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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나무 Aug 03. 2024

강제 이별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일종의 심판식(審判式)

내 방에는 큰 책장이 몇 개 있는데, 요즘 들어 책장에 책이 하나둘 느는 것을 보는 것이 하나의 고통이 되어버렸다.

가령, 예전에는 새로운 책을 얻을 때마다 신나고 기분이 들떴다면, 요즘은 정확히 말하면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책이 하나둘 늘 때마다 나의 수심(水深)은 깊어진다.

마치 지극한 노년의 노인의 주름의 수심(愁心)이 깊은 것처럼. 그래서 ‘강제이별’을 하기로 했다.


쉽게 말해, 책을 이사와 이별로 나누어 일종의 식을 베푸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편은 천국, 다른 한편은 지옥행이라고 해도 무방할까?  

중학생 때 읽었던 위기철 작가의 소설 『아홉살 인생』과는 영영 이별을 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너를 읽으면, 갈기갈기 찢어 불에 태우고 싶을 만큼 실물이 나기 때문이야.


 마치 원미동 사람들을 읽으면 원미동 동네의 각박하고 어두운 이미지가 나를 덮치는 것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아홉 살의 어린이는 상상도 못할 조숙한 생각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박하고 정이 없는 이 이야기의 무대가 이제는 실물이 난다.

이런 점에서 『아홉살 인생』의 주인공 ‘백여민’은 또 하나의 ‘제제’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제제처럼 슈르르까가 필요할지도 몰라.     


안녕, 우리 이제 당분간은 보지 말자.

언젠가 너가 그리워질 때가 오면, 그 때 내가 너를 찾아갈게.

‘절판’이라는 최악의 악수(惡手)만 존재하지 않는다면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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