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늘 Mar 12. 2022

<하나 그리고 둘>(2000) 에드워드 양

사람의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대

[씨네리와인드|이하늘 리뷰어] 1,2,3,4,5. 숫자는 감정이 없다. 숫자는 각자만의 고유한 영역이 있고, 단위로 존재한다. 수학 시간에 나는 늘 아라비안 숫자가 싫었다. 그 시간은 사실 매번 공상의 시간이였다. 공상 속에서 나는 숫자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더하기와 뺄셈에는 어떠한 답안의 숫자들로 결과가 지정되어 있었다. 숫자에는 감정이 없다니 너무 슬프지 않나? 나는 매번 숫자를 생각할 때, 홀수는 홀로 남아서 너무 외로워서 짝수가 되도록 더하기를 하나씩 더했다. 수학 성적은 밑바닥을 웃돌았지만, 늘 짝꿍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에드워드 양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의 영화 제목은 나에게 다시 수학시간의 그때로 데려갔다. 왜 하나인데 뒤에 접속부사인 '그리고'가 붙을까? 혼자이지만 둘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간은 지구의 행성 위에 홀로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만나며 죽음의 순간에서 다시금 홀로 땅 아래로 사라진다. 이러한 순환구조는 '우리'라는 단어 안의 '나'라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대만의 뉴웨이브 감독인 에드워드 양의 세계는 긴 호흡안의 사람들의 걸음걸음을 따라간다. 그 호흡에 관객들은 3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에 영화 속 '허구의 삶'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그 진실의 조각, 조각으로 들어가 보자. 

   


유기적으로 연결된 캐릭터

<하나 그리고 둘>의 오프닝은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의 북적거림이 보인다. 누구의 결혼식인지 초반부에 바로 드러나지 않지만 이 결혼을 축복하러 온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성대하게 치러지는 결혼식의 피로연의 모습이 보인다. '결혼'은 다른 세계를 살던 두 사람이 만나 완전한 결합을 뜻한다. 마치 새로운 세계관의 탄생인 것이다. 신부가 입는 흰색의 웨딩드레스는 가장 원색의 순수함, 마치 이진법의 0과 1 같은 느낌이다. 코드를 만들어낼 때 가장 순수한 숫자인 두 개로 만들어내는 그 복잡함은 마치 단순한 두 사람이 만나서 그들만의 세계관을 확장해내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하나의 잡음인 불청객으로 인해 분위기가 반전된다.                      


▲ 하나 그리고 둘  © 아톰필립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스쳐가는 인연 속에서 양양의 가족을 보여주는데, 양양은 이 영화의 극을 이끌어 가는 어린 소년으로 영화의 후반부에서 영화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진다. 마치 챕터로 나눠진 것처럼 따로 또 같이의 모습처럼 에피소드의 형식으로 나뉘어 있다. 결혼식에 참석한 소년 '양양'의 가족들은 각자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어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팅팅과 양양은 이 영화의 관전포인트이다. 그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결혼식의 이후 양양의 할머니의 쓰러짐으로 이루어진다.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으로 나온 할머니의 쓰러짐은 가족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다. 의식을 다시 차리지 못한 채 누워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손녀인 팅팅은 죄책감을 느낀다. 팅팅은 양양의 누나이다. 아버지의 말에 쓰레기를 밖에 버렸어야만 했던 팅팅은 옆집에 새로 이사를 온 리리를 창문 밖의 거리로 내다보다가 미처 쓰레기를 버리지 못했다. 때문에 자신으로 인해 할머니가 밖으로 나가게 되어 쓰러지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그것에 대한 죄책감과 옆집에 이사한 소녀인 리리를 통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인물의 시점은 다시금 다른 인물에게로 향한다. 바로 팅팅의 어머니이다. 팅팅의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의 쓰러짐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된다. 병간호를 하며, 매일매일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해줄 이야기가 없자 자신의 인생이 '빈껍데기'라며 회의감을 느낀다. 이내 그녀는 가족들을 뒤로 한채 어디론가 훌쩍 떠나게 된다. 이러한 팅팅의 어머니, 민민의 빈자리는 그녀의 남편인 NJ가 채우게 된다. 그에게로 향한 시선은 그녀의 과거 사랑, 첫사랑과의 만남까지 이어진다. 첫사랑은 NJ에게 이루지 못한 소망이자 과거의 순수하고 열망을 가졌던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마주하게 된다. 출장을 가던 길에 첫사랑과의 조우를 하게 된 그는 다시금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젊은 날은 추억은 다시 현재가 되었다. 그의 선택은 어떤 식으로 변모를 하게 될까? 출장에서 그가 돌아와서 다시 만나게 되는 인물은 양양의 삼촌인 '아디'이다. 그는 실수로 오래된 연인을 잃고 결혼을 하게 된다. '아디'는 누가 보아도 능력도 없고 하루하루 그저 살아내기만 하는 인물이다. 그는 그의 삶에 회의를 가지고 자살시도를 하려고 한다. 결국 그 시도는 해프닝으로 끝나게 된다. 이러한 인물들의 유기적인 연결은 결혼식 이후의 할머니의 쓰러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각자의 삶을 조명한다. 관객들은 캐릭터들의 생동감에 몰입하게 되고 이내 자연스럽게 캐릭터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속에서 등장하는 '어른'의 모습은 성숙과는 반대이다. 비성숙하며 오히려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지닌다.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의 실수와 결여점들은 과연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점을 던진다. 우리는 만으로 19세가 지나면 성년의 날을 맞는다. 9는 결핍의 상징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홉수이다. 그 숫자는 완전한 10이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며, 그 과정이 지나면 10이 된다. 우리는 19살이 지나고 20살이 되면 어른이 된다. 그렇다면 0은 완전한 숫자인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어른이라고 다 칭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늘 어른들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부모님을 보면 언제나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어른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면 완벽하지 않은 존재임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숫자가 변한 '나' 자신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 그리고 둘>에 나오는 어른들이 실수를 하는 모습들은 미워보이지 않고 우리의 모습과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른이라고 완벽해야 하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인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 안이 캐릭터들이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점이다.  



