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곳

by 아침서가

오랜만에 브런치에 왔다. 글을 쓰려고.


내 친구 N이 아프다. 제일 건강하게 생겨서는 제일 자주 아프다. 재작년에도 동정맥기형으로 놀라게 하더니 이제는 암이란다. 자궁내막암. 정기검사를 받는다고 해서 내가 다니는 병원 추천해줄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 받고 폴립 떼어내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암이었다니.


그래도 아주 초기인 것으로 보이니 호르몬 치료를 하면될 것 같다고 해서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리고 지금 알게 된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자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병원 다녀온 얘기를 평소와 다름없이 같이 얘기하고, 또 암환자가 된 믿기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 어떤 것도 당사자의 마음에 비할게 못 되지만 친구 집에 가는 동안 내 마음이 무척 어려웠다.


며칠 후 전이를 파악하기 위한 검사를 더 하고 오늘 결과가 나왔는데 근처에 애매한 무언가가 있다고 했단다. 자궁을 떼어내는 얘기를 했다는데, 출산 계획이 전혀 없어도 쉽게 마음이 안 먹어지더란다. 내 몸에 있는 뭔가를 그냥 없애버리는 게 어찌 쉽겠나. 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2달 유예하기로 했다고 한다.


친구랑은 워낙 어릴 때부터 봐왔고 이제는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 흐르는 일상과도 같은 사이다. 그래서 '암'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내 태도도 늘 그렇듯이 덤덤하다. N의 친구 중에는 펑펑 우는 친구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그냥 아무 일 아닌 듯이 평소처럼 얘기하고 싶었나 보다. 그냥 마음이 덜 울렁이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힘드니까. 아직 같이 울지도 않았고 평소처럼 이야기하고 평소처럼 웃고 있다.


내 SNS는 모두 N이 보고 있으니까 글을 쓸 공간이 필요했다. 브런치는 내가 아직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공간이라서 이렇게 숨을 쉬러 올 수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처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속으로는 많이 힘이 드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나, 무엇보다 속을 앓고 있을 친구 앞에서 네가 아파서 나 우울해. 힘들어. 할 수는 없지 않나. 근데 사실은 일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픈 건 N인데.


꼭 가까운 사람이 이렇게 아파야 가슴 철렁하면서 좀 더 건강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게 헛웃음이 난다. 이제는 마냥 적은 나이도 아니고, 어딘가 조금씩 아픈 게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자궁 내막이 두꺼우니 자주 초음파 검사를 받으라는 얘기를 들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나라고 같은 일이 안 생긴다는 법도 없다. 나라는 사람이 '나는 아직 안 아프니까, 감사하면서 더 내 몸을 건강히 돌보고 힘내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면 오히려 편하겠다.


오늘 하루 너무 울적했다. 수시로 눈물이 나고 3-4시간이면 끝날 일을 8시간은 한 것 같다. 내 마음 잠깐이나마 다독일 수 있는 공간을 비밀로 남겨두었다는 거, 오늘에서야 느낀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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