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의지로서의 경쟁

C. 나를 짓는 일 #01

by 우드노트


총력전을 다해본 적 있으신가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인생에서 총력전이었다고 부를만한 건 역시 대학입시뿐이었던 것 같다. 비트박스, 노래방, 애니메이션, 영화, 피아노 연주, 힙합 비트메이킹, 이 나이에 말귀를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시간 이어폰으로 음악 듣기, 축구, 농구, 던전앤파이터, 당구, 아카펠라, 연애 같은 것들을 병행했으니 학창 시절 전부를 총력전이라고 할 수만은 없겠다. 총력전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단지 고3 때뿐일 것이다. 연애에만 데었어도 충분히 아팠을 텐데, 이간질로 사람들 사이를 틀어놓았던 고2 겨울방학의 연애 상대가 남긴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나는 남은 1년 동안을 매일 12시에 하교하고 잠과 식사와 공부밖에 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살았다. 당시 틀어진 인간관계와 가정의 불화 등으로 받은 비통한 충격에 비하면 기하와 벡터 문제는 꽤 즐거운 것이었기에 그 1년은 그럭저럭 힘들지 않게 보냈다. 나머지 11년의 학창 시절을 그렇다고 펑펑 놀았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목표하던 대학에 여유 있는 성적으로 합격했다. 부자 동네에서 의사와 변호사의 자식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며, 돈 문제로 다투던 부모의 집에서 묵묵히 공부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므로 나는 나의 학창 시절에 대해 나름 자부하고 있다.


나의 학창 시절 총력전의 동기는 이렇게 열등감 비슷한 것으로 인해 살짝 비뚤어져 있었다. 고1 때는 반 학우들 거의 전부가 축구를 좋아하는 바람에(나는 당시 피아노나 애니메이션에 심취해 있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다른 반의 중학교 때 친구들과 놀곤 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게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말도 잘 섞지 않게 되니 반 아이들과는 마음의 벽을 세우게 되었다. 때로는 이어폰을 꽂은 채로 '시끄럽다'든지 '멍청하다'든지 하는 미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중 가장 축구를 잘하던 친구보다 내 나름의 장기였던 수학 성적이 낮아진 것은 가을쯤이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적당히 놀며 공부하고 적당히 대학을 가도 그럭저럭 행복하고 누군가에게 열등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을 것 같이 보였던 그 친구를 이기기 위해서 나는 '총력'을 기울였다. 지금이야 누구에게나 고민과 걱정이 있고 각자의 지옥을 짊어지고 산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정말 그 친구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지독한 기분으로 공부했다. 다음 학기 기어코 백 점을 받아내고 그 친구의 씁쓸한 표정을 보고 나서야 나는 정상인의 궤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총력전이라는 것은 결국 나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동기가 이렇게 비뚤어진 것이었기에 지금의 내게 그때의 승리는 그 친구의 표정보다 더 씁쓸한 맛이다. 대학입시라는 대전제 아래에서는 어떠한 동기도 그렇게 정의롭기 힘들다. 누군가 더 나은 성적을 받으면 다른 누군가는 그가 서있던 자리에서 밀려나야만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내 노력에 대해서는 물론 고된 일이었고 총력을 다했음에 뿌듯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비뚤어진 정치가의 선전 문구인 '공정한 경쟁'이란 불가능하다. 결국 나는 경쟁 사회에서 아등바등 버티며 때로는 미지의 누군가를 짓밟아 그걸 딛고 일어서서 목표를 이룬 것을 승리한 것이라고 자위하는 고장 난 인간일지도 모른다. 총력전이란 단어가 어차피 전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좀 더 건강한 동기를 가질 수 없었을까. 분명한 목표 없이 대학만 바라보고 달리는 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감아버리고 어딘가 결핍된 인간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경쟁과 체재를 만들었을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학창 시절 이후의 나는 살면서 뒤돌아보았을 때 '저때는 저걸 어떻게 해냈을까' 싶을 정도의 강도 높은 노동이 따르는 성취도 여러 번 해냈다. 그것은 내 머릿속에서 입시만큼의 총력'전'은 아니었다. 수학 문제가 내 사적이고 괴로운 문제들보다 즐거웠던 것만큼, 수학 문제보다 즐거운 만족스러운 전공을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번 전쟁을 치러본 사람은 전쟁에 익숙해지는가 보다. 건축 현상(공공이나 민간이 건축설계사무소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수주를 보상으로 하는 공모전)일을 하는 나에게 전쟁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싸울 수 있는 능력이 곧 내가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그러나 정신없이 살아오다 보니 과연 이 모든 전쟁을 치르는 나의 동기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두 타의와 외압에서 온 것은 아니었을지 지금은 조금 무섭기도 하다.

나는 사실은 단 한 번도 누구와 싸우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 누구도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과의 새로운 총력전


이전 글을 쓸 당시와 지금 사이에 가장 총력을 기울였다고 말할 만한 시간은 건축사 시험에 임하는 동안이었다. 입시와 다른 점은 그 누구도 꼭 따야만 한다고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나에게 부여한 과제였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축사 시험 준비를 학원에 다니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3년간의 실무가 끝나는 시점에 학원을 등록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5달간, 무려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7시 반이라는(사실은 오후 9시 정도에 끝나기도 한다) 살인적인 강의 일정을 수료했다. 학원에서 1주일 동안 주는 과제를 전부 해내려면 거의 매일 회사 업무가 끝나고 작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근무 환경을 고려할 때 그걸 다 해내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시험을 1주일 앞둔 시점에서 나는 휴가를 조금 써서 결국 밀린 작도 과제들까지 빠짐없이 그려보고, 지난 몇 년 간 실제로 출제된 문제들을 풀어보았다.


시험을 마치고, 나는 30일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회사에서 특별히 허락해 준 한 달간의 휴직이었다. 여행 중 로마에서 합격 소식을 접하고, 맛있는 파스타를 먹으며 축하할 수 있었다. 극도의 노력 끝에 도달한 성취가 주는 도파민의 양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것은 그날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건축사 시험은 절대적인 노력이 필요함에도, 상대평가다. 점수를 매기고 있지만 각 시험별로 건축사 합격자 수의 총량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합격 점수가 정해진다. 그러니까 결국 경쟁 체제다. 나는 다시 한번 누군가를 짓밟고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다.


요즘 하는 일이 그쪽이다 보니 생산성에 관련한 정보들을 새롭게 많이 접하게 된다. 건축을 하면서는 도면이든 렌더링이든 다이어그램이든 생산만 죽도록 해왔는데, 더 잘 살기 위해 또 인간으로서의 작동 원리를 알고 효율성을 키우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제대로 된 걸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에서 어떤 분이 질문을 던지길, 생산성과 커리어를 인생 중심에 놓고 열심히 산다는 것은 과연 멋지고 좋기만 한 일인가? 항상 그다음, 그다음, 그다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다 보면 경쟁 체제의 태풍의 눈에서 태풍을 관찰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다. 중요한 건 나를 어떻게 더 잘 사용할지를 고민하고 적용해 보고 그걸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 그 자체에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하고 있는 리틀캐빈클럽에서의 회고모임활동은 경쟁적 발전보다는 유연하고 선한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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