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혼은 아름답고 고귀하다. 그것을 잊지마.
제목: 작가 미상
원제: Never Look Away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출연: 톰 쉴링 (쿠르트 역), 폴라 비어 (엘리 역), 세바스티안 코치 (칼 시반트 역), 자스키아 로젠달 (이모 엘리자베스 메이 역), 올리버 마수치 (안토니우스 판 페레튼 역)
독일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이 감독의 데뷔작 타인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었다.
작가 미상. 동독 출신 예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이지만 실존인물을 생각하지 않고 영화로만 보아도 매력적인 영화였다.
쿠르트는 나찌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여섯살 소년이다.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이모 엘리자베스를 따라 미술관도 가고 그 어린 나이부터 누드 그림을 그리고 아름다움에 눈 뜬 귀여운 소년이다. 이모 엘리는 나찌의 인종개량 정책에 따라 정신병으로 진단 받고 국가에 의해 살인 당한다.
나찌가 유태인을 탄압한 것은 알았지만 자기 민족인 아리아 인종한테도 장애,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경우 불임을 시술하고 상태가 심하다고 판단하면 가스실에서 집단 살인을 벌였다는 것은 나도 이 영화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영혼 엘리자베스를 정신질환자로 낙인찍고 가스실로 옮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은 산부인과 의사 칼 시반트다. 그는 나찌에 적극 협력했고 이른바 문제 인간들의 불임수술을 시행하고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핵심 간부였다.
히틀러 시대가 지나가고 동독 서독 시대가 시작하자 칼은 숙청 대상이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로써 뛰어난 실력으로 러시아 군인 간부의 아내의 출산을 도움으로써 다시 한번 신분 세탁에 성공한다. 동독에서도 철저하게 엘리트, 상류층으로 잘 살아갈 수 있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딸이 있다. 바로 엘리다.
쿠르트와 엘리는 예술학교에서 만난 후 만나자 마자 사랑에 빠진다. 칼이 장래가 불투명하고 이모는 정신질환자로 분류되어 죽임 당하고, 아버지는 스스로 자살한 쿠르트를 좋아할리 만무하다. 쿠르트의 아이를 가진 엘리에게 자궁외 임신이라며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 낙태 시술을 한다.
대놓고 이들의 사랑을 반대할 수는 없었지만 교묘하게 이들을 갈라놓으려 한다. 그러나 엘리와 쿠르트의 사랑은 진실하다. 아름답다. 이십대 초반 어린아이들의 불장난 처럼 보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들이 사랑하는 장면은 정말 한편의 고급스러운 누드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랑의 깊이나 아름다움에 나이나 상황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3시간 10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 중간 중간 이들의 섹스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이 삶의 아름다움, 삶의 고통을 승화시키는 둘의 사랑을 핵심적으로 보여주어 매우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 우리는 원래 이렇게 아름다운 영혼이었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어. 우리는 추한 사람들이 아니야. 역사와 상황이 아무리 우리를 짓밟아도 우리는 원래 이렇게 고귀한 영혼들이었어. 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십대인 쿠르트가 어느날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다가 "이제 다 알았어요. 아버지.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어요. 저는 이제 예술가가 안되어도 되어요. 아무것도 될 필요 없어요. 이제 두려워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어요. 이제 다 알았어요"라고 말하는데, 이는 죽은 이모 엘리도 한 말이어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 장면 역시 나는 매우 인상적으로 보았다. 아름다움에서 진실에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는 쿠르트가 본 세계는 모순의 세계가 아니다. 이미 완전한 완성된 세상이었다. 진실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진실은 추하지 않다는 아이러니, 그러니 눈을 돌릴 필요가 없다는 것. 이모가 한 말. 진실에서 아름다움으로부터 도망치지마. 눈돌리지마. "Never Look Away" 가 이 영화의 제목이 된 것도 이해가 되었다.
모든 면에서 쿠르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장인 칼은 승승장구 하면서 이번에는 사회주의의 신봉자로 완벽한 신분 세탁을 하고 국가에서 훈장까지 받게 된다. 물론 나찌에 적극협력했다는 과거가 밝혀질까봐 두려워하지만 타고난 능력으로 잘 살아가며 틈만 나면 쿠르트를 모욕하고 쿠르트와 엘리를 갈라놓으려 한다. 칼을 보호해주던 러시아 군인 고위 간부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더이상 동독에서 보호받지 못했을 때는 망명까지 감행하면서 본인의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는다. 어찌 보면 절대악 같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인물은 독일에 이미 많은 인물이었다.
