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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Mar 25. 2022

<십개월의 미래>(2020) 남궁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카오스가 다가온 미래

[씨네리와인드|이하늘 리뷰어] 다가오는 인생의 조각들 사이에 서있는 인간은 자신의 삶을 예측이나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는 카오스(chaos)의 순간은 마치 대재앙을 예상 못한 재난 앞의 인간을 작고 나약하게 만든다. 20대 후반의 코딩 회사에 다니는 개발자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찾아온 재앙을 마주한다. 속이 매쓰꺼워 숙취인 줄만 알았던 그것이 ‘임신’이라니. 계획에 없던 임신에 미래는 외계 생명체가 자신의 몸에 들어온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남자 친구인 윤호에게 이야기를 전하자 그는 미래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가 생긴 것을 좋아한다. 이런 윤호의 태도는 미래를 당황하게 하고, 그녀는 계획을 세운다. 그녀가 세우는 계획은 무엇일까?                      


▲ '십개월의 미래'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스틸컷


영화의 전개방식은 흥미롭다. 소설을 넘기는 것처럼 챕터로 구성된 전개방식은 한 단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챕터는 여러 단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영화의 시작이다. 영화의 시작 챕터는 집이다. 극 중 미래는 임신 사실을 알기 전과 후 모두 어딘가를 떠돌아다닌다. 분명 본인의 자취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낡고 오래된 자동차의 운전석에서 혹은 자신의 남자친구 집에서 보낸다. 방황하는 미래의 모습은 지금 현재 자신의 집을 갖지 못하고 월세로 하루 하루 임시거주공간처럼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미래는 남자친구와 상의해 아이를 낳을지 아니면 아이를 포기할지의 선택의 과정에 놓인다. 자신이 원하지 않던 인생의 조각들은 마치 풍랑에 휩쓸려가는 돛단배처럼 미래를 이리저리 흔들어놓는다. 그 와중에 미래의 회사는 해외진출을 앞두고, 남자 친구와도 갈등을 겪는다. 카오스의 상태에 진입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뱃속 아이의 태명 또한 ‘카오스’라는 것.                      


▲ '십개월의 미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스틸컷


'지금 여기 풍경’이라는 섹션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이 작품은 현재의 청년들이 머무르는 공간을 주목한다. 해외로 갈 기회를 얻지만 사장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자 해고 요청을 받고 미래는 그렇게 직장을 잃게 된다. 지금 미래가 서있는 이곳의 현재는 암울하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들은 불안정한 것으로 변모되고, 미래 또한 그 불안함의 중심에 서있다. 미국의 영화사조의 중심에 서있던 작품 뉴아메리칸 시네마,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1967)과 <십개월의 미래>는 상당히 닮아있다. <졸업>(1967)의 엔딩장면은 주인공인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엘레인(캐서린 로스)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결혼식에 불청객으로 참가해 엘레인과 함께 식장을 도망치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된다. 두 사람은 다가오는 버스를 타게 되는데 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은 두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그렇게 뉴아메리칸 시네마에 화려하게 각인된 마지막 장면은 마치 그 둘이 미래를 함께 한다면 <십개월의 미래>속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져온다. 불안정한 버스 안에서의 벤자민과 엘레인의 모습은 마치 예측하지 못한 생명이 다가온 미래의 상황과 평행선을 그린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시대의 청년으로 살아가는 두 캐릭터는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해서 전혀 예상치 못하고, 그 미래는 결국 자신들을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때문에 <졸업>과 평행선상으로 <십개월의 미래> 역시, 극중 등장하는 기성세대의 시선 또한 눈여겨보아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 속 대학을 졸업한 지식을 체득한 세대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곱지 않고, 특히 <십개월의 미래>에서는 자신의 시아버지가 될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축산업을 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마치 아이를 임신한 미래의 모습과 돼지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아이를 낳으면 자아를 상실하게 된다는 점을 부각한다. 하지만 결국 미래는 ‘십개월’이라는 현재를 보내고 아이를 출산한다.  


그 과정 속, 강인함과 뱃속의 생명을 지켜내려고 동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미래로 하여금 관객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림과 동시에 어디 한 곳에서도 안정적이게 있을 수 없는 ‘그녀’로서의 삶을 보여준다. 자신은 편안하게 머무를 공간이 없지만 자신의 뱃속에 아이가 머무르는 공간을 지켜줌으로써 세대 간의 공간이 확장된다. 서울국제영화제의 ‘지금 여기 풍경’ 섹션이 가진 의의는 현재의 젊은 청년들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염려함과 동시에 동시대 여성의 ‘지금 여기’를 주목한다. 미래의 아이의 태명인 ‘카오스’처럼 어쩌면 그것이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풍경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오스의 그 중심으로 휩쓸려 들어가듯이.



Director남궁선

Cast 최성은



■ 상영기록

2021/08/27 19:10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3관



*씨네리와인드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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