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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닥 Dec 11. 2021

손바닥 뒤집기

요즘 아이들은 플라스틱 공기로 놀지만 저는 어릴 때 흙바닥에서 조그마한 돌을 주워서 공기놀이를 했습니다. 시골소녀였지요. 거칠 것 없이 흙바닥을 헤집고 놀던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다섯 개의 공기를 하나씩, 하나씩 움켜쥐다가 마지막 끝판왕으로 다섯 개의 돌을 손등에 올려놓는 순간이 오면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라도 떨어질까 봐 위태위태했지요. 내가 가진 모든 집중력을 모아 돌이 떨어지지 않도록 한 다음 위로 던져 올리고 손바닥으로 다섯 개의 돌을 움켜쥡니다. 다섯 개 모두 성공적으로 잡았을 때의 짜릿함! 남이 던져준 것도 아니고 나의 손등에서 나의 손바닥으로 움켜쥐었을 뿐이지만 성취감이 밀려옵니다. 어린 나이었지만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내손이지만 내 뜻대로 안 되는 이 위태로운 손등에서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손바닥으로 옮기는 이 행위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실패가 있었는지를요.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결국 저는 해낸 것입니다. 손바닥 하나 뒤집었을 뿐이지만 말입니다.


흙바닥에서 주워 온 돌로 공기놀이를 하던 시골소녀는 자라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세상 풍파를 겪다 보니 주름도 생기고, 흰머리도 생겼네요. 세월과 함께 외모뿐만 아니라 탱탱하던 마음도 구깃구깃 주름져 갔습니다. 주름진 마음 탓인지 어릴 때 없던 불면증 같은 질병(?)도 생겼습니다. 다른 병들도 생겼는데, 고소공포증도 그중 하나입니다. 언제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생겼더라고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하반신에 힘이 그냥 풀려버립니다. 뭐랄까... 하반신이 순간 사라지는 느낌이에요. 하반신이 사라지고 상반신만 남으니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고, 무게중심이 상체에 있으니 아래를 내려다보면 순간 몸통이 밑으로 쏟아져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분명한 건, 20대 후반까지는 고소공포증이 없었다는 겁니다. 여행 가서 절벽 끄트머리에 앉아 사진도 잘 찍었고요, 건물 옥상 난간에 기대서 커피도 잘 마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거칠 것 없던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살아가면서 가슴속 깊숙한 곳에 손등만큼 위태로운 무언가가 생겨났고 그것이 고소공포증으로 드러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증상을 없앨 수 있을까요? 다시 아무렇지 않게 옥상 난간에 기대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제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니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어느 순간 뒤집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마음도 제 손등과 손바닥처럼 그냥 제 것이니까요. 많은 노력과 실패를 하겠지만, 어느 순간 손바닥으로 움켜 쥔 돌들처럼 성공할 수 있겠지요.


우선 주름 사이사이 숨겨져 있는 돌들부터 찾아봐야겠습니다.( '에세이쓰기'는 훌륭한 '돌찾기'의 수단이더라고요. 농땡이 피울때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일 한다고 3주정도 브런치를 소홀히 한 저 자신을 반성합니다.꾸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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