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무한도전에서 박명수 씨에게 ‘본인이 가진 것에 비해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진심이었는지 그저 웃자고 한 얘기였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박명수 포함 무한도전 멤버들은 엄청 웃더라.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나도 동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가진 것에 비해 욕심이 많다.
뭐 하나 쉽게 승복하지 못했었다. '만화가'라는 꿈을 좇았으나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면 내 탓을 하기보다 상황 탓이 먼저였다. 내 능력이 모자란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욕심껏 다 가지고 싶었다. 능력에 비해 바라는 것이 많으니 당연히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았고, 그렇게 현실에 하나하나 깨지면서 생각했다.
'생각보다 가진 것이 없다. 근데 욕심이 많았구나. 많이 가지려면 많이 노력해야 하는데 노력도 하지 않고 욕심만 부렸구나.'
서른이 넘어서야 눈치챘다. 나는 많이 가지기엔 턱 없이 게으름을 사랑하고, 게으른 덕분에 많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장착하지 못했다. 그게 꿈이 되었든 돈이 되었든. 햐간 그랬다. 그때부터였다. 맹렬히 나를 비하하기 시작했다. 뭘 해도 남 탓이었던 과거의 나는 사라지고 이젠 뭘 해도 내 탓이었다. 내가 겨우 이만큼이라, 내가 가진 게 겨우 이것밖에 안돼서 요모양 요꼴이라며~비하하고, 비하하고 또 비하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다 본인들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며 안정되게 벽돌집을 짓고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모래성 위에 버티고 서 있는 것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살았다. 마음에 어두움이 깃들었다. 어둠은 내 마음을 갉아먹으며 깊은 구멍을 만들었다. 어두운 구멍이 만들어진 것을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잠’이었다. 머리만 대면 잠들었던 20대의 나는 사라졌다.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극도로 피곤한데도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졸기는 엄청 조는데 정작 깊은 잠은 오지 않았다. 불면의 밤동안 ‘자존감 지키는 법’, ‘나를 사랑하는 법’,’ 상처 받은 영혼을 위로하는 법’ 같은 책을 손에 쥐었고 그렇게 30대를 관통하고 40대를 보내던 어느 날 직장상사 A 씨의 말이 나를 변하게 했다.
그녀는 서울대를 나왔다.
서울대 나왔다는 걸 듣기 전에도 이미 한눈에 봐도 똑똑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서울대, 카이스트, 또 여기저기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을 봐왔지만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총기가 번뜩이는 사람이었다. 학생 때 한 번도 암기라는 걸 하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 번만 보면 다 외워졌단다. 정말 똑똑했고 그런 만큼 일도 무척 잘했다. 가장 큰 단점이라면 다른 사람이 한번 들은 것을 까먹고, 같은 실수를 하면 참을 수 없어했다는 것이었다. 왜 같은 실수를 또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며 화를 많이 냈다. 가난한 사람이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더 많이 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모자람이 있어야 모자란 사람을 이해하는데 그녀는 모자란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그녀가 모자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를 질투하며 속상해하진 않았다. 질투도 레벨이 비슷해야 할 만하다. 단지 그녀의 등장은 나는 왜 어린 시절 '허황된 꿈'을 쫓아서 지금 이모양 이꼴일까, 다른 것을 했으면 나도 모래성이 아니라 벽돌집에 살고 있었을 텐데라는 자학의 삽질로 내 안의 구멍만 더 깊게 만들었을 뿐, 단지 그것뿐이었다.
어느 겨울, 60만 원 가까이하는 겨울 코트를 사고 직장에 처음 입고 간 날이었다. 내 딴에는 옷 한 벌에 큰돈을 써서 후덜덜했지만 그 옷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안 살 수가 없었다. 내 눈에 이쁘면 남들 눈에도 이쁜 법이다. 대체로 그렇다. 다들 호들갑스럽게 이쁘다며~비싸 보인다며~너무 잘 어울려서 십 년은 젊어 보인다며~여자들끼리 꼭 하는 인사치레를 했다. 다들 아실 것이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하는 사회적 인사치레라는 것이 있다. ‘이쁘다, 비싸 보인다, 젊어 보인다’는 출근하자마자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인사와 똑같은 말이다. 인사치레가 오가는 사이 그녀가 갑자기 ‘주말에 남편과 프라다 매장에 가서 패딩을 입어봤는데 얼마나 몸에 착~달라붙던지~살 걸 그랬어요~’하고 말하곤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뜬금없이, 으잉?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부린 허세가 너무 티가 나서였다. 사지도 않았을 프라다 패딩을 굳이 앞세워 말을 꺼내는 그녀의 센 척이 우스웠다. 부릴 때가 없어서 내 앞에서 센 척을 부리는 그녀의 어두운 구멍이 훤히 보였다. 진짜 잘난 사람은 잘난 척이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그녀는 진짜 잘난 사람이 아니었다. 어두운 구멍을 가진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구멍도 없이 잘난 사람은 위인 아닐까? 위인전에 기록될 인물은 백 년에 한두 명 나오는 것이다. 백 년에 한두 명 나오는 위인이 내 주변에 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 말이 계기가 되어 나는 남들보다 못하다고 비하하던 것을 멈추었다. 부러워했던 사람들이 보여주는 ‘좋아요'를 누르게 하는 한 컷 뒤에 수많은 '피곤해요, 짜증 나요, 질투 나요, 화나요'의 어두운 구멍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다. 가진 것에 비해 욕심이 많아 보이는 박명수 씨도, 남들보다 훨씬 좋은 머리를 가진 그녀도, 남의 가진 것만 부러워하던 나도, 알고 보면 각자의 구멍을 열심히 삽질하다, 메우다를 반복하며 하루를 사는 고만고만한 사람인 것이다.
내 마음속의 구멍이 조금씩 메워졌다. 신기하게도 이날부터 잠이 잘 오기 시작했다.
요즘 나는 ‘가진 것에 비해 욕심이 많은 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자랑은 아니지만 딱히 부끄러울 것도 없다. 지구에 사람이 몇 명인데 나 같은 성향의 사람도 있는 거지~뭐 어떠랴 싶다. 머리 좋은 사람, 언변 좋은 사람, 돈을 잘 버는 사람, 로또 맞은 사람 등 남들의 찬란한 한 컷에 ‘좋아요’를 눌러주곤 부러움에 치를 떨며 구멍을 깊게 파고 들어가선 한동안 빛 안 보고 사는 날도 있긴 하지만, 백 년에 한 번 나오는 위인은 제 곁에 없고요. 위인 아닌 사람들끼리 사는 재미가 이런 것이란 걸 알아버려서 이젠 딱히 잠이 안 오거나 그렇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