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30. 산정호수~열반곡
바람이 심상치가 않다. 모자랑 장갑을 챙긴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도 어느 길로 갈지 결정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계곡이 있는 길로 가자 싶어 용장마을로 향한다. 차에서 내리면 새소리가 귓속으로 밀려드는 곳인데 조용하다.
활짝 벌어진 측백나무 열매에서 씨앗을 꺼내 본다. 잎은 편백나무랑 비슷하여 구별이 어렵고, 열매가 활짝 벌어지는 건 측백, 둥근 건 편백, 그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씨앗이 의외다. 편백 씨앗엔 날개가 있는데 측백 씨앗은 날개 없이 뾰족한 밀 씨앗처럼 생겼다.
더 남녘에선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이 숲 가장자리에서 가장 이르게 피는 매화조차 조용하다. 꽃봉오리 끝이 이제 살짝 발긋해지고 있다. 계곡으로 내려가 걷는다. 올겨울엔 얼음꽃도 거의 없다. 지난겨울, 성체로 겨울을 나는 남방노랑나비를 만났던 곳이라 혹시나 하여 계속 계곡의 바위에서 바위로 걷는다. 그렇게 한동안 걷다가 계곡을 가로지르는 파란빛을 보았다. 저게 뭐지? 우와와 와, 물총새다!
아, 물총새다. 물총새가 나는 것을 보았는가. 파란빛이 포말 부서지듯 공중에 부서지며 파랗게 반짝인다. 심장이 쿵쾅댄다. 내 수백 장의 물총새 사진과 몇 편의 영상을 보았지만 그것들은 1분도 되지 않을 이 짧은 순간의 두근거림에 미치지 못한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이런 작은 기쁨을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내가 그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린 사람이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내 뇌는 생생한 날갯짓에 즉각 반응하여 심장을 마구 두드려대고 있다.
새는 포르르 계곡을 질러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포르르 날아올랐다가 건너편 나뭇가지에 앉았다. 새의 위치를 확인하고 발아래를 확인하고 바위를 딛는다. 잠깐 고개를 숙인 사이 새가 다른 곳으로 갔을까 불안하였는데 밝은 갈색 배가 보이는 것이 그대로 있는 것 같다. 살금살금, 새는 움직이지 않는다.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이런, 새가 아니라 바랜 나뭇잎이다. 어느새 새는 사라지고 없다.
계곡 한가운데 있는 나 때문에 다시 나타나지 못하나 싶어 서둘러 등로로 올라간다. 차마 떠날 수가 없어 한참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바위 아래로 포르르 뛰어드는 새가 보였다. 반갑게도 굴뚝새다. 굴뚝새는 바위 아래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늘 그렇게 다닌다. 무얼 콕콕 쪼아 먹으며 콩콩거리다가 굴뚝새도 숲 쪽으로 날아가 버리고, 물총새도 다시 보이지 않는다. 아쉽지만 계곡을 따라 걷는다. 발은 움직이고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그 계곡에 남아 온갖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물총새는 여름 텃새다. 간혹 텃새화된 개체가 있다는 소리를 전해 듣기는 했지만 여름에도 보지 못했던 새를 이 겨울 이 계곡에서 볼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다. 위쪽 지방에 있다가 조금이나마 더 따뜻한 이곳으로 내려온 걸까. 계곡은 마르고 그나마 물 있는 곳은 얼고 얼지 않은 곳에도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얼 먹고사는 거지? 어서 날이 풀려야 할 텐데, 어쩌면 좋지. 물총새를 보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걱정을, 걱정을, 산을 오르는 내내 했다.
지난해 어느 무렵부터 산행 전날의 설렘이 일지 않았다. 겨울 숲은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어떤 것을 볼 거라는 기대감이 없어 더욱 그랬다. 그래도 괜찮았다. 막상 숲에 들어오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무엇을 만나 심장은 다시 쿵쿵대었다. 이곳 용장골은 흰배지빠귀와 뾰족부전나비와 겨울 나비를 처음 만난 길이다. 이제 물총새와 굴뚝새까지 더해져 더욱 특별한 길이 되고 나는 길을 걸을 때면 종종 기억할 것이다. 그날들의 설렘과 기쁨과 놀라움을.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생명들을 어느 갈피 어느 구석에서 만났는지 신기할 정도로 또렷이 기억한다. 형편없는 내 기억력으로도 말이다. 그렇게 길에 서사가 쌓이고 길의 서사는 나의 서사가 되어 나를 충만하게 한다.
