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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닥 Nov 11. 2021

바바리맨을 퇴치하는데 적합 한 ‘사자후’


#1.

중학교 때 민경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커다란 덩치로 호탕하게 웃고, 장난을 좋아하는 친구지만 고도근시라 안경을 벗으면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별 못 하는 친구였다. 그런 주제에 본인은 안경이 안 어울리는 얼굴이라며 수업시간을 빼곤 안경을 잘 쓰고 다니지 않았다.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로 돌아다니니 선생님들을 봐도 인사도 없이 쌩~지나쳐서 안 벌어도 되는 매를 벌었다. 안경이 문제가 아니라 얼굴이 문제니 그냥 쓰고 다니라고 말을 해줘도 잘 믿지 않던 의심도 많던 친구였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그녀는 바바리맨을 만났다. 구석에서 여중생이 오기를 단단히 벼르고 있던 바바리맨은 그녀 앞에 툭~튀어나와서는 바바리를 활짝 열어젖히며 "이것 봐라!"라고 소리쳤다. 안경을 안 쓴 그녀는 ‘이것 봐라’ 라는데 보이는 게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일단 어른이 보라니깐 보긴 해야 할 것 같아서 ‘뭘 보라는 거예요?’라며 눈을 가늘게 찌부러뜨리며 가까이 갔다.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걸걸한 여자 중학생이 목을 쭈욱 빼며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다가오니 바바리맨은 시무룩해하며 돌아서 갔다고 했다. 바바리맨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본 순간 그녀는 바바리맨이 보라고 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너무 놀라서 집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고 했다. 덩치 크고, 목소리 걸걸했지만 여리여리한 사춘기 소녀 민경이었다.

다음날  얘기는 전교에 삽시간으로 퍼졌고 ‘나라면 완전 자세히 봐줬을 것이다, 바바리맨을 무시하다니 니가 너무 심했다, 앞으로 기죽어서 바바리맨으로 활동   텐데 니가 책임져야 하는  아니냐등등 여러 의견으로 나뉘며 한동안 회자됐다. 다음에  만나면 보라고 해서 봤지만  점수는요, 4점입니다라며 큰소리로 외쳐주자며 다들 깔댔다. 혼자 있으면 쫄보지만 여럿일  강철부대 같은 여중생의 시절이었다.


#2.

대학 때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거의 막차 비슷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손님도 별로 없던 버스라 뒤쪽에 둘이서 앉을 수 있는 넓은 좌석의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창 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버스는 정류장을 계속 거치며 달렸고 어느 정류장에선가 어떤 남자가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밤의 버스 창문은 안팎의 경계가 흐릿했다. 창 밖 가게들의 불빛들이 휘황찬란할 때는 세상과 내가 연결된 것 같지만 창밖이 어두워지면 순식간에 버스 창문은 거울이 되어 내 모습만 비추어준다. 나는 약간의 술기운이 담겨있는 내 얼굴을 봤다. 거울 같은 버스 창문은 나를 비추고 내 옆의 남자를 비추었다. 밤의 버스는 낭만이 있다… 고 생각할 때 내 옆에 앉은 남자가 핫도그를 만지고 있는 것이 창문으로 보였다. 그 남자는 핫도그를 오른손으로 움켜쥐고 아래위로 조물 거리고 있었다. ‘핫도그를 저렇게 만지면 손에 케첩이 다 묻을 텐데’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머릿속엔 오른쪽 손바닥에 가득 묻은 케첩이랑 머스터드소스, 그리고 설탕가루가 연상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핫도그가 아니다!!!!!!!!!’가 머릿속에 번쩍 떠올랐다. 번-쩍-!

핫도그가 아니다! 저것은 핫도그가 아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어쩌지? 어쩌지? 더 이상 창문으로 그 남자를 볼 수도, 그렇다고 정면으로 그 남자를 볼 용기도 없었다. 어서 이 자리에서 도망쳐야 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버스 앞쪽만 응시한 채 그 남자를 스쳐지나 운전자 바로 뒤쪽으로 가서 섰다. 그리곤 다음 정류장에서 무작정 내렸다. 내리고 보니 아차 싶었다. ‘여긴 어디지? 바보 아냐? 그 남자도 따라 내리면 어쩌려고 낯선 동네에 내린 거야?’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으나 따라 내린 사람은 없었다. 내린 사람은 나뿐이었다. 집에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무서웠다는 기억만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런 공포는 처음이었다.


#3.

20대 후반 친구 둘과 나는 서울에서 자취를 했다. 어느 날 셋이서 맛집 탐방을 하고 밤늦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지하철은 거의 비어 있었고 우리가 앉은자리 맞은편으로 50대 전후로 보이는 아저씨 한 명이 딱 봐도 술이 꽤 취한 상태로 널브러짐 절반, 앉아있음 절반의 자세로 널브러앉아 있었다. 그 자세로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우리를 계속 보더니 왼손을 잠바 주머니 속으로 찔러 넣었다. 그리곤 주머니 속에 있는 어떤 물건을 조몰락거리기 시작했다. 게슴츠레한 눈은 우리를 향해 고정해 놓은 채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히죽거리면서 말이다. ‘뭐지? 저 아저씨 상태가 왜 저래?’ 처음에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잠바 주머니 속의 손의 위치가 분명 잠바 주머니 속이긴 하나 다리 가운데에 위치 해 있는 것을 보고 ‘어랏?’ 싶었다. 느낌이 빡 왔다. 옆의 친구들에게 눈짓을 했다. 물론, 내가 눈짓하기 전에 친구들도 이미 보고 있었다. 이걸 어쩌면 좋지라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곧 내려야 할 역인데… 저 새끼 한대 까고 경찰 불러? 아님 경찰 부르지 말고 그냥 저 새끼 깔까? 라며 셋이서 속닥이고 있을 때 아저씨... 아니, 변태저씨는 이미 무아지경의 경지에 들어가 있었다. 이미 눈은 어디도 보고 있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시작한 잠바 주머니 속의 손의 조몰락거림은 이제 대 놓고 바지 가운데를 격렬하게 비벼대고 있었다. 어허~~

이쯤 되니 친구들과 나도 딱히 눈으로 당하는 성추행 느낌은 더 이상 들지 않고 오히려 ‘이성을 가진 인간이었던 무언가가 본능에 충실한 자연계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구경하는 구경꾼의 심정이 되었다. 곧 내려야 하는데 돈이라도 던져 놓아야 하나…. 친구들과 같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혼자였으면 정말로 무서웠을 텐데 셋이 함께라 무섭지 않았다. 단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곤란했을 뿐. 지하철이 정차하고 우리는 내렸지만 뒤돌아본 그 아저씨는 아직도 혼자만의 그 어떤 나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시절이 그 변태저씨를 살렸다.


한때 호신술을 익히는 것이 유행이었다. 유도가 좋으니, 검도가 좋으니, 합기도가 좋으니 하며 여기저기 학원들의 호객행위로 들썩들썩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익히고 싶은 무술은 따로 있었다. ‘기’를 모아 큰 목소리로 적들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사자후’다. 서로 몸을 부딪치며 싸우는 무술 같은 건 싫다. 변태저씨들과는 손가락 하나도 닿고 싶지 않다. 그저 ‘사자후’ 한방에 바바리 펄럭이며 날아가는 바바리맨을 보고 싶을 뿐이다. 사자후를 가르쳐 주는 곳을 여태껏 찾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옛날 무협영화를 보면 자주 나오던데 지금은 명맥이 끊겼나…. 중국은 좀 더 무술 고수들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하고 육성시킬 필요가 있다. 호신용 중국산 호루라기보다 훨씬 유용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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