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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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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ut Jan 14. 2016

카페 드로잉 02. 창경궁 근처 어느 카페

추운 기운이 가시기 전, 얼굴에 닿는 바람이 차가워 잔뜩 몸을 움츠리게 되던 2월의 어느 날의 저녁 즈음. 고궁 옆을 따라서 종로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걷다 비교적 사람이 많이 오가지 않는 창경궁 근처의 한 작은 골목에 소박하게 놓인 어떤 카페를 보았다.


사람이 그다지 많이 오가지 않는 거리에 놓인 그곳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화려함과 북적거림을 자랑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작고 구불구불한 골목 사이에 숨고 싶어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을 비유로 표현해보자면 수줍어하는 소녀를 보는 마음과 같았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카페를 밖에서 바라보며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나의 소녀 시절을 잠시나마 마주하는 순간, 나는 그곳에 내 마음을 뺏겨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 카페의 이름을 제대로 보지도, 기억해두지도 못한 채로 황급히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들어간 후에 곧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주문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카페의 이곳저곳에 멍하니 눈길을 주고 있으니 얼굴에 닿는 카페의 따뜻함과 부드러운 조명, 조용한 음악이 마음을 간지럽혔다. 간지러워지는 마음에 감정은 말랑말랑해지고 짙은 커피 향이 내 머리칼의 끝에 배어가고 있을 때쯤, 나는 그 시간을 그냥 보내버리기 아까워 늘 들고 다니는 노트에 그림으로 남겨두었다.


다시 그곳에 가게 된다면 이 그림을 그렸던 날과 완전히 같은 감정을 찾을 수는 없더라도, 그 감정의 조각을 찾을 수 있을까. 비록 그 공간의 이름도, 위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종로 거리를 특별한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는 날이 있다면 나는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아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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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근처 어느 카페에서, 하네뮬레 트래블 저널에 코픽 멀티라이너로 그림.

2015 / 148 x 206 mm / Pen on paper + Adobe Photoshop

©greenut(Hye rye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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