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내면은 겉모습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단순히 누군가와 맞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제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를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상상은 아무 가치도 없는, 공상에 불과하니까. 필자의 이런 생각은 다음과 같은 말로 묵살되고 말 것이 눈에 선하다. “그런 생각을 왜 해?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돈이나 더 벌고 말지”라고 응수하거나 혹은 “말도 안되는 상상 좀 그만하고 네 현실을 봐”라고 비웃음 섞인 냉소로 일관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만약 전자와 후자의 생각을 떠올렸다면 본 질문이 의도하고 있는 바를 지극히 오해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만일 어느 정도 재산도 있고 부족한 것을 못 느낄 정도로 자라온 사람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 이 역시 생뚱맞다고 대응할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다. 현실이 힘들고 여유있다고 해서 슬픔과 괴로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다만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관계와 사건들을 관계와 관계라는 일반통행의 공식으로 해석하지 말고 각도를 살짝 바꿔 일종의 되감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A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A를 A로만 바라보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이름과 출신과 성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은 이런 성향이 강하고 이러이러한 생각을 지녔어 그러니까 이러이러한 사람이겠지’라고 단정짓는 일이 부지기수이고 안 봐도 비디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다음과 같이 풀이될 수도 있다. A의 보이지 않는, 숨겨진 A’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정작 하나도 없다는 말이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당신을 나무라기 위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만약 볼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의 삶은 달라질 것이고 사람들의 삶이 달라지게 된다면 세상을 보는 시야 또한 변하게 될 것이다. JK 롤링의 해리포터 1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보면 소망의 거울(Mirror of Erised)이 등장하는데, 이 거울은 특정 사람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내면의 무언가를 보여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 해리 포터의 소망은 어릴 적 일찍 여윈 부모님과 함께 서 있는 ‘따뜻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본 소설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리는 어둠의 마왕 볼드모트에게 ‘살아남은 아이’로만 여겨질 뿐, 주인공 해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이고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이들은 해리의 친구들과 덤블도어, 몇몇의 조력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그만큼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고,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낸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얼굴과 얼굴을 넘어 내면의 무엇으로 대화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가진 아픔과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따뜻한 소통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