이렇게 기분이 좋으면 무겁던 몸도 가벼워지곤 하는데 오늘은 날이 차서 그런지 내내 무겁다. 질질, 산정호수까지 느리게 걸었다. 호수는 깡깡 얼었지만 얼음 아래에서는 낮은 비명 소리와 배고플 때 나는 꾸르륵 소리 같은 게 끊임없이 들린다. 바람이 휘익 불자 쩌억 얼음 갈라지는 소리도 보태진다. 살아있는 것들이 내는 소리다. 늘 잔잔한 호수의 생명력은 깡깡 언 겨울에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의 내면도 그럴 수 있다. 마음이 돌덩이처럼 굳었다고 생각하는 날에도 더 깊은 곳에서는 꿈틀거리고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저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호숫가에 서서 나의 소리도 들어본다. 이런, 추우니 그만 가자 한다.
호수를 지나 백운제에서 고위봉으로, 고위봉에서 열반골로 내려간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나는 나무에 별 관심이 없다. 새로운 나무를 만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겨울눈을 보는 것도 심드렁해졌다. 봄이 오기까지는 그 자리를 새가 대신할 것 같다. 오늘은 새도 많지 않아 무심히 걷는다.
피부 한 겹이 벗겨져 나간 듯한 신갈나무 잎사귀를 보았다. 도탑던 면직물이 하늘하늘 레이스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세파에 시달린 섬세한 잎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퇴색하고 바랜 것이 전하는 아름다움을 오래 바라보았다. 잘 늙을 일이다.
츠츠 츠츠 츠츠츠, 꽤나 날카로운 굴뚝새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따라갔더니 과연 굴뚝새가 있다. 이제는 소리도 제법 알아듣는 스스로가 흐뭇하다. 올겨울 굴뚝새를 자주 본다 생각했는데 굴뚝새가 갑자기 많아진 게 아니고 내가 굴뚝새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알면 보이나니'의 법칙으로.
산을 다 내려왔다. 부드럽게 쯔쯔 우는소리가 들린다. 짝짓기 철 노랑턱멧새 소리는 옥구슬 구르는 소리지만 지금은 단조롭다. 웬일로 가까운 나무에 앉아 가만히 있다. 내 핸드폰으로도 제법 선명한 사진이 나와 기쁘다.
계곡에서 이어지는 마을 천변에도 새들이 있다. 건너편 남천 울타리에 모여 있는 새들은 처음 보는 새다. 등은 녹색, 배는 하얗고, 머리는 하얗고 까맣다. 여러 마리가 나뭇가지 사이로 날아다닌다. 모습이 또렷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몹쓸 눈을 탓하고 있자니 새들이 나무 그늘에서 나와 내의 수풀로 내려앉는다. 그래도 멀어 모르겠다. 밝고 배경 깨끗한 곳에 나앉은 새를 최대한 당겨 찍었더니 선명하지가 않아 더 모르겠다. 아, 궁금하다. 너를 알자고 손이 다 곱았다.
집에 와 흐린 사진과 또렷하지 않은 기억으로 열심히 찾아보았으나 얼토당토않게 박새라고 하질 않나, 해오라기라고 하질 않나, 화를 벌컥 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잠들기 직전에야 찾았다. 검은이마직박구리! 사진으로는 몇 번 봤는데 흘려 보았나 보다. 미조(이동 중 길을 잃은 새)였다가 정착하여 텃새화되고 있다 한다. 머리의 커다란 흰색 반점이 매력적이다. 다시 만나면 금방 알아보고 인사할 것이다.
파랑새보다 파란 물총새와 연둣빛 흩뿌리며 나는 검은이마직박구리를 다시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요즘 꿈에서도 새를 만난다. 흰꼬리수리와 고니도 꿈에서 보았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 새에게 홀딱 반해있나 보다. 그러자 새들이 내게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