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고 환장하겠다. 이젠 누런 얼룩이 문제가 아니다. 변기 물이 고여 있는 곳 주변으로 노랗고 거뭇거뭇하게 물때가 끼었다. 물 내려오는 가장자리로 검은곰팡이도 피었다. 영화에 나오는 더러운 공중화장실에 있는 더러운 변기 같았다. 더러워도 정말 너무 더러웠다. 하지만 남편은 그 지저분한 변기에서 잘도 볼일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여전히 청소할 생각 따위 전혀 없어 보인다. 아… 졌다. 내가 졌다. 나는 못 쓰겠다. 정말 저 꼬락서니의 변기 위에 앉기조차 못하겠단 말이다. 남편이 자발적으로 청소하기 전에 내가 먼저 변비로 죽게 생겼다. 당장 락스를 한통 사 와서 쭈그리고 앉아 변기와 욕실 바닥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역시 락스가 최고다. 락스 향기와 함께 변기는 세상에서 제일 반짝이는 흰색을 드러냈다. 남편을 향한 두고 보자는 심보를 품었던 나의 어두운 마음도 락스 향기와 함께 날아가 버렸다. 깨끗해진 욕실이 반갑고 좋았다. 같이 좋아할 남편의 표정을 상상하니 괜스레 기뻤다. 그래, 이런 것이 사랑이지. 내가 좀 희생하며 살면 되지. 남편이 고마워하면 그것으로 된 거지. 퇴근한 남편의 손을 붙잡고 깨끗해진 욕실로 안내했다. 보라! 이 얼마나 깨끗한가! 어서 나에게 감사를 담은 칭찬을 하라!
그러나 남편은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었다. 뭐가 변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욕실이 더러웠어?"라고 말하는 이 사람에게 ‘어디서 개수작이야? 솔직하게 말해!’라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남편은 정말 모르는 눈빛이었다. 하아... 나는 눈을 뜨고 있으나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이랑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제대로 크게 뒤통수를 맞았다. 남편에게 뒤통수를 맞은 게 아니라 내 마음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눈 감은 자에게 이거 보라고 요구하는 마음은 잘 못 된 마음이란 것을 남편의 해맑은 얼굴을 보며 알았다. 그래, 이런 거구나. 안 보이는 자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보이는 자가 치워야 하는 거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다 같이 공유함에 분노를 품지 않는 것,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라는 속담은 부부를 위해 존재했다. 그게 부부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욕실 청소는 내가 도맡아 한다. 남편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기준보다 내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훨씬 높으니 어쩌겠냐, 목마른 자가 우물 파야지.
내가 꾸역꾸역 욕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 남편은 묵묵히 냉장고 청소를 했다. 내 눈엔 보이지도 않던 유통기한 지난 음식이 남편 눈엔 잘도 보였다. 야채 칸에 양배추나 오이, 당근 등이 한 달 전부터 있었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남편은 몇 달 전부터 있었는지 알더라. 냉장고 구석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곰팡이로 덮여 있는 반찬들은 또 어떻게 봤는지 귀신같이 찾아내서 나에게 어떤 실험 중이냐며 되묻곤 했다. 저런 반찬이 냉장고 구석에 있었던가. 내 눈엔 왜 안보였지? 그러던 어느 날 상한 음식인지 발효음식인지 구별도 못하는 코를 가진 내가 아무거나 먹고 설사를 좍좍 쏟아내자 보다 못한 남편이 냉장고 청소를 시작했다. 역시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것이다.
변기의 누런 얼룩이 눈에 보이지 않는 남자와 냉장고 속 곰팡이 핀 반찬통이 눈에 보이지 않는 여자가 그렇게 본인의 목마름을 해소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각자가 서로를 위해 노력한 결과물을 공유한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팠지만 그 우물물을 기꺼이 공유하는 마음, 나는 이것을 ‘가족의 마음’이라 부른다. 연인의 마음에서 가족의 마음으로 우리는 변화되어 갔다. 하지만 이 가족의 마음은 자주 흔들렸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와 품어주는 마음에서 누가 더 목마른 자인지는 수시로 변했다. 감정이란 게 변기의 얼룩처럼 눈에 확 띈다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늘 사단이다. 우물을 파도 알아봐 주지 않으면 기운이 쑥 빠졌다. ‘가족의 마음’은 공짜로 유지되는 게 아니었다.
변기에 또 누런 얼룩이 묻어 있다. 락스를 들고 와 청소를 했다. 남편이 얼룩을 안 만들어주면 더 좋겠지만 누구나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으니 별 수 없다. 더러운 게 싫은 내가 군말 없이 치운다. 하지만 퇴근한 남편을 이끌고 깨끗해진 욕실과 변기를 보여주며 나의 노동을 티 냈다. 눈뜬장님인 남편은 여전히 뭐가 바뀌었는지 모르는 눈치지만 그래도 감사함을 표했다. 그 마음이면 되었다. 우물을 파는 노동의 에너지는 ‘어이쿵~고생했쏘옹~’라는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 말은 ‘가족의 마음’을 지탱하는 에너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