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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불빛 May 11. 2022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1. 삶의 마지막에 대한 질문


인생에서 단 한 편의 영화를 고른다면 어떤 영화를 볼까?  

죽기 직전 단 한 권의 책을 볼 수 있다면 어떤 책을 펼칠까?

마지막 대화라면 어떨까? 나는 죽기 직전 누구를 만나서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까?


2. 인생의 단 한순간


"당신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무엇이었습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는 영원한 천국으로 가기 전, 중간역인 림보에 도착해서 7일을 보내는 망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지난 삶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은 한순간의 기억을 회상하고, 천국으로 가지 못한 채 림보의 직원이 된 사자들은 영화의 한 컷처럼 그 순간을 재현해 준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과거의 기억을 응시하는 이들도, 그들의 기억을 바라는 이들도 모두 자신이 지나온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3. 빛나는 삶과 죽음


"자 보세요, 또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 <환상의 빛>에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이 기찻길 위에서 자살을 선택한 남편을 생각하며 동네 바닷가를 떠도는 미망인 유미코가 등장한다. 간간이 반짝이지만 보잘것없는 잔물결만 출렁거리는 것 같은 바다는 희망과 좌절, 삶과 죽음 사이에 애처롭게 놓여 있는 인간 그 자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햇빛을 받은 바다 한쪽이 갑자기 빛나는 것처럼 우리 삶도 간간이 반짝일 때가 있다.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이 빛나는 것처럼, 과연 나는 죽음을 맞이할 때도 반짝일 수 있을까?


4.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시대의 지성' 같은 거창한 칭호를 붙이지 않더라도 한 시대와 삶을 살아낸 한 인간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는 것은 귀한 체험이다. 나 역시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덤벼드는' 죽음의 순간을 반드시 마주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 소멸의 순간 내 존재는 얼마나 몸서리치게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치고 싶을까. 내 앞에 세상을 떠난 수많은 사람들은 그 고통의 순간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항상 궁금했고 나라는 사람의 방어기제에 적합한 생각의 답을 찾고 싶었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니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쏟아놓을 참"이지만,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내 말을 알아들을 귀"가 필요할 것이라는 이어령의 마지막 인터뷰를 보며 슬쩍 웃음이 나왔다. '나도 이처럼 죽어가면 좋겠다' 하는 희망을 봤다고 할까? 지혜의 경지를 따지자면 한없이 미치지 못하겠지만, '이 분은 나랑 비슷한 사람이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이어령이 쏟아놓은 많은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 것이고, 진실(진리)라고 인정하지 못할 부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나는 이렇게 죽어가고 싶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니, 지금까지 내가 깨달은 모든 이야기를 쏟아놓고 가겠다!'라고 말이다. 내가 세상과의 사이-inter에서 남긴 모든 이야기가 그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다다를 수 있다면, 세상을 떠나는 공포 앞에서도 그나마 한 가닥 안도의 마지막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5.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


다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로 돌아가, 그의 영화들이 던지는 질문을 거꾸로 생각해 본다.  

내 인생에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 무엇이 되었으면 좋을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나는 어떤 빛을 보고 싶을까?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았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인생을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파노라마의 순간들을 위해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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