어린 양양의 시선으로 보는 어른들의 세계의 모순 

양양은 세계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관찰하고 응시한다. 어느날 양양은 아버지 NJ에게 묻는다. 양양의 대사는 귀엽고도 사랑스럽다.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이런걸까? 


“아빠가 보는걸 난 못 보고 난 보는데 아빤 못 봐요” -양양 


“그래서 카메라가 필요한거란다” -NJ


▲ 하나 그리고 둘     ©아톰필립스


'뒷모습'에는 표정이 없다. 우리의 얼굴에는 눈, 코, 입이 있고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서 기쁜지 슬픈지 우리는 학습을 통해 판단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이의 눈에는 우리의 표정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렇기에 얼굴의 표정을 알기 위해서는 학습을 거친다. 5-6세가 지나면 우리는 감정표현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감정표현은 어른이 되면 감정을 숨기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른이 되면 숨겨야 할 것이 많아지기에. 


“우린 반쪽 짜리 진실만 볼 수 있나요?” -양양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구나” -NJ


"앞만 보고 뒤를 못보니까” -양양


양양은 묻는다. 우리는 반쪽짜리 진실만 보는 거냐고. 우리는 앞모습만 보고 뒷모습은 보지 못하니까 우리는 뒷모습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 이면은 드러내지 않는다. 양양은 그렇기에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는다. 진실을 찾기 위해서. 어른이 된다는 건 사실은 그러한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뜻이 되기에 양양은 숨겨진 사람들의 표정을 포착한다. 양양이 카메라를 통해 포착한 것은 단순하게 뒷모습이 아닌 사람들의 진실이다. 때문에 카메라가 영화를 그리는 방식은 각각의 인물의 앞모습에서 뒷모습으로 팔로우를 하면서 롱테이크를 통한 긴 호흡으로 보여준다. 그 호흡은 관객들에게 사운드의 선행을 통해서 들리는 인물들의 대사에도 저 인물이 숨기고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캐릭터들의 숨소리와 호흡으로 인지하게 된다. 이것은 영화를 관통하는 진실로서 반쪽짜리의 무언가이다.                      


▲ 하나 그리고 둘  © 아톰필립스


어른은 참 어려워.  

