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어울리는 마음들 #01
나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대형 건축사사무소 현상 팀에서는 한 팀이 두 달에 어림잡아 800세대 정도의 아파트를 공급할 계획안을 만든다. 다시 말하면 두 달에 하나 정도는 800세대 아파트의 현상설계공모가 열린다. 우리 팀이 5명이고 일 년에 2달이 6번 있으므로 내가 참여하는 분량을 명 수 대로 나누게 되면 800 * 6 / 5 = 960 세대가 내가 연간 계획하는 집의 개수이다. 한 개의 공동주택 현상에 참여하는 회사의 수가 평균 3개라고 가정하면 한 명의 현상 팀 인원에 의해 실제로 지어지는 세대는 320세대. 우리나라에 아파트 계획에 참여하는 건축사사무소가 30군데라고(실제론 더 많지만) 가정하면 우리는 그중 평균 규모이고 우리 회사에만 30명 정도의 현상 팀 인원이 아파트 설계에 참여하니 900명이 아파트를 설계한다. 연간 27만 세대가 계획된다. 우리나라 국민은 5천만 명이고 국내 주택의 절반이 아파트니 앞으로 100년 동안 우리가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주거가 아파트가 된다. 물론 이런 식으로 계산해보는 것은 억지이지만 우리나라는 아파트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아무리 좋은 아파트를 그리고 지어대도 내 아파트는 없다.
다른 사람들은 아파트에 대해 주로 주거 공간의 획일성을 비판하지만 나는 사회적, 감성적, 심리학적인 부분에서 아파트를 미워한다. 아파트에 살면 동네의 활기찬 상업 거리를 걷거나 집 앞 공원에서 잠시 쉬어가는 일이 줄어든다. 집에서 나오면 그다지 쾌적하지는 않은 코어에서 서있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더욱 쾌적하지 않은 주차장에 내려 자동차를 타거나, 거대 단지를 뚫고 지하철로 향해 같은 경험을 하고 온 타인들과 불쾌한 기분으로 부대낀 뒤에 엘리베이터로 올라가 출근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돌아온다. 일하는 사람들이 매일 실려 나가고 실려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과의 유쾌한 연결이 없는 하루가 지속되면 사회적 단절로 인한 심리적 불안이 축적되고 병폐가 생긴다. 따라서 건축가는 단순히 집만을 설계할 순 없다. 그것만으로는 집이 좋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각 공간들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집을 포함한 모든 공간을 상상하고 구성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며 작업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집에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공간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따로 있는 듯하지만 세상의 모든 공간을 상상하는 일은 건축가에게만 허락되어 있으니 그럴 자격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매일, 정말 매일 집에 대해 생각한다. 관련된 내용을 직업상 수십 번 수백 번 읽어왔고 더 좋은 집을 만들고 더 좋은 설계안을 팔기 위해 일한다. 하지만 세상의 빈익빈 부익부는 갈수록 악화되어 대부분의 우리는 자가에 살고 있지 않다. 싸고 많이 짓겠다고 우리는 마당을 잃고 공중으로 더 높이 올라가지만,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내 집을 구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어반 노매드. 정말 우리는 제 몸 뉠 곳, 최소한의 청결을 유지하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사회로 나오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일 뿐인 집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까. 돈 없는 사람들은 집을 그런 공간으로 여기게 되고, 부자는 재산을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직장인으로서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그 차이를 견디면서.
개인은 얻기 힘든 외부공간이니 같은 층 사람들은 같이 쓸 수 있는 더 큰 테라스를 만든다. 테라스와 연결된 공용 공간은 층마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층간 이동이 잦아지고 원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마주칠 수 있다. 저층부를 거리 전면으로 열린 상업시설로 만들고 반대편에서 고층부와 맞게 들어올려진 레벨의 공원을 연결한다. 임대와 분양이 주택규모로 차별하는 것을 어렵게 하기 위해 입체적으로 세대를 뒤섞어 소셜믹스를 도모한다. 귀갓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손 씻고 소독하는 공동의 현관이 있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공용 주방과 거실이 있어 공공임대주택의 독거노인들이 함께 식사하고 안마의자를 이용한다. 출근길에는 학교 가는 아이들과 아침 일찍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좋은 설계를 해볼 방법은 참 많은데, 그곳에 살아볼 기회는 있을지 모르겠다. 좋은 집에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좋은 공간을 설계할 수 있을까? 그런 자격이 있을까? 눈이 더 높아져 가고 아이디어도 발전해 가는지 모르겠지만 내 손에서 이미 몇 백 세대 분량이 그려져 나갔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건축 일을 하는 사람에게 집이란 더 어려운 것 같이 느껴진다.