더리더 책읽어주는 여자의 한나 (케이트 윈슬렛)도 그랬고 더리더의 원작자인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또 다른 작품 "귀향"에 등장하는 아버지 역시 나찌에 적극 협력했다가 미국까지 망명했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교수 노릇하면서 젊은 제자들을 냉혹한 심리 실험 대상자로 삼았는데 칼 역시 그런 사람이다. 히틀러 시대에 히틀러에 협력한 수많은 지식인들 심지어 성직자들은 그냥 괴물이고 절대악이 아니었다. 딸을 사랑하고 든든한 가장이었고 친절한 옆집 이웃이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자유 없이 이념과 권력만 따라가는 자동인형같은 에고 덩어리들이 결국 악 일까? 악은 어쩌면 전혀 주체적인 성격조차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애지 중지 하는 에고 덩어리들이 결국 "참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관념체들의 복합체인 것처럼.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개구리"에서도 중국의 일가족 일자녀 정책에 적극 협력하는 산부인과 의사 고모가 나온다. 고모는 철저한 공산주의 집안의 딸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공산정권에 협력하지만 지위를 이용하거나 오만한 사람이 아니다. 가족에게는 엄청나게 따스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섬까지 도망간 9개월 산모를 끝까지 추적해서 사산시킨다.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다.
독일인들의 유태인들에 대한 인종청소 정책, 같은 민족인 아리아인들에 대한 인종 개종 정책이 불과 50-60년전에 자행되었던 일이라는 것이 사실 잘 실감이 안 나기도 한다.
지금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내 부모들이었고 (내가 독일인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였고 그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인권유린이 있었던가) 내 가족이었고 바로 내 모습일 수도 있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쿠르트와 엘리는 이 추악함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삶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한다.
쿠르트는 서독으로 망명한 후 뒤셀도르프 예술학교에 다니면서 자기만의 예술을 하려고 애를 쓴다. 엘리는 그런 쿠르트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아버지의 재정적 도움마저 거절하면서 공장에서 노동하고 아버지가 본인에게 저지른 낙태 후유증으로 인한 불임의 고통을 감내한다. 이들은 본인들이 고귀한 영혼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진실한 삶에서 이미 완전한 아름다운 본인들의 영혼에서 한발짝도 도망가지 않고 눈 돌리지 않고 온몸으로 정면 돌파한다. 타인의 삶에서 드라이만과 크리스타가 그랬던 것 처럼.
쿠르트는 학교에서 스승 안토니우스를 만나 "네가 아는 것. 너만이 아는 것. 너 그 자체"로 작품을 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사진이 나오면서 이미 한 물간 회화라며 당시 독일은 설치 미술이 중심이 된 현대 미술에 열광한다. 변기를 전시해 놓고 "샘물" 이라는 제목을 붙인 뒤샹이 아마도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뒤샹은 뒤샹의 예술을 했지만 쿠르트나 학생들은 그런 뒤샹과 비슷해지기 위해 독특하고 이상한 작업에 매달린다.
쿠르트는 내가 아는 것. 나 자체가 무엇일까 하며 끊임없이 고민한다. 하루 세시간씩 계단 청소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작업실에서 텅빈 캔버스를 응시한다.
그러다가 사진으로 작업을 하게 된다.
사진 모사. 참으로 뒤떨어진 일같고 초상화나 그리는 거야? 더구나 아마추어 사진의 가족사진을? 친구들은 조롱한다. 아마추어 사진들을 겹쳐서 그리고 프레임을 다르게 하고 빛에 따라 다르게 보이게 함으로써 쿠르트는 자신만의 예술에 비로소 다가선다. 그 이전의 작품을 모두 불태우고 가짜라고 규정하고, 텅빈 캔버스 앞에서 소득없이 지냈던 지난한 시간을 보낸 후 비로소 자신과 진실과 삶과 예술 속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었다.
쿠르트는 여섯살 자신과 이모의 사진, 나찌 장교들의 사진을 함께 빛에 따라 같은 프레임에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는 그림을 그린다. 장인 칼과 이모의 사진이 겹쳐지게도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을 보고 칼이 충격받고 뒤로 물러나는 장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장인을 고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칼은 두려워한다. 이제 더 이상은 쿠르트와 엘리의 삶에 본인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술의 힘이, 진실의 힘이 이런 것일까?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모 엘리를 오마쥬하는 그 장면 공용 버스 여러대에 동시에 경적을 눌러달라고 부탁하고 두팔벌려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그 경적소리를 음미하는 쿠르트의 모습은 미소와 눈물을 동시에 짓게 만드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영혼이다. 이미 완벽하다. 이미 고귀한 영혼이다. 그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라.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말아라. 진실앞에서 눈돌리지 마라. 영화 타인의 삶도 아마도 그런 메시지 였던 것 같다.
이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 안젤리나 졸리, 조니뎁의 "투어리스트"였다는 것이 좀 믿겨지지 않는다. 아마 감독도 자신한테서 도망쳤다가 10여년만에 다시 돌아온 것 같다.
중간 중간 흐르는 음악도 장면도 아름답고 적절해서, 아 소설이 줄 수 없는 영화적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세시간 십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고 나 자신이 정말로 대접받은 느낌을 받게 만드는 영화였다. 하루종일 이런 저런 일에 쫓기고 심신이 힘들었었는데 정말 정신적으로 대접받고 내 원래 본향에 돌아온 느낌을 주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