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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나무 Jul 11. 2024

기록, 인간다움의 기반이자 본질

티끌모아 태산(泰山)은 못 이룰지언정, 자산(資産)은 된다.

여러분은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고 계신가요? “질문이 너무 어려운 것 같은데요”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 다시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분들은 ”음악이요!“라고 말할 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그야 당연히 TV죠“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정해진 단 하나의 답은 없다는 것입니다. 본 질문에 어떻게 답변을 하느냐에 따라 답변자들이 중요시하는 가치관과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책은 저번 에세이에서 잠시 언급했던 폴 오스터(Paul Auster)의『빵굽는 타자기』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1997년 출간되었으며, 원제는 ‘Hand to Mouth’로, 즉, ‘손에서 입으로’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벌이를 하면서 글을 쓴 그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제목이 아닐까 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입에 풀칠하면서 글쓰기'쯤 될까요? 부제는 이러한 저자의 의도를 더욱 잘 표현하고 있는데, ‘젊은 날의 실패 연대기(A Chronicle of Early Failure)’가 바로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뜻을 지니고 있던 저자는 할 수 있는 모든 허드렛일을 했고, 이 일들은 모두 그가 중요시하는 오직 한 가지 일, 글을 쓰는 것을 위한 자양분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일생이 그의 수기집이 보여주는 것처럼 ‘젊은 날의 실패기’로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불행히도 오스터의 말년 또한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2022년 4월, 그의 아들 대니얼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의 삶에 예상치 못한 불청객과도 같이 찾아왔습니다. 또한, 그의 책에는 적지 않은 마약 중독자들과 삶의 활기를 잃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예리한 관찰력과 뛰어난 글 솜씨로 인물 묘사와 심정을 간결하면서도 재치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문체와 관찰력은 아마도 ‘파리에서의 체류 경험과 문학을 전공하며 습득한 것이 아닌가’라고 짐작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종군기자이며 작가인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가 떠올랐습니다. 그녀의 책들 중 가장 유명한 책은 『War in Korea』로, 한국어판으로는 『자유를 위한 희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녀는 1950년 한국전쟁에 종군 기자로 참전하였고, 전쟁으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틈틈히 그녀가 본 그대로 기록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본 책으로 1951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45세 라는 짧다면 짧은 불꽃같이 살다간 그녀의 일생을 알고 싶은 분들께는 앙투아네트 메이가 쓴 히긴스의 전기 『전쟁의 목격자: 한국전쟁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전기』를 권합니다. 


오늘날 여전히 우리 곁에는 이전보다 많은 책들과 작가들,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더 다양한 글과 책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책들 속에서 인간의 고뇌와 삶이 주는 무게,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글쓰기 하나에 진척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싶으시다면, 주저없이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 일독을 권하면서 폴 오스터다운 대목을 보여주는 문장으로 본 서평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 긴급한 전화를 받은 오스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묻는 주재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합니다.      


“시냐프스키가 망명했어요난 어떻게 해야 하죠?

정보를 추적하세요가야 할 곳에 가고해야 할 일을 하되정보를 놓치지 말고 추적하세요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달라붙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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