영화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의 아이와 어른의 다양한 시각을 선보인다. 이 시각 안에서 여러 명의 캐릭터의 등장으로 과연 삶이 담고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부각한다. 그중에서도 양양의 아버지인 NJ의 모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어른이지만 생각이 많은 어른이다. 어른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변한다. 어린 시절의 전유물인 놀이나 만화영화들을 좋아했던 어른들은 현실에 치이고 순수함을 포기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NJ가 만난 일본인 바우처는 카드게임 놀이를 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들을 떠올리는 대사들은 NJ로 하여금 자신이 포기했던 노래와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떠올린다. 무언가를 포기했던 감정을 묻어놓았던 어른들의 모습은 몹시 쓸쓸해 보인다. 일본인 바우처가 바에서 즉석으로 노래를 하는 모습은 순수한 어린아이같다. NJ는 출장을 가며, 첫사랑을 다시금 만난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그 시절의 추억의 한편의 아련함 같다. 첫사랑과의 여행을 하고 그녀는 NJ에게 그때 당시의 자신을 떠났던 이유를 따져 물으며 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아이로 타임슬립을 한 그때 그 시절로. 그녀는 NJ와 다시 시작해보기를 원하지만, NJ는 숨어버린다. '어른'이 가진 고정적인 '어른스러움'이 아닌, 흔들리는 감정 묘사는 어른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 어른은 뭐든지 알고 있는 만능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른도 어른이 처음이라서 인생은 처음 살아내는 것이라서 어려운 게 아닐까? 



동전을 던져보기 전에는 앞면인지 뒷면인지 몰라. 우리의 인생도 그래. 

할머니의 죽음, 영화의 엔딩부는 결혼식의 행복하고 축하하는 이미지와 상반된 이미지로 종결된다. 이러한 수미상관 같은 구조는 마치 인생의 시작점과 끝부분을 유사하게 다룬다. 결혼에서 죽음으로의 변화, 가족의 탄생에서 가족의 떠나감, 오프닝의 웃음소리가 엔딩의 울음소리가 변화하는 생과 사의 순환에 대해서 보여준다. 장례식에 간 '양양'은 할머니에게 대화를 건넨다. 양양은 무슨 말을 할까 곰곰이 생각을 했는데 할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하며 " 나도 이제 다 컸나보다. " 라는 대사를 건넨다. 어린아이로만 보였던 양양은 숨겨져 있던 삶에 대한 진실을 깨달았다. '뒷모습'은 우리의 삶의 숨겨진 이면이다. 그가 뒷모습 사진을 카메라 안에 담고, 그것을 포착하는 행위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인생을 탐구하는 행위였다. 우리의 삶은 제각기 다 다르다. 때문에 영화는 각각의 캐릭터, 미성숙한 어른들과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 죽음을 맞이하는 할머니의 삶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방향성으로 연결된다. 인생은 마치 꿈과 같다.  


왜 세상은 우리 생각과 다른 걸까요? 

이제 일어나셨으니 한번 보세요

변한게 없나요?

저는 이제 자야겠어요

제가 보는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요.

                     

▲ 하나 그리고 둘  © 아톰 필립스


팅팅은 누워있는 할머니에게 이렇게 대화를 건다. 그렇다. 인생은 예측불가능하다. 때문에 어른이 되어도 삶은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았던 <하나 그리고 둘> 속의 시간들이 아름다운 것이다. 우연성을 가진 만남과 사건들의 조합은 세상의 진실의 이면을 드러낸다. 사람의 표정을 볼 수 있는 앞모습을 우리의 삶이 보이는 이미지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표정을 볼 수 없는 뒷모습은 알 수 없는 인생의 아름다움이다. 양양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모른다. 양양은 동전처럼 인생의 앞면과 뒷면이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뿐이지 아직 인생을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았으니까. 나중에 그는 할머니에게 다시 대화를 건넬지도 모른다. "아 할머니 이게 진실이었군요. 인생은 아직도 어려운 것 같아요." 어린아이의 눈에서 풀어낸 인생은 사람들의 뒷모습이었다. 엉뚱하면서도 창의적인 생각은 에드워드양의 영화 세계에서 발현되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따라가게 된다. 영화의 제목인 '하나 그리고 둘'은 하나라는 홀수와 접속부사인 그리고 둘인 짝수가 결합된 문장이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라는 개개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어서 누군가를 만나면서 '그리고'가 붙고 둘이 된다. 이러한 만남은 영화 속에서 그리는 양양의 가족들이 만나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통해서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동전이다. 던져보기 전에는 모른다. 그것이 앞면이 뒷면인지.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꿈처럼 아름답고 몽환적인 것이 아닐까?



*씨네리와인드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4868


작가의 이전글 <빅 피쉬>(2003) 팀 버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