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9일 트레바리 뭔일이슈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을 말씀해 주세요.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나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성애나 불륜을 다룬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인 기억의 뿌리와 소외, 집단적인 구속을 드러낸 용기와 꾸밈없는 날카로움” - 스웨덴 한림원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이 쓰이는 때와 그것을 나 혼자서 읽는 때,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때는 이미 시간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테고, 어쩌면 남들에게 이 글이 읽힐 기회가 절대로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출증이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는 병적인 욕망이니까.)
<단순한 열정> 은 작가의 사적인 감정과 기억을 담은 자전적 글쓰기(오토픽션)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작가 자신을 자유롭고 적나라하게 반영한 글도 문학의 범주에 포함될까요?
통속적인 잡지에 실려 있는 성에 관한 고백 수기나 노골적인 포르노그래피와 <단순한 열정>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문학이란 무엇인가요? '문학적 가치'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금 흐릿하게 나온,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의 유일한 사진 속에서 나는 어딘지 알랭 들롱을 닮은, 금발에 키가 큰 남자를 보고 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내게는 아주 소중했었다. 그 사람의 눈, 입, 성기, 어린 시절의 추억, 물건을 낚아채듯 잡는 버릇, 그 사람의 목소리까지도.
작가가 사랑에 빠진 연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작가의 사랑이 그(30대 중후반의 파리 주재 소련 외교관)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매우 사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열정>이라는 추상적인 제목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의 열정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요? 사랑의 열정이 사라진 뒤 당신에게 남은 흔적은 무엇이었나요?
(낙태수술을 받은 장소에 다시 가보는 사람이 나 한 사람뿐일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하고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아니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을 확인받으려고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았다. 혹은 그들이 언제 어디선가 읽었다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내 글을 통해 다시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바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제인지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A가 떠난 지 두 달쯤 지난 후부터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A와의 관계에 관련된 것들은 무엇이든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10월의 알제리 소요라든가 1989년 7월 14일의 흐린 하늘과 더위, 그리고 6월, 그 사람과 만나기 전날 밤 믹서를 산 것 같은 사소한 일들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폭우에 대해서, 혹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일이나 차우세스쿠의 처형처럼 지난 5개월간 벌어진 세계적인 뉴스들 가운데 하나를 한 페이지 정도로 자세히 써내라고 한다면, 나는 할 수 없다. 글을 쓰는 시간은 열정의 시간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본문에 대한 부연 설명(괄호, 주석)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서없이 파편화된 의식의 흐름처럼 진행되다가, 중간부터 "1991년 2월"이라는 날짜가 적힌 일기의 형식으로 변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의 사랑의 고통을 덜기 위해 과거에 낙태 수술을 받았던 장소를 다시 찾아가는 장면을 어떻게 보셨나요?
작가는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을까요? 글쓰기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나는 그 남자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그 사람이 돌아왔었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거의 실재하지도 않았던 일인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은 내 열정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주었고, 지난 2년 동안 내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지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당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사치’는 무엇이었다고 기억하나요?
당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는 무엇인가요?
오늘 모임을 마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