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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Jul 01. 2022

<소피의 세계>(2022) 이제한

소피의 세계로 가는 네모난 통로


김새벽, 곽민규, 아나 루지에로 주연의 <소피의 세계>가 오는 3월 3일 개봉했다. 독립영화계에서 주목하는 배우진과 뉴 페이스 외국 배우의 연기 합은 신선하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이 작품은 이제한 감독의 영화세계가 넓게 확장된 작품이다.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소피 역으로 인해 난항을 겪었다는 감독의 우려와는 다르게 영화 속에서 소피의 세계는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다. 한국에 방문한 소피(아나 루지에로)는 수영(김새벽)과 종구(곽민규)의 집에 나흘간 머물게 된다. 수영과 종구의 집에 놓인 테이블은 다양한 시간 안에서 의미를 변주해낸다. 테이블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수미상관 구조를 통해 테이블에서 마무리된다. 세계의 시작과 종결을 설계한 이제한 감독의 <소피의 세계>를 살짝 엿본다.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세계


“그런데 저 산의 이름이 뭔지 아세요?” 

수영은 소피에게 묻는다. 


테이블에 앉은 수영은 노트북을 켠 채, 소피의 블로그를 보고 있다. 창문 너머, 하얀색 눈으로 물든 인왕산이 보인다. 수영의 내레이션으로 시간은 2020년 10월 2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피가 처음 북촌에 위치한 수영 부부의 집에 도착한 날. 영화는 소피가 머물다 간, 재작년 가을 나흘간의 기록을 이야기한다. 현재 그리고 과거의 공간을 경유하는 이미지의 조각들은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블로그에 적힌 소피의 파편화된 기억들처럼. 내레이션을 통해 전해지는 소피와 수영의 음성들은 이미지에 닿아 더 강한 힘을 만들어낸다. 수영은 남편 종구의 어머니 병원비로 인해 북촌의 집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제한 감독은 수영과 소피의 이야기를 번갈아 배치하고, 그렇게 두 개의 세계는 서로에게 천천히 스며든다. 고즈넉한 북촌의 한옥들 사이를 거니는 소피. 그녀의 금발머리는 오래된 한옥들 사이에서 특히나 눈에 띈다. 북촌에 자리한 오래된 나무들은 세월의 향기를 풍기며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감나무를 발견한 소피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려 하지만 집에 놓고 온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되돌아간 집에는 수영과 종구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다. 다른 언어의 장벽에도 느껴지는 살벌한 분위기, 부부의 세계에 소피는 다시 집을 나선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세상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무는 흐름과 시간을 상징하는 중요한 단서다. 소피가 처음 나무를 발견한 지점은 이후에도 2-3번 정도 더 이어지는데, 카메라는 나무를 틸트다운 하면서 인물에게 이어지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을 풍긴다. 이는 소피가 조(문혜인)와 주호(김우겸)을 만나고 찾아다니는 이유와 연결된다. 


시선의 일치는 영화를 관통하는 또 다른 중요한 키워드다. 각자의 세상은 서로에게 맞닿아있는 듯하지만 쉽게 닿지 못한다. 수영과 종구 역시 소피와의 언어장벽처럼 부부의 장벽에 가로막혀있다. 자신의 어머니로 인해 아내가 좋아하는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죄책감은 종구를 압박하고, 수영은 그런 종구의 태도가 못마땅하다. 두 사람이 싸우는 시퀀스는 풀 샷의 롱테이크로 5분 이상 이어진다. 의자에 앉아있는 수영과 서있는 종구의 시선의 높낮이는 종구의 시선이 수영을 내려다보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헤드 룸조차 넉넉하지 않은 종구의 모습은 역시나 답답해 보인다. 싸움은 점차 격해지고 이내 수영이 몸을 돌리며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종구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카메라는 틸트다운을 하는데, 수영 역시 의자에서 내려와 종구와 시선을 마주친다. 시선의 일치는 동등한 관계로 인정하며 이해한다는 것으로 마치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영화의 주요한 틀과 닮아있다. 이방인인 소피뿐만 아니라 부부 역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 수영, 종구, 소피는 테이블에 앉아 시선 일치에 도달한다. 


집의 속성과 닮아있는 캐릭터들 


소피는 영화의 초반부터 헌 책방을 한다는 주호를 찾아다닌다. 주호는 소피의 기억 일부분을 차지하는 조각이다. 북촌의 골목골목을 헤매며 주호의 흔적을 찾지만, 소피가 알고 있는 단서는 그저 오래된 헌 책방을 한다는 것뿐. 그 이상의 정보는 제공되지 않으며, 영화는 소피가 왜 주호를 찾는지조차 일절 언급해 주지 않는다. 소피가 만나려는 또 다른 한 사람은 자신과 유학 생활을 같이한 조. 조는 현실에 치여 소피와의 만남이 한 시간밖에 허락되지 않는다.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소피와 조. 두 사람이 나누는 대사의 틈은 멀어져있던 시간만큼 벌어진다. 과거의 기억들을 추억하며, 허공에 맴도는 대화를 할 뿐이다. 우리들의 삶을 거울처럼 반영하듯 벤치에 앉아 서로가 아닌,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보내는 소피와 조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가끔 오가는 시선 속에서 미소를 지어 보일 뿐. 프레임에서 점점 멀리 걸어가는 두 사람의 대화는 이제 들려오지 않는다. 인왕산을 같이 가자고 했다는 소피의 내레이션이 프레임 안에 빗물처럼 고여 있을 뿐이다. 조가 건네준 책은 헌 책방의 주호에게로 이어진다. 



교차로 연결된 인물들은 자신만의 작은 세계의 출구에서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 소피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만, 주호의 표정은 썩 달갑지 않다. 과거의 조각들을 꺼내 보이는 소피를 주호는 밀어내려 한다. 자신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 하지만 그 외에는 주호에 대한 전사가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이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전사의 생략과 함께 상황을 집중하며 인물들을 따라가는 단순함. 홍상수 감독의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했던 이제한 감독의 취향이 물씬 풍긴다. 주호는 헌책방을 지키며, 자신의 결혼생활 역시 이어 붙이려고 하는 인물이다. 아내와의 불화를 참아내고,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반복한다. 그에 반해 소피는 헌 책방과 북촌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주호와 반대되는 캐릭터다. 소피가 만나는 인물들은 거리에서 발견하고 카메라 안에 담기는 사물들과 닮아있다. 소피의 무한한 세계는 고정적인 것들을 찾아다니는 여정이다. 그 여정의 끝은 시작을 함께한 인왕산이지만 조와의 약속이 어긋나고, 소피는 인왕산을 가는 것을 포기한다. 하지만 수영과 종구와 함께 새벽 인왕산을 오르게 된다. 소피의 세계는 이제 새로운 관계들로 연결된다. 인왕산의 정상에서 마주한 수영, 종구의 집은 점처럼 작지만 또렷하고 선명하다. 소피가 머물다간 나흘간의 시간들은 수영이 다시금 마주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오프닝의 수영이 테이블에 앉아 바라본 창문 너머의 인왕산처럼, 엔딩은 수영과 종구가 테이블에 앉아 바라보는 인왕산으로 마무리된다. 소피의 사유가 가득 담긴 블로그는 수영과 종구로 하여금 소피의 세계로 가는 통로를 만들어주었다. 테이블 위에서 나눈 담화들은 그녀의 시선으로 해석되어 완전한 이방인이라 여겨졌던 이들에게 닿았다. 관객들 역시 소피의 세계에 만나며 위로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 이 글은 아트나인 아트나이너로 작성된 글입니다. 글의 원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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