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되는 일도 없고, 기분도 꿀꿀하고 그래서 여름 내내 폐인 비스무리하게 생활했는데 어제 지인이 써준 좋은 글을 읽고 기운이 좀 차려졌다.
기운이 차려지니 꼴도 보기 싫던 이모티콘 작업도 눈에 다시 들어왔고, 글도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뭔지 모르게 힘이 솟아 오르며 웃음이 나왔다. 웃으니 좋았다.
뜨거운 물에 푹~몸을 담궜다가 엄마가 북북~밀어준 묵은 때를 다 벗기고 난 뒤의 개운함 같은 그런 웃음. 그 개운함을 마음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느끼고 싶어 오늘 미용실에 갔다.
지난달에 단발컷트를 했는데 짧은 머리는 한달만 지나도 꽤 덥수룩하게 느껴져서 답답하다. 한달치만큼 자란 머리카락이 나의 개운함을 누르는 것 같았다. 사장님께 한달치만큼 잘라달라고 말씀드리고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한달치가 아니라 몇달치가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보였다. 뭔가 좀 많이 자르신 것 같은데....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집에 와서 마스크를 벗고 거울을 봤다.
크흠...
거울속에는 조선후기 난리통에 부모 잃고, 때구정물 줄줄 흐르는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 누런 콧물을 아이스크림 빨아먹듯 빨아대는 단발머리 여자아이같은 스타일의 중년 아줌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귀밑 5센티도 아니고, 귀 위로 짧게 쳐낸 숏컷트도 아닌, 애매하게 귀 중간쯤 짤린 옆머리는 영락없는 '해방전후 미군이 찍은 조선후기 흑백 사진'에 나오는 어린 여자애 머리 모양 그대로였다.
아~아~님은 갔습니다. 갔다고요, 제 머리카락님은 그렇게 갔고요, 더불어 저의 의욕도 같이 갔습니다.
속이 너무 상해서 컵라면을 국물까지 먹고, 그것도 모자라 내 얼굴만큼 큰 누룽지 하나를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었다. 그래도 속상한게 풀리지 않아서 초코칩쿠키 한통을 다 먹어버렸다. 머리도, 뱃살도 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