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평생 편해지진 않을.
한동안 산부인과를 멀리했다. - 출산하고는 상관없으니 부인과라고 말해야 하나? 또 요즘은 여성병원이라고 하더라 - 그래도 나름 주기적으로 받던 검사도 한동안 소홀했는데 피임약에 대한 상담도 할 겸 오랜만에 산부인과를 찾았다.
어렸을 때는 여의사가 진료하는 병원을 찾아다녔는데 언젠가부터는 여의사, 남자 의사 구분하지 않고 그냥 여건에 맞게 근처 병원을 다녔다. 여의사라고 해서 마냥 편한 것도 아니고 또 여의사라고 해서 진료 시 더 조심스레 진찰한다는 느낌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워낙 번화한 지역이라 동네병원처럼 소박한 병원이 없어서 다시 병원을 알아보다가 여의사 병원으로 유명한 00 산부인과를 가보았다. 처음으로 가본 병원인데 들어가자마자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간 이유는 피임을 위한 피임약 상담이 아니라 생리주기를 좀 미루기 위한 피임약 상담을 하러 간 것이었다. 이번 달에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는데 그날 하루 종일 일이 꽉 차 있는 데다,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힘들 것 같아서 조금 미루기 위해 갔다. 그런데 피임약은 지금까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기 때문에 부작용도 조금 걱정스럽고, 먹는 시기 때문에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상담과 처방을 위해 간 것이다.
근데 이거 뭐 병원 입구부터 화려한 입간판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각종 예방주사야 그렇다 치고 한방에 쫀쫀해지는? 주사부터 해서 예비신부 패키지 같은 것들을 보니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들어가니 접수 데스크 직원분들만 6-7명은 되는데 규모가 좀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저런 미뤄뒀던 검사도 같이 할까 고민을 하면서 갔지만 병원 분위기를 보고서 마음을 접었다. 처음 왔으면 아이패드로 접수를 하라고 했다. 음. 이런 거 다루지 못하시는 어른들은 불편하겠다 싶은 생각을 하면서 접수를 했다. 그리고 서류를 주면서 작성하라고 하길래 받아 들고 대기실 쪽을 둘러보니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많았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안내받았다.
다양한 스타일의 여자들이 한 데 모여있다. 갑자기 이 상황, 이 곳이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여자들만 우글우글 한 느낌이 엄청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처럼 받아 든 서류에 작성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비뇨기과에도 이렇게 환자들이 많나? 문득 여성병원이란 여자에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30분 정도 기다리고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뭔가 의사와 대화하는 느낌이 아니고 성형외과에 코디네이터랑 상담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빨리빨리 처리하고 다음 환자를 대하려는 느낌이 너무 느껴져서 불편했다. 내가 특별히 병증이 있어서 치료를 받으러 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한 게 많았는데 반도 못 물어본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부작용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부작용은 잠깐의 적응기를 두고 괜찮아진다고 했고 먹는 시기도 그 날부터 먹으면 된다고 했다. 메스껍거나 두통 같은 부작용이 걱정이라면 자기 전에 먹는 쪽으로 해보라고 해서 밤에 눕기 전에 먹기 시작했다. 그 작은 알약이 무척 무서웠는데 다행히 특별히 느껴지는 부작용 같은 건 없어서 다행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게 은근 부담스럽더라. 알람을 맞춰두었다.
나는 동네의 편안하고 안락한- 그래 봤자 아파서 가는 병원이 얼마나 편하겠냐만은 - 분위기의 병원을 주로 다녔다. 그리고 서울에서 일할 때는 근처에 동부 시립병원을 한동안 다니긴 했지만 그 병원도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이번에 다녀온 병원은 불편한 기분이 많이 들었다. 친구 N이 자기가 가는 병원에 가보라고 자기도 너무 상업적인 분위기의 병원에 갔다가 불편해서 바꿨는데 의사 선생님이 아주 좋으시다고 하면서.
사실 어떤 의사가 좋은지는 모르겠다. 실력 있는 의사면 좋겠지만 그래도 나는 인간적으로 와 닿는 의사가 좋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래도 사람을 대할 줄 아는 의사. 거기다 아마도 평생 가도 편해질 리 없는 여성병원은 아무리 여의사라도 불편하고 뻘쭘하고 민망하니까. 으으.
그저께 친구들이랑 있다가 갑자기 산부인과 진료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 있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고종 동생이 산부인과에 처음 진료받았을 때 느꼈던 당혹스러움을 친구에게 해주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친구 N이 묻는다.
N : 산부인과 가면 옷 벗고 속옷 벗고 고무줄 치마로 갈아입잖아. 너는 양말도 벗어?
나 : 양말을 왜 벗어?
N : 아무것도 안 입고 있는데 양말만 신고 있으면 웃기지 않아?
나 : 섹스하는데 양말만 신고 있으면 웃기겠는데 진료받는데 양말이 무슨 상관인데?
N : 물론 발을 진료받는 건 아니지만 ㅋㅋ 난 아무리 생각해도 양말을 신고 있는 내가 웃겨서 항상 벗는데.
나 : 어떤 느낌인지 이해는 가는데 ㅋ 하여간 너도 진짜 독특하다.
N : 내가? 아닌데? 다 이상하게 생각할걸? 네가 이상한 것 같은데?
서로 네가 이상하다를 따지다가 판가름할 수 없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두 명의 여자가 더 합류했다. 친한 동생 B와 N의 어머니다. 우리는 갑자기 아까 이야기가 생각나서 다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 두 명의 여성이 동시에 대답했는데.
"아니 진료받는데 양말은 왜 벗어?"
친구 N과 나는 뒤로 넘어갔다. 친구 N은 끝까지 양말만 신고 있으면 이상하지 않냐고 주장하지만 별로 먹히지 않았다. 아무튼 이래나 저래나 불편할 수밖에 없는 여성병원 진료. 아파서 가는 거면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그래도 가도 가도 익숙해지지 않더라.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도, 진찰대에 민망하게 누워서 간호사와 함께 의사를 기다리는 그 뻘쭘한 시간도, 난 분명 힘을 뺐는데 자꾸만 힘을 빼라고 의사가 엉덩이를 톡톡 칠 때도. 가끔 막 다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도. 친구 N이 추천하는 그 병원으로 가봐야겠다. 근데 과연 내가 내 신체를 그저 신체로만 느낄 수 있을 때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