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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닥 Jul 12. 2021

이젠 하다 하다 글씨체까지 신경 써야 해?

유전인가 싶다. 엄마도 악필이고, 나도 악필이고, 남동생도 악필이다.

내 유전자 안에 '글씨를 쓸 때 최대한 펜을 꾹 누른 상태로 손을 덜덜 떨면서 되는대로 써 제낌'이 들어있는 게 분명하다.  집중해서 쓰나 그냥 쓰나 별 반 차이 없는 악필이다.

가끔은 아니, 자주 내가 쓴 글을 읽지 못할 때가 있다.

읽지 못한다는 것은 진짜로 글씨 자체를 못 알아보게 써서 읽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너무너무 글자 모양이 엉망이라 보고 있음 피곤해서 읽기를 그만둔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내가 공부를 못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예습 복습을 잘해야 공부를 잘한다는데 나는 복습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글씨를 잘 써보려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다. ‘펜글씨 교본'이라던가 '글씨 잘 쓰는 법'이런 책들도 사서 한글을 처음 배울 때처럼 따라 써봤으나 유전자의 힘은 강력했다.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짐승도 아니고 사람이 말이야~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게 사람인데 그걸 못 고쳐?라고 말하는 많은 분들! 네네, 당신들 말씀이 맞습니다. 하고자 하면 그깟 글씨체 바꿀 수 있었겠지요. 열심히 노력하면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진심으로 노력하지 않았나 보다. 글씨 좀 못생기면 어떠냐 싶었다. 약간 부끄러웠지만 약간 부끄러운 게 다였다.


그런데 최근 어느 브런치 작가님이 쓰신 <글씨체>에 관한 글에 '글씨에 그 사람의 인격과 성격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라고 댓글이 달려 있는 것을 봤다. 일면식도 없지만 일단 그분에게 나의 인격과 성격은 개차반이라는 건데...


본 적도 없는 분에게 개차반 취급을 당해서 불쾌한 것보다 내가 참 좋아하는 인성 반듯한 내 남동생이 악필이라는 이유로 어디 가서 개차반 취급을 당할까 봐 불쾌해졌다. 단지 글씨를 못 쓸 뿐인데 말이다. 중얼중얼 거리며 댓글을 향해 나도 모르게 변명을 이어갔다. 내 동생은요~대학생활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10시까지 집에 와서 엄마 혼자 일하는 가게 마감하는 거 도와줬고요, 내 동생은요~어학연수 중에 아빠가 쓰러지자마자 바로 귀국해서 병원에서 살았고요,  제 동생은요 또….

중얼거리다가 문득 나를 위한 변명도 해야겠다 싶다. 여보세요! 저는요~~~!



딱히 변명 거리가 생각나지 않는군. 대학생활 내내 술 먹느라 새벽에 집에 들어갔고 아빠가 병원에 계실 때도 서울에서 만화 그린다고 자주 내려오지도 않았다. 흠흠. 그래, 일단 내 글씨 어딘가에는 인격과 성격이 드러 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컴퓨터와 휴대폰으로 대부분의 글을 쓰는 세상 아닌가. 손글씨 따위 누가 쓴담! 예전에 포스트잇으로 붙여 놓았던 메모도 지금은 카톡으로 보내면 그만이다. 손글씨로 안 써도 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내 인격을 들킬 일 없이 오늘도 컴퓨터로  주절주절  있어 보이는 글을 폼 잡으며 쓰고 있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엄마의 악필은 논외로 했다. 나의 엄마는 -옛날 옛날 한 옛날  6.25가 끝난 8년 뒤 가난한 시골의 10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하시고, 맏딸은 살림밑천이라 불리는 시대답게 농사일에 바쁘신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을 거둬 먹이고 집안일을 하며 살림밑천으로써의 쓰임을 다 하신 뒤, 이눔의 김 씨 집구석에 시집와 평생을 한량이셨던 아빠의 뒷바라지와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만 하셨-기 때문에 악필이라고 치기로 했다.  많이 못 배우셨기 때문에, 글씨체를 연습할 시간도 없으셔서 악필인 것은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랏? 그렇다고 하면 악필이 유전이 아니라는 건데... 역시 나의 인격과 성격이 글씨체를 만든 것인가? 그럼 내 남동생은 뭔가? 그 녀석 알고 보니 이중인격인가?

아아~생각할수록 엉망진창이다. 글씨체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의미 부여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인 것 같다. 그냥 그 '댓글'을 무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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