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을 읽고.
내가 참 좋아하는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 최근에는 tts로 일하며 책을 듣는 일이 많아서 눈으로 책을 읽는 것이 오랜만이다. 이슬아 작가의 책은 꼭 눈으로 읽고 싶었기 때문에 자기 전에, 조금씩 소중히 읽었다. 나는 책을 읽다가 줄 치고 싶은 문장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 좋다. 문장 자체가 좋아서, 그 문장으로 인해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내 경험이나, 내 생각과 너무 비슷해서.
어쩌면 책을 읽고 줄 그은 문장들을 공개한다는 것은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것을 경험했고, 어떤 것에 매료되는지 들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래도 줄 그은 문장들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거라서 매우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슬아 작가가 글방 선생님을 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모아둔 책이다. 어린아이들, 청소년, 어른들의 글쓰기 수업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글방 참, 너무 좋다. 그런 생각하면서 읽었다.
#
아무리 자라도 한 사람이 천하무적이 되는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새로운 문제로 새롭게 괴로워할 것이고 새로운 만회의 방법을 배워나갈 것이다.
#
거울을 잘 보지 않던 아이가 문득 골똘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서는 날이 있다. 10대들의 교실에서 글쓰기 교사로 일하다 보면 그런 순간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자기 모습이 어떻게 보이든 별 관심 없던 시절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아이는 이제 자의식의 축복과 저주 속에서 한층 더 복잡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 눈에 비친 내 모습과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신경 쓰며, 내가 바라는 나와 실제 나 사이의 괴리를 수없이 느끼며 자라날 것이다. 누구도 그 변화를 늦추거나 멈출 수 없다.
내가 처음으로 브래지어를 착용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그때의 키는 지금의 키와 5센티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성숙해 보이는 편이었는데 그런 성숙한 애들은 이제 점점 2차 성징이 눈에 띄기 시작할 때이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여학생들을 모아 두고 속옷에 대해 얘기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쯤, 피아노 학원에서 연주회가 있어서 드레스를 입어야 했는데 연주회 장소에서 드레스로 갈아입는 중에 큰고모가 새 브래지어를 하나 사 오셔서는 드레스 입기 전에 입어야 한다고 했다. 가슴둘레는 유독 작아서 제일 작은 사이즈를 해도 둘레가 헐렁해서 안 하겠다고 벗어던졌는데 고모는 드레스 속에 꼭 입어야 한다며 억지로 끈을 묶어서 입혀주었다. 속옷을 하나 더 입었을 뿐인데 몽우리 져 아픈 가슴만큼이나 심란했고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
그들 앞에서 생각 없이 해온 말들을 되감기 했다. 그들이 통과하는 시절은 내가 이미 거쳐본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하며, 나보다 어리다고 긴장을 풀기도 했고, 불건전한 말들도 툭툭 내뱉으며, 얼마나 자주 경솔했는지 모른다.
#
우리는 그리움을 동력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글쓰기를 사랑하는 것들을 '불멸화'하려는 시도다. 그런 글은 필연적으로 구체적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대부분 대체 불가능하다. 쉽게 대체 가능하다면 그리움에 마음 아플 일도 없을 것이다.
#
은 선생님은 길고도 구체적인 피드백을 주었지만, 일기장은 바깥에서 일기 속 얘기를 언급하는 법은 결코 없었다. 그는 어떤 어른보다 나를 구체적으로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었다.
이슬아 작가는 어릴 때부터 글을 쓰는 걸 좋아한 것 같지만 어릴 적 일기장을 어떤 독자보다도 성심성의껏 검사해주시던 은 선생님이 가장 작가가 되는 데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 어릴 적에도 일기장을 그렇게 검사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던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일단 내가 이슬아 작가처럼 일기를 쓰지 않았다. 나는 매일매일 써야 하는 숙제처럼 일기를 썼다. (사실 맞지 뭐,) 방학 때는 날씨부터 다 베껴야 할 정도였다. 늘 시간에 쫓겨 있었던 일 몇 줄 쓰기에도 바빴다. 똑같아도 똑같지 않은 하루로 쓸 수 있는 성의가 나한테는 없었다.
6학년 때 어느 하루가 기억난다. 집안의 불화나 내 속의 화나 어지러움을 바깥으로 내보이는 법이 없던 나는 언젠가 한껏 정신 사나운 일기를 썼더랬다. 어느 날 선생님의 폭력적인 모습을 보았고 나는 선생님에 대한 반감으로 직접적으로 쓰지 않았을 뿐 일종의 돌려 까는 일기였다. 대놓고 썼을 리가 있나, 혼날 텐데. 그런데 내가 워낙 돌려서 써서 그런지 선생님은 그냥 질풍노도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 모호하고도 충격적이고 심각해 보이기까지 한 그런 사춘기 학생의 일기라고 생각하셨다. 그때 선생님이 보기에는 아마도 내가 끔찍한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고 뭔가 멘트를 써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기 속에 드러난 나의 심경을 까도 까도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양파에 빗대어 써 주셨던 기억이 난다.
#
어떤 솔직함은 끔찍했다. 비린내 나는 솔직함도 있었다. 솔직함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는 글에 관심이 없어지고 말았다. 솔직한 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지루해서였다. 위험하기도 했다. 모두가 서로의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 지옥 같을 게 분명했다.
한 때는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싶은 글들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조금은 멋지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솔직한 것도 솔직한 것 나름이다. 나는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핑계로 무수한 감정 쓰레기를 입으로 쏟아내는 사람들을 알고 있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
나는 치유를 위해 글을 쓰지 않지만 글쓰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스스로를 멀리서 보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일기장이며 이 블로그며, 별 내용이든, 별 내용이 아니든 나는 왜 글이라는 것을 끼적이며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 적이 있다. 아마 그 답인 것 같아 줄을 그었나 보다. 치유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좋다. 비록 내가 쓰는 글은 1인칭으로 쓰는 글이지만 글로 쓰면서 내 스스로와 거리를 둘 수 있는 느낌이 좋다. 글로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는 감정의 정리가 된 것이기도 해서 그렇다. 머리 아픈 일, 속상한 일을 포함한 모든 격한 감정과도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인 것도 같다. 내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
나는 비수기에 접어들었다. 행사 수입은 뚝 끊겼는데, 지난 계절에 번 돈 때문에 건강보험료는 급상승하고 말았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이 아닌데 건보료가 오르는 지역가입자는 굉장히 두렵다. 마침 건보료가 인상되었다는 고지서를 받았다. 더 열심히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는 것 중에 건보료 만한 것이 없다. 내년엔 더 내더라도 더 열심히 벌 수 있으면 좋겠다.
#
글을 다 쓰고 나면 처음부터 훑어보며 불필요한 접속사를 지우는 연습을 한다. '그런데' '그래서' '그리고' '따라서'와 같은 말들을 가능하면 덜어낸다. 접속사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뉘앙스를 결정해버리기 때문이다. 두 문장의 관계를 섣불리 확정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나는 그 사이의 접속사를 뺀다. 두 문장들의 상호작용을 촘촘하게 설계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지만 어떤 행간은 비워둘수록 더욱 정확해진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걸 읽고 나서 보니 나는 습관적으로 접속사를 많이 쓰더라. 마치 접속사가 없으면 절대 말들이 이어지지 않기라도 하듯이 쓰고 있었다. 지금 쓰는 이 글에서도 나는 접속사를 많이 덜어냈다고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