진짜로 즐거운 남의 집
이제는 옛날만큼 더 좋은 집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주거가 됐든 뭐가 됐든)좋은 공간을 추구하게 만들까?'에 대해 틈이 날 때면 고민한다. '어떤 공간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사용할 수 있을까?'를 따로 시간을 내어 고민한다. 예전에는 일이라 하기 싫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다 영영 건축과 멀어질까 싶어 '사고하기' 자체를 나름대로 노력해서 하고 있다. 어쨌든 줄이자면 역시 예전처럼 좋은 집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는 않는단 얘기다.
글의 제목으로 비틀어 썼고 어쩐지 익숙한 경구인 '즐거운 남의 집'은 건축일을 하시는 이윤석, 김정민 님의 동명의 책에서 빌려왔다. 이윤석 님의 북토크에 간 적이 있는데 감히 말하자면 하고자 했던 일의 방향이 비슷해서 놀랐다. 다만 내가 은연중에 현실적으로 안 된다고 생각해 포기하거나 비관했던 부분들을 애정과 노력으로 힘이 닿는 만큼 현실의 영역으로 데려오고 계셔서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어쨌든 책을 출판하기 전까지는 '남의 집'에 살았던 것 같다. 앞서 적었듯 건축일을 하면서도 남의 집을 전전하며 과연 집을 설계해도 좋은가, 충분한가에 대한 유사한 고민이 있어 이를 책으로 내게 된 것 같다.
요새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집을 구하게 되면서 "'진짜 즐거운' 남의 집"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니까 못구멍을 잘못 뚫어도 2년뒤, 4년뒤에 무슨 소리를 들을까봐 벌벌 떨지 않아도 되는 나름대로 '진짜로' 즐거운 남의 집에 살게 되었다. 재건축이 되기 전까지는 이 집에 살게 될 것이기에 장판이 마음에 안 들면 마루를 깔면 되고, 벽이 마음에 안들면 도배를 하거나 페인트를 칠할 수도 있다. 낡은 아파트에 인테리어를 새로한지 3년이 채 되지 않아서 너무 하얀 것이 굳이 찾은 단점이라 떡갈나무 계통의 갈색 가구들을 많이 데려와 억지로 하얗다 못 해 허연 분위기를 눌러보고 있다. 못을 박으려다 벽은 너무 강하고 못은 너무 물러서 선반을 거는 데는 아직 실패한 상태 그대로다. 자유롭다고 뭐든지 맘 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변 건축인들도 꽤 많은 수가 낡은 아파트에 사는 것 같다. 그나마 접근 가능한 가격대여서도 있겠고, 너무나도 정형적인 평면인 84㎡나 그것을 크기 그대로 줄여놓은 요즘 59㎡ 세대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겠고, 지나치게 휘황찬란한 신식 아파트 외장보다 색이 바래서 단조롭고 차분한 외관의 구식 아파트가 눈이 덜 아파서일 수도 있겠다. 나는 곧 다가올 계절에 무성해질 이 단지의 오래된 나무들과 그 녹음이 기대된다. 그리고 반 야외 공간인, 확장하지 않은 발코니에서의 커피가 기대된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빌라의 방에서는 맘 놓고 할 수 없었지만 오늘 아침에는 요가매트를 펴놓고 팔다리 쭉쭉 뻗어도 걸리는 것 없이 요가를 할 수 있었다. 아파트를 찾는 이유는 다양할 것 같다.
그런데 새삼스럽지만 집은 결국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에 관한 복잡한 생각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적었었지만 새 집으로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왔다면 집의 형태적 차이와 상관 없이 기존의 생활에 준하는 생활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파트너와 살게 되니 생활 양식이 많이 바뀌었다. 집에 오면 2인분의 저녁을 준비하고 같이 밥을 먹으며 빔프로젝터로 영상을 보다가 각자 할일을 한다. 아침저녁으로 약간의 글을 쓴다. 주말엔 평일에 먹을 것을 준비하고 평일에 못한 집안일을 한다. 엄마가 모든 가사를 했던 것도 아니지만 내 살림을 하는 것과 집에 엄마가 있는 것은 많이 다르다.
서른이 지나고서야 독립을 하니 젊은 나이에 타지에 공부하고 일하러 와서 자취생활과 아르바이트까지 해냈던 지인들과 동료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같은 서울에 사는데 이제는 본가에 자주 갈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어쩐지 쓸쓸하기도 하다. 그들은 이미 한참 전부터 쓸쓸했을 것이다. 휘황찬란한 전광판과 악취나는 술집 거리를 뚫고 들어가던 빌라촌, 침대도 없이 비좁고 답답하게 느껴졌던 방과 어수선한 집의 상태가 밉기도 하고 지긋지긋하기도 했는데 설날에 부모님이 부모님의 부모님을 뵈러 떠난 시간 혼자 남아 새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그제서야 많이 그리워지겠다는 걸 알게 됐다. 집이란 경제적 대상, 환경으로서의 공간이기에 앞서 마음이 담기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