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 불빛 May 27. 2022

내가 낸 세금은 어디로 갈까

<재정전쟁 - 세금과 복지의 정치경제학>, 전주성


1. 정당하지만 줄 수 없는 보상


팬데믹은 2년 넘게 지속되었다. 바이러스는 모든 인류의 건강을 비차별적으로 위협했지만, 재난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공평하지 않았고, 한국의 경우 그 피해는 근로자 4명 중 1명에 달하는 영세 자영업자에게 집중되었다. 정부가 집합 금지 - 영업 제한 조치를 할 경우 그 손실은 (적법한 행정처분으로 인한 피해에 법적으로 적용되는) '보상'의 대상일까, (정치적 합의와 인도적 고려, 여론에 따라 좌우되는) '지원'의 대상일까. 대한민국 헌법 제23조 제3항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 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정해져 있다. 하지만 정당한 보상이라는 규범과 국가 부채라는 현실 간에는 마블유니버스의 멀티버스만큼이나 전혀 다른 차원의 논리가 통용된다. 없는 돈을 어디서 만들며, 많은 빚은 누가 다 갚을까. 평범한 가계가 그렇듯이, 국가도 쓸 수 있는 돈과 자원은 희소하고 한정적이다.


2. 누가 부담할까


돈이 없으면 지출을 줄이거나 수입을 늘려야 한다. 다이어트 법칙만큼이나 간명하지만, 현실은 무거운 몸만큼이나 실행하기 어렵다. 결국 국가는 빚을 더 낼 궁리를 하는데, 최근 부쩍 상승한 마이너스 통장 금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든 거래에는 대가가 따른다.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위한 36조 4000억 원 또는 50조 원의 2차 추경안 예산을 (궁극적으로) 누가 부담하게 될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규범이 존재하고 명분도 있으며, 무엇보다 지방선거가 가까워졌으니 일단 어떻게든 추경안은 국회 문턱을 넘어갈 것이다.  


3. 큰 정부의 복귀


문제는 코로나는 갔어도 국가가 재정을 통해서 할 일은 아직 끝도 없이 남았다는 점이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불평등과 양극화, 저출산과 고령화, 지정학적 위기와 공급망 붕괴. 세상 모든 일이 얽힌 복잡한 문제의 해결에는 결국 돈이 필요하고, 책무를 진 국가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복지 포퓰리즘 논란과 기본소득, 종합부동산세나 대기업 법인세 같은 부자 과세, 연금 고갈과 국가 부채 등 최근 몇 년 사이 문제가 된 재정에 관한 사회적 논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렇게 꽁꽁 묶인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풀고자 '세금과 복지의 정치경제학'이란 부제가 붙은 책 <재정전쟁>은 '큰 정부'의 복귀라는 시대적 상황에 맞춰 '(선진국도 개도국도 아닌) 우리의 현실에 맞는 재정 이론'을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


4. 증세는 필요하지만


저자의 핵심 주장을 정리하면, 우선 국가의 정책 수행을 위한 증세가 필요하며, 증세를 위해서는 부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반대급부를 제공해서 조세 전가와 회피, 저항에 부딪히지 않아야 하고, 세제를 간소화하여 조세부담률 자체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이 그동안 고도성장기에도 불구하고 잘 지켜온 재정보수주의라는 정책은 계속 견지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총론을 뒷받침하는 종부세, 토지세, 상속세,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을 위한 목적세, 법인세율 인하 논쟁, 연금 고갈과 적정한 국가 채무 비율 등 등 각론에 관한 설명은 독자로 하여금 국가의 곳간을 누비며, '내가 어떤 세금을 내고 있는지'와 '국가의 살림살이는 어떻게 꾸려지는지'라는 중요하지만 접근하기는 힘든 조세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개괄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추게 만든다.


5. 내가 낸 세금은 어디로


하지만 책을 읽은 뒤에도 첨예한 논쟁 사안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과연 국가가 내가 낸 세금을 제대로 쓰고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앞으로 “앞으로 복지정책의 성패는 집권 정부의 이념보다 능력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며 ‘능력 있는 정부’를 요구한다. 과연 국가라는 시스템은 돈만 충분히 있다면 산적한 난제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납세자들을 존중하고 잘 설득해가며 원활하게 과세하고, 단순화한 세제로 애써 거둔 세금의 낭비를 줄이며 적절한 곳에 지출하기까지 하는 국가의 역할이란 왕권신수설만큼이나 그 실체를 찾아볼 수 없는 고전적인 사회 계약설이 상상하고 있는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평범한 투자자의 현명한 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