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약간의 변주

by greeny

최근 sns를 통해 필사단을 진행했던 적이 있다.


필사단을 하면서 시가 가진 의미를 곱씹어보고, 그 시에서 나에게 와닿았던 문장들을 나의 상황과 감정에 맞게 약간의 변주를 주어 글을 올렸었는데, 이게 나에게 생각보다 커다란 의미를 주었던 것 같다.


그동안 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행동이 나에게 무언가 시원함(?)을 가져다주었던 것 같아서 공유하고 싶었다.




1. 보통 문장의 따뜻함_구현우 시인


너는 할 수 있어. 여태껏 잘해왔잖아. 지금처럼만 하면 돼. 곧 따뜻한 날이 올거야. 너에게. 이 <따뜻한 문장 하나로 겨울을 버텼다.>


차갑게 얼어붙은 나의 시간 속에서도 너무 작아 소중한 순간들은 찾아왔다. 신기하게도. 그 덕에 <차가운 물에서도 얼음이 녹았다. 거짓말처럼. 멈춘 시계에서도 시간이 흘렀다.> 그때야 알았다. 얼어붙어서 아무 것도 못하는 것 같지만 내가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어서 얼음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는 걸.



2. 야광운_구현우 시인


<어쩌면 영영> 내가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아니겠지. 아닐거야. 내 현재가 무섭다고 주저앉지 않고 계속 하다보면 나도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속도는 느린 것 같아도 뭔가 나아지고 있긴 하잖아! 계속 열심히 하면서 방향만 잘 찾으면 나도 할 수 있어. 너무 기죽지마.


가끔, 문득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무슨 말을 보내야 할 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사실 보내려고 했던 마음을 안으로 다시 집어넣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 갑자기 뜬금없이 연락을 안받고 싶었는데, 연락하면 어떡하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까. 보고 싶고 그냥 궁금해서 연락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한테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이유가 그냥 바쁘고 삶의 소용돌이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연락하기 싫은 사람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올 때 나는 누군가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야>라는 말을 간절히 듣고 싶어진다.



3. 모종의 삽_구현우 시인


나는 <삽질을 합니다. 여기는 모래로 가득한 그라운드, 모래를 뒤집고 파헤쳐서 기어코 바닥을 보고야 말 것입니다. 네가 묻어두었다는 비밀이나 인류의 역사 따위도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겁니다.> 압니다. 삽질을 하는 것이 결코 내가 애써 묵인하고 묵시했던 것을 완전히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 앞에서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고 <삽질은 계속됩니다. 나의 삽질은 생산성이 없습니다. 나의 삽질은 시간 낭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느새 <나는 너를 동정하고는 있습니다.> 너와 나는 동일인물이지만, 다릅니다. 다르지만,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는 너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왜지. 생각을 합니다. 너의 욕망*에 공감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다른 생각을 합니다.> 욕망에 공감했지만, 과정이나 결과 그 어딘가에서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아니면 스스로가 불안해서 단순히 생각으로만 그런 걸까요. 모르죠. 그러나 압니다. 아는데도 더 깊게 들어가서 불완전하게 나를 지탱해주는 힘을 다시 세울 용기는 없습니다. 압니다. 이기적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버틸 수 있는 방법이기에 아직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금씩 용기를 내고 움직이다보면 어느샌가 나 스스로를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시간에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기존의 모습을 탈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너를 떠났으므로 내가 버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더 나은 모습의 내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지금 나라는 사람을 믿고 더 나아가고 성장하길 바라며 내가 지금 끊임없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 시 구절 : 나는 너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왜지. 생각을 합니다. 너의 가족사에 공감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다른 생각을 합니다.


**이 책에서 읽었던 시중 가장 여운이 남고 다시 읽게 되는 시라서 꼭 다들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4.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_구현우 시인


가끔 누군가가 나에게 안부를 물어보는 날, 나는 기쁘기도 씁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답변은 언제나 현재의 기분과 상관없이 <저는 나름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혹은 <저는 평소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였습니다. 왜 그런지 한참 생각하다보면 나는 그 말들이 나에게는 타인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가볍게 물어봤는데 무겁게 대답해서 혹은 그냥 가끔 얼음이 동동 뜨는 물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이임에도 갑자기 돌을 던져서 온갖 물들이 여기저기 사방으로 튀게 만들어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처럼 저는 관계에 대해서 너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고민들이 <어떤 쓸모는 딱히 없더라도요>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잘 지내고 싶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고 다정함을 같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고민하면서도 매번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로 만 답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게 대답하다보면 점점 더 내가 무뎌지고 단단해져서 <미약하게 나마 시간이 가고 저는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람이 담겨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냥 나의 이야기를 타인의 문장을 빌려 작성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구현우 시인님의 "버리기 전에 잃어버리는"라는 시집 덕분에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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