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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나무 Oct 05. 2024

R 에게

바람과 바람이 만나는 자유로운 언덕에서 보내는 편지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어요. 당신에게 먼저 말을 하고 떠나려 했지만 고심 끝에 비트베르크 씨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전할 경향이 없었어요. 당신이 편지에 쓴 대로 사람으로 차고 넘치는 도심보다는 한적하고 양들이 푸른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는 이곳이 지금의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준답니다. 아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만나 알게 되고 가까워진 것을 배제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살다보면 사람보다, 때로는 동물과 식물이, 또는 자연이 더 좋을 때가 있잖아요. 잠시 동안 거리를 두고 바람과 자연과 숲과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안해지듯이 말이에요. 이곳은 틀림없이 당신도 좋아할 거라고 나는 믿어요.

 

이제 막 가을이 시작되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요. 황금빛으로 물든 벼와 밀을 보노라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들이 여기 있다는 확신이 들어요. 제가 어릴 때 들은 이야기에요. 어느 부유한 왕국의 왕비가 한 남자에게 커다란 배와 수하들을 맡기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것’을 찾아오라고 시켰어요. 몇 년이 흐르고 남자는 배에 가득 무언가를 싣고 돌아왔답니다. 왕비는 배에 무엇을 가득 싣고 온 것이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남자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가을에만 볼 수 있는 황금빛으로 물든 벼 이삭이 이 ‘세상에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랍니다”라고요. 그러자 그 왕비는 화를 내며 배에 실은 벼와 양식을 다 가져다 버리라고 했어요. 너무 안타깝지 않나요? 이 세상에서 거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도 결국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알지 못한다는 비극을 보여주니까요. 저는 황금빛 벼들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 편지에 대한 당신의 답장이 궁금해요. 어떠한 이야기를 답으로 할지, 그곳은 어떤 것이 가장 소중한 것에 해당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이제 가봐야겠네요. 지금은 당신의 편지보다 더 간절히 기다릴 수 있는 무언가가 없는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언덕 위에서 제클린 레오나 드림.

 

추신: 조세핀 아주머니의 말을 새겨듣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잔소리 같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죠. 목사님이 전도서 설교 시간에 그런 얘기를 해주셨다니 인상깊네요. 당신은 누가 뭐래도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거에요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을 보고 생각하니까요. 다만 너무 깊이 생각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 문구가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추신을 마무리하고자 해요. 제가 좋아하는 어느 작가가 쓴 소설의 결론부인데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어요.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니 세상은 편안하다” 전5:2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죠. 이 사실이 무엇보다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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