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한 바는 아니었음을

D. 인생이라는 건축 #01

by 우드노트


힘 빼기의 기술을 시도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최근 지하철역에 스마트 도서관이 생겨 관심을 갖던 차에 제목에 이끌려 '소심해도 잘 나가는 사람들의 비밀'이라는 나이토 요시히토의 책을 빌려 읽었다. 사회인이 된 요새는 내가 소심한 사람인지 잘 모르겠기도 하지만, 소심보다는 극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는 여러 가지 방법과 근거를 다양한 심리학 실험을 통해서 설명하는 책이라 재밌게 읽었다. 요는 뭐든지 다 잘하려고 생각하면 긴장하기 마련이니 잘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가능한 한 힘을 빼두는 연습을 하라는 내용이다. 나 역시 밴드 공연이나 프로젝트 발표 등을 할 때 극심한 긴장을 하는 편인데, 책을 읽고 나니 여태 내가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한 행동들 중 많은 것들은 오히려 힘을 주는 데에 치우쳐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에도 완벽할 정도로 연습을 해라, 누구나 다 긴장하지만 연습을 통해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내가 여태까지 긴장을 풀기 위해 했던 일들은 강도 높은 연습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역효과를 일으키는 것들이었음을 확인했다. 예를 들면 우울하거나 긴장이 될 때에 밝은 생각을 하거나 잘 될 거라는 막무가내의 긍정 마인드를 가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한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여 이후의 결과가 그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면 심리적 안정을 더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심리적으로 밝기보다는 우울한 편이고, 긴장 여부를 따지자면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살면서 아주 큰 실패를 겪어본 적은 없다. 그러니까 나에게 일어났던 최악의 실패라고 해봤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심리적 부담을 줄이고 힘을 빼라고 이 책은 권하고 있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조사 중 하나는 잘 의기소침해지지 않는 사람들이 금방 침울해지는 사람에 비해 자신의 기분을 전환할 구체적인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었다. 실패를 전제하고 기분을 전환할 방도를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다. 그 정도로 효력이 있는 기분 전환 방법은 아직 모르겠지만, 거사를 치르기 전에 힘을 빼기 위해서 듣는 나만의 특별한 음악은 있다. 거사에는 실패가 따를 확률이 높은데, 이 음악을 들으면 '조금 실패하더라도 당연히 실패할 만한 일이었어'라는 식으로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차분히 임할 수 있다. '홍대 여신' 같은 키워드가 유행했을 시절, 인디 신의 음반 기획사 파스텔뮤직에서 수입해 온 영국 밴드 Arco의 곡이다. 그들의 음악은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광고음악 등에 사용되어 유명해졌지만, 내가 거사를 앞두고 듣는 곡은 그들의 음반에 수록된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은 'Meant'라는 곡이다. 사실은 멜로디와 악기 구성과 곡의 분위기, 2절을 마치고 나오는 브릿지의 금관악기 소리의 힘찬 느낌에 반했고, 수능날 아침 문득 떠올라 수능시험장에 가면서 들었던 일이 시작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가사의 의미를 파악하고 나니 가사 또한 내가 이 음악을 이용하는 방식에 딱 맞아 더 애정하게 되었다. '우리'라는 단어를 반복해 사용함으로써 우리 모두는 비슷하다는 따듯한 위로를 전하면서도, 우리 의도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초연하게 읊조리는 방식이 세련되었다. 예전에 허접한 실력으로 번역해 두었던 가사를 고쳐 번역해 보며 힘 빼기의 기술 중 하나는 실패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Arco - Meant


long beyond our time

all of us we see

the perspectives we were

never meant to see

우리의 긴 시대를 넘어

우리 모두는 보았지

우리가 보려고 한 적이

전혀 없는 관점들을


hardest of them all

is to know we're free

is to know that we were

never meant to be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은

우리가 자유롭다는 걸 깨닫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이

전혀 우리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


only love can save

and we admit defeat

to the fate that we were

never meant to cheat

단지 사랑만이 구해줄 수 있어

그리고 우리는 인정하지

우리가 운이 좋기를 바란 적은 전혀 없었던

그 운명에 굴복했다고 말이야


all of us we see

what no one should see

우리 모두는 보았지

아무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유튜브로 음악을 올리려고 보니 그들의 음악 대다수가 사라졌다. CD를 사두길 참 잘했다.




영어 공부 하지 않기


정확히 올해 1월부터 리틀캐빈클럽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입사와 함께 새롭게 시작한 것들이 많을뿐더러 리틀캐빈클럽의 새해와 관련된 이벤트들(회고에는 다음을 준비, 계획하는 과정도 들어있기 때문에 새해 결심과 관련이 많다)에도 참여했다. 그중에는 '온라인 회고 멤버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디스코드를 통해 회고를 하는 과정도 있는데, 다른 사람의 회고를 보다가 우연히 힘을 뺀다는 것에 관해 인사이트를 얻었다. 어쩌면 상반기 최고의 충격일지도 모를 그분의 새해 결심은 바로 '영어 공부 하지 않기'.


우리는 왜 새해에 뭔가를 하려고 무리하게 자신을 몰아세우는 걸까? 새해가 마치 무언가에 대한 시작을 다짐하기 좋은 시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계절감각을 제외하면 새해란 그저 지나간 어느 하루, 지나간 어느 한 주, 지나간 어느 한 해와 다르지 않은 그저 1월 내지는 1월 1일일 뿐이다. 그러니까 하루하루를 끊어서 보면 마찬가지인 나날이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숫자뿐이다. 회고는 그런 특정한 날, 특정한 기간에 의미를 두기보다 오늘 하루에 의미를 둔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 같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고 정리한 것을 바탕으로 내일을 준비하기.


물론 인생 전체, 내 삶의 특정 시기를 대상으로 계획을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새해이기 때문에 과도한 결심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그분이 올 한 해 동안 힘을 빼는 방식은 해마다 결심해 왔지만 여태까지 이루지 못한, 그러니까 자신이 못하는 일이자 곧 싫어하는 일일, 바로 그 영어공부를 포기하는 것이다. 장기하는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라는 말로 자신의 삶의 방식 일부를 표현한 적이 있다. 무언가 하려고 애쓰면 만족스럽지도 않고 괜히 시도하다가 다른 곳이 망가지기 십상이다. 반대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고 애써본 적이 내 삶에서 있었던가. 선택하고 집중하기 위해 잘하지 못하고 하려고 해도 하다 마는 것들을 포기할 생각을 왜 여태까지의 나는 하지 못했을까.


새 직장, 새로운 동네, 새로운 식구에 적응하고 있는 지금, 나는 여태까지 그렇지 못했던 것들에 힘을 빼고, 잘하던 것과 새로운 것에 힘을 줘보는 한 해를 보내려 한다. 앞날 창창한 놈이 죽은 뒤에 누울 것이지 힘을 줘야 할 시기에 힘을 빼고 있느냐고 누군가 꾸짖으신다면, 흠... 글쎄, 당연히 그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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