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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Mar 25. 2022

<밤의 문이 열린다>(2019) 유은정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당신의 문이 열리는 시각은 언제인가요?

[씨네리와인드|이하늘 리뷰어] ‘밤’은 어둡고 깜깜해서 가장 무섭지만 그만큼 가장 환한 빛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하루의 끝자락에 서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 속 우리는 모두 잠에 들지만 그 시간에 잠에 들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혜정은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며 살아간다.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이 얼마 살지 않는, 도시의 건물에서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쉐어하우스의 형태로 살아간다. 생기 없는 얼굴과 무미건조한 말투, 그녀의 일상은 무기력의 끝자락을 간신히 지탱하면서 살아간다. 그 와중에 그녀를 좋아하는 같은 공장의 남직원은 그녀의 집 앞에서 고백을 하지만 그녀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퇴짜를 놓는다. 그렇게 들어간 집의 방안의 형광등은 오랫동안 교체되지 않았는지 깜빡이고, 그녀는 그 방 안에서 밤을 지나 보낸다. 그런 시간들이 흐르고 다음날 깬 혜정은 사건 현장을 마주한다. 자신의 방문 앞에 폴리스 라인이 쳐져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자신의 사건 현장. 혜정은 그날의 사건 속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 '밤의 문이 열린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스틸컷


영화는 혜정이 사건으로 다가가는 발걸음을 주목한다. 영혼이 되어버린 그녀는 한순간에 삶을 잃어버리고, 병원에 의식도 없이 누워있는 자신을 살려내기 위해 밖으로 달려 나간다. 그날 그 순간으로.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사채를 쓴 셰어하우스의 친구의 동생인 효연이 돈을 갚지 못하고, 신체포기각서를 써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자 사채업자를 죽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 사채업자의 딸 또한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이전에 혜정은 그 어린아이를 도와주지 못한 채 지나치고, 그 우연들이 쌓이고 쌓여 효연이 혜정을 살해하기까지 이른다. 그 우연 속에서 효연은 살고자 하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누군가를 죽이기까지 하는 선택을 하게 된 인물이기에. 하지만 혜정은 그에 반해 사건을 당하기 전 모든 것에 무기력한 삶의 의미를 퇴색한 채 삶의 열정이 없는 사람으로 비친다. 사건을 당해 죽음의 문턱에 서있는 자신을 본 혜정 역시 살고자 밤의 문을 열고 그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만약 자신이 돈을 빌려줬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누군가의 삶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삶조차도 방치했던 혜정은 깨닫는다. ‘살고 싶다’.                     


▲ '밤의 문이 열린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스틸컷


삶에 대한 욕망과 생존 본능은 어쩌면 인간의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는 가장 내밀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놓인 채 자신의 죽어가는 순간을 바라본다면 그 순간만큼 후회나 미련이 가장 많이 남는 순간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생의 시작을 정하지 못하듯이 사의 순간 또한 매듭짓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빛’을 아름답고, 가장 환하고 근원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빛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밤의 어둠이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그 순간의 모든 것은 소멸되는 죽음과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더 소중한 빛을 떠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지금 여기 풍경’ 섹션에 속한 이 작품은 지금 여기, 제한된 시간 안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리고자 한 여성을 주목한다. 그녀는 삶의 무기력 속에서,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삶의 굴레 속에서, 생의 불꽃을 마주하고 그 불씨를 더 활활 타오르게 다시금 문을 열고 또 열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주하는 주변의 풍경들은 당연한 것처럼 생의 시간이 반복되지만 미처 보지 못한 다시는 오지 못할 열지 못할 문일지도 모른다. 그 문이 열릴 때 미련 가득한 얼굴을 지어 보이지 않도록 지금 여기 그 풍경에 주목해보는 건 어떨까.




Director 유은정

Cast 강혜정, 전소니



■ 상영기록

2021/08/28 16:50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5관



*씨네리와인드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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