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뽀닥 Aug 09. 2021

기분 맞춰주는 거 이제 안 하려고

지난주에 배탈이 났다. 남편이랑 똑같은 것을 먹었는데 나만 배탈이 났다. 매운 것에 취약한 위장인데 주말 동안 매운 비빔면에 매운 아귀찜에 매운 김치찜을 연달아 먹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나의 ‘대장’님은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상태가 안 좋으면 바로 표현하신다. 하루의 절반을 나오는 똥과 나올지도 모를 똥을 기다리며 변기 위에서 보냈다.

변기 위에서 사경을 헤맨 뒤 단단히 예민해진 대장님을 달래기 위해 일주일간 노커피, 노밀가루, 노고춧가루 생활을 했다. 덕분에 장은 좋아졌는데(이것은 황금똥인가! 황금뱀인가!) 기분이 많이 나빠졌다(먹는 것이 노동이었다!). 기분이 나빠진탓에 일주일간 만화도 안 그리고, 글도 안 쓰고 농땡농땡 보냈다.

기분이란 게 이렇다. 고작 먹을 것으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연약한 존재다.

기분 좋다고 친절해지고, 기분 나쁘다고 툴툴대고….

이런 연약한 존재를 전면에 내세우고 기분에 맞춰 나는 잘도 살아왔구나 싶다. 그리고 내 기분도 내 마음대로 못 하면서 남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며 그동안 기운을 다 뺐다.


변기에서 사경을 헤매고 보니 알겠다. 정말 중요한 것은 기분이 아니라 기운이다.

나는 지금 기분 낼게 아니라 기운 내야 하는 중년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다. 기운 내자. 기분내다 골병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공에게서 인생의 진리를 배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