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審査)는 사적(私的)인 것에 불과하다
참석하지 않으면 죽을수도 있는 위험이 있는 그림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에게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기 때문에 거리가 멀어도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8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가보니 웬걸, 5명이 전부였다. 시간이 되자 잠만보가 말했다. "오늘 하는 그림대회는 장차 화가로 나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첫 시험대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심사위원으로는 어디어디에서 무언가를 맡고 있는 관계자 분들이 하시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미 누가 어떤 상을 받을지는 결정이 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만보와 너구리와 ‘오소리’라고 불리는 덩치가 있고 키가 큰 회색곰, 몸집이 있는 중간 토토로,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배가 나온 판다가 심사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림을 그림으로만 해석하고 그림 안에서 뭔가를 참고해서 그려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어도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마치 2014년 겨울에 열린 제22회 소치 동계 올림픽처럼 말이다. 이 올림픽은 우리에게 노력으로도 열정으로도 절대 이길 수 없는 홈 어드벤테이지(Home advantage)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당시 다수의 신문은 김연아의 은메달 확보가 ‘심판들의 심상찮은 텃세’로 인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그 어떤 대회라 해도 심판은 존재하고 공정하게 하려는 심판이 있는가 하면, ‘홈 어드벤테이지’라는 변수로 자신이 이미 점찍어놓은 사람에게 표를 몰아주는 심판 또한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파인만의 “남이야 뭐라 하건! (지들이 뭔 상관이야)”이라는 명언(사실은 책 제목이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고, 내가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다. 차례가 끝나고 어느덧 대회가 마무리로 익어갈 즈음 잠만보는 참가자들의 그림을 평하면서 그림이란 이러이러하게 해야 한다. 또, 가장 도움이 되는 화가와 문헌은 ‘000이 쓴 그림 개론’을 중심으로 볼 것을 권면했다. 나는 속으로 ‘과연 000이 저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라는 의문과 함께 상상을 해 보았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스라엘로 건너가 한의약을 전공한 회색 오소리(자세히 보면 북극곰을 닮았다)가 그림은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자신있게 자신만의 비법(?)을 공개하기도 했다. 모든 대회 참가자들의 그림 그리기 대회가 끝나고, 대망의 시상식 시간. 특이하게도 우수상부터 지명했다. 역시 나는 아니었다. 최우수상 역시 나는 아니었다. ‘역시 내 생각을 빗나가지 않는군’이라는 생각과 함께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심사위원들이군 대단한걸!’이라는 감탄(甘呑)이 절로 나왔다. 감탄을 했으니, 빨리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대신에 “지금 당장 토를 해야 해(苦吐)”를 외쳐야 하나 갈등했다.
결국 나는 과거 ‘바보 의사’라고 불리던 장기려 박사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인정치 않는 자칭 '그림 판별사'들이 여전히 적지 않음을 실감했다. 세상은 다양하다. 그리고 그 다양한 세상 속에서 다른 면을 배우고 배우기가 싫다면 최소한 알아두기는 해야 한다. 이것이 파인만의 지도교수인 슬레이터 교수의 철학이고, 곧 나의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아마도 장기려 박사님이 살아계셨다면 나를 보시고 “장하다!” 라고 말해주셨으리라. 우리가 잘 아는 시인 윤동주는 이종사촌인 송몽규 문사에게 평소 열등감이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많았으면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했다고 할까. "대기(大器)는 만성(晩成) 이랬어!" 큰 그릇은 무릇 가장 늦게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법이다. 아무도 모르는 시간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금도 여전히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그들이 진정한 대기(大器)요, 거목(巨木)을 꿈꾸는 새싹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