 자신을 채워야 하는데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날이 갈수록 위선적이기만 한 사람들의 시선과 공감이라고는 없는 유대, 그 속에서 에이프릴과 프랭크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그들을 진정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케이트 윈슬렛은 정말 블랙홀 같은 배우다. <더 리더>와 <원더 휠>에서도 느꼈었던 부분이지만, 극 중에서 무너지는 인물의 감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쟁취하고, 풀어낸다. 오롯이 인물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만드는 그 방식이 관객들을 항상 매료시킨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 수많은 감정들로 범벅이 된 기분이었다. 보는 내가 다 진이 빠졌고,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영화의 후반부에 에이프릴과 프랭크가 싸움을 하는 장면은 마치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니콜과 찰리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서로를 향한 진심과 주체할 수 없는 공허함이 교차되는 그 아프고 아름다운 순간을 이번 작품에서도 느꼈다.
뮤지컬 <컴퍼니>의 마지막 넘버, ‘Being Alive’가 생각나는 밤이다.
살아있는 상태에 대한 가장 고요하고 잔혹한 고찰, 레볼루셔너리 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