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선물한다는 것
취미에 관련된 키트를 소소하게 판매하고 있는데 한 고객이 3개를 구매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어서 나는 궁금했다. 소소하게 즐기는 취미생활에 덜컥 한 번에 결제하기는 쉽지 않은 금액이기도 해서 별 게 다 걱정인 나는 판매자임에도 구매자의 주머니 걱정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친구들의 것까지 함께 구매하시는 것이냐고 물어보았고 곧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네. 친한 50대 아줌마들 세 명이서 뜰 예정입니다.
한분은 독서를 너무 좋아해서 님의 블로그를 지금 열심히 정독 중이세요.
편한 밤 보내세요.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싶어서 갖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도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하나를 구매해서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연령대가 좀 있는 층에서 그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고 막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각자가 하나씩 그에 맞는 금액을 지불하고 정당하게 가질 줄 아는 그 여성들이 멋있다고 생각되었다. 그저 3개를 사주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만 사서 공유한다고 한들 내가 모르면 그만이니까. 이런 개념의 문제는 사실 연령보다는 사람 자체의 문제인데도 나는 연령이라는 기준을 세워 '대부분 그렇더라'라는 말로 일반화했다. 이런 여성들이 나의 고객이라는 생각에 기뻐서 조금 벅찬 기분이 되었다.
해야 할 일을 적당히 해 치우고서, 하루 중 적당한 때에 친한 친구끼리 모여서 소녀처럼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시겠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면서 커피도 한 잔 하시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 시간이 무척 좋아 보였고 또 부럽기도 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그런 시간을 갖고 싶지만 친한 친구들이라 해도 같은 취미생활을 하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내 상상 속에서 그려지는 그 즐거운 시간에 나의 작품이 함께 한다는 생각을 하자 내 가슴에 좋은 기분이 은근히 퍼져나갔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기로 했다.
나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책을 선물하기로 했다. 막상 책을 선물하려고 하니 어떤 책을 선물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을 선물하는 것은 폭력과도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취향의 차이가 심하게 나는 책을 선물 받는다면 좀 난감할 수도 있고 선물한 사람을 생각해서 꼭 읽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다면 기쁨보다는 불편함이 더 클 것이다. 근데 나는 책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꼭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선물한 사람의 취향이다 생각하면 그 또한 좋았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진 않다는 것도 아는데 그것 참 어디서 오는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좋은 선물을 하겠다는 의지가 솟았다.
내 블로그를 정독 중이라고 하셔서 내가 어떤 독서후기를 올렸는지 다시 확인해보았다. 분명 읽고 나서 좋았고 그랬기 때문에 후기를 남겨두었던 것인데도 막상 누군가가 내 후기를 정독 중이라고 하니 이 책이 진짜 좋았던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읽어 본 책 중에 괜찮았던, 호불호가 크지 않을 것 같은, 공감할 수 있을만한 그런 책을 골랐다.
1. 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
2.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3. 은유의 <싸울때마다 투명해진다>
이렇게 세 권을 골랐다. 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 은 책 속의 주인공들이 그들보다는 더 연령대가 높긴 해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잔잔하게 스며들 수 있을 것 같아서 골랐고,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은 다소 어둡고 아플 수는 있어도 한국사람의 정서에 잘 맞을 것 같았다. 은유의 <싸울때마다 투명해진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여성이라면 크게 호불호 없이 동조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라 생각했고 개인적으로는 김애란 작가도 은유 작가도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문체를 가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읽을 책은 은유의 <싸울때마다 투명해진다>였는데 읽으면서 문장의 느낌도 참 좋다고 생각했고, 작가의 생각에 따라 내 생각도 많아졌던 책인데 그 시간이 무척 좋았다.
어쩌면 나는 책을 선물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좋은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좋은 시간에 내가 좋은 시간을 조금 더 얹어주고 싶었다. 내 작품과 함께 하는 시간이 그들에게 좋은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게 그 시간을 좀 더 농도 깊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선물이라고 쓰고 욕심이라고 읽으면 될까.
안녕하세요!
세상에!! 실은 오늘에야 보내주신 박스를 열어봤어요.
같이 하실 분들 중 한 분이 해외에 계셔서 한날한시에 모여서 열어보자 하며 고이 보관하고 있었거든요.
모두들 열어보고 감동을 받았답니다.
따스한 멘트가 담긴 글과 보내주신 책 선물은 기쁨 그 이상이었어요.
뜻밖의 책 선물이 이렇게 행복감을 주는군요.
세 아줌마들이 모두 난리였지요.
님의 킷은 처음 마주하는데 여러 모로의 꼼꼼함에 또 한 번 다들 즐거워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쁘게 만들 생각에, 보내주신 세 권의 책을 돌려가며 읽을 생각에 설렘으로 가득하네요.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하세요.
행복한 하루입니다.
끝까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았다고 해서 꼭 기뻐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서프라이즈란 그런 것이 아닌가. 허락도 없이 보내 놓고서 마음에 들었을까, 어땠을까 궁금해하며 설레는 것. 조금은 늦게 답을 받았다. '아줌마'라고 표현을 하고 있지만 그녀들은 소녀다, 소녀. 한 날, 한시에 모여서 함께 박스를 오픈하자고, 먼저 열어보면 안 된다고 약속했을 그녀들. 한 자리에 모여 함께 박스를 오픈하며 예상치 못한 선물을 열어보며 웃었을 그녀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책을 읽고 돌려보고 그렇게 3권을 모두 읽을 때쯤엔 그녀들에게 그 시간이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시간에 허락 없이 내 마음을 걸칠 수 있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