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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닥 Oct 07. 2021

위로하시려고요? 공감만 가지고 와주세요

갱년기라 그런 줄 알았다. 요즘 자주 운다. 에세이 읽다가 울고, 친구와 얘기하다가 울고,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운다. 특별한 내용도 아닌데 자주 울어서 그저 갱년기 호르몬의 장난이려니 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겠다. 상실의 아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야옹야옹거리는 내 새끼가 셋 있었다. 고양이 세 마리가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으나 ‘고양이’라는 단어가 이질감이 들 정도로 그냥 내 새끼들이었다. 첫째는 3년 전에 13살의 나이로 신장암과 갑상선 기능 항진증을 앓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둘째는 올해 2월 설을 지내고 16살의 나이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현재 15살의 막둥이 녀석만이 우리 곁에 남았다. 가장 비실비실한 놈이라 제일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널 줄 알았는데 골골 백 년이라더니 용케도 잘 살고 있다.

2월에 둘째를 보내고 하루하루를 어찌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냥 하루가 가니 하루를 보낸 것 같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 시댁 식구들과 통화 중 손윗시누이가 왜 목소리에 힘이 없냐고 물었다. 둘째가 생각나서 그렇다고 하니 석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슬퍼하냐고, 이제 그만 잊고 힘내야지 않겠냐는 말을 해줬다. 나를 위로해주려 한 말이었으나 어쩐지 위로가 안되었다. 그러고 보니 위로란 뭘까?


대학 때 성격도, 감성도 잘 맞아 4년 내내 절친으로 붙어 다닌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짝사랑하는 선배에 관해 얘기하고, d학점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를 의논하며 술을 마셨다. 학점이 빵꾸나고, 사랑에 실패해도 힘들었지만 재밌었다. 인생의 쓴 맛은 아직 우리와 먼 얘기였다. 커피도 소주도 그저 달고 맛있었다.

어느 날 연락도 없이 친구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열흘 뒤 나타난 그녀는 말도 못 하게 초췌한 모습이었다. 같이 살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했다. 노을빛 눈두덩이로 떠나보낸 강아지를 추억하는 친구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너네 강아지는 가족들 품에서 떠났으니 다행이야. 버림받은 유기견들 봐. 정말 불쌍하잖아, 너네 강아지는 걔들보다는 행복했으니 복 받은 거야", "얼마 전에 우리 집에서 고모 돌아가셨잖아. 어릴 때부터 엄마처럼 날 키워주신 분인데...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더라. 너도 괜찮아질 거야." 내 경험을 얘기해주면 딴에는 최선을 다해 위로했다. 더 큰 슬픔과 고통이 있으니 너는 참을 수 있을 거라고, 너는 잘 견뎌낼 거라고. 너의 강함을 믿으라고 위로를 건넸다.


위로(慰勞)「명사」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 - 표준국어대사전


친구는 내 말을 듣고 위로를 받았을까. 아닐 것 같다. 나도 시누이의 말을 듣고 위로를 받지 못했다. 그저 나도, 시누이도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었다. 남들보다 너의 사정은 그래도 좀 나으니 참으라거나, 나도 극복했으니 너도 극복할 거라는 말 어디에도 상대방이 주체가 되는 표현은 없었다. 그 말 어디에도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주는 표현도 없었다. 너를 헤아리기보다 내 얘기하기 바빴다. 내가 하는 위로엔 따뜻한 말과 행동이 결여되어 있었다. '따뜻한 말'은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호응하는 것을 뜻하고, '행동'은 그저 공감의 눈빛이면 된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위로에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나도 나의 슬픔을 오롯이 받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밑도 끝도 없이 곧 괜찮아질 거라는 말 따위 아무런 위로가 안되었다. 괜찮아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나도 예전에 같은 경험을 해서 잘 아는데 너도 곧 극복할 거라는 말도 역시 도움이 안 되었다. 너의 극복과 나의 극복이 같은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괜찮아질 것 같지도, 극복될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미 내 새끼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그저 내가 필요한 것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었다.  둘째가 떠나고 8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나는 위로를 받지 못했다.


시간을 돌려서 노을빛 눈을 하고 있는 친구 옆자리에 다시 앉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녀의 옆에 앉아 그저 그녀의 등을 쓸어주고 싶다. 강아지를 추억하는 그녀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듣고 싶다. 언제까지나 그녀 옆에서 들어주고 싶다. 같은 노을빛 눈으로 그녀를 보면서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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