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서비스를 만들고 있지는 아니한가?
두 번째로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키워드는 바로 '청중'입니다.
최근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주위 사람들의 글을 조언해 주거나 포트폴리오나 자기소개서를 피드백해 주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여러 키워드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가장 본질적인 개념인 '목적'이 떠오르기도 했고, 글의 뼈대인 '논리'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네요. 그러다가도 가장 마음에 남는 단어는 바로 '청중', 즉 글을 읽을 '독자'였습니다.
글이라는 매체에서 청중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고, 그것을 프로덕트 디자인에 녹인, 제 무의식의 흐름을 적어보겠습니다. :)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내게 됩니다. 내 생각을 풀어내는 것이 글쓰기의 핵심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결국 글은 읽는 사람을 위한 매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당황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이 당혹스러움의 근원을 되짚어보니, 저는 글을 처음 배운 '학교'라는 공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독자가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글의 본질이라고 배웠습니다.
정철의 관동별곡을 예로 들어보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삶을 이해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글을 열심히 분석하고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비문학 글은 또 어떨까요? 저는 아직도 수능 문제로 출제되었던 '슈퍼문'에 대한 글을 완벽히 해석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글이 친절하지 않아도 되며,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는 독서의 깊이가 얕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잘못 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좋은건 아닌 것 같네요)
물론 글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 정보를 집약하여 담아내는 논문,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수필, 복잡한 관념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시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읽는 이 없는 글은 생명이 없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기 좋은 글이 가장 생명력 있는 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첫 브런치를 작성하며 가장 먼저 한 고민은, "누가 내 글을 읽고 싶어 할까?"였습니다. '청중'을 정하고, 여러분들이 글을 읽으며 좋아요를 눌러줄 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여러 가상의 사람들을 상정하고, 그 사람들이 제 글을 읽으며 어떤 반응을 할지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배움을 원하는 사람을 그려보기도 했고, 중간엔 치유를 바라는 독자분을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결정한 페르소나는 '공감하고 싶은' 독자였습니다.
IT라는 업계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하는 누군가가 읽었을 때, 공감이 되거나 제 고민이 사고의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목적을 가지고자 했습니다. 그러며 글의 주제를 하나, 둘 적어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글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생각을 전달하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다가갔을 때 비로소 빛을 발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이 나의 글에서 무엇을 바라는지를 고민할 때, 비로소 생명력 있는 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청중을 대상으로 글을 작성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는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뭘 배우고 정의 내렸다기보다는, 제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첫째, 독자가 왜 이 글을 읽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글을 읽습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혹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 읽습니다. 독자가 어떤 이유로 글을 읽는지를 잘 파악하면, 그들에게 더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둘째, 독자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 있고, 어떤 감정으로 글을 읽는지를 이해하면 글의 방향을 잘 정할 수 있습니다. 글을 읽는 사람과 나의 관계를 이해하고, 관계 속 주어지는 감정까지 고려하면 베스트입니다. 호기심에 들어오는 첫 독자는 이 글을 읽다가 도망가겠죠. 생각보다 두서없으니까요. (?)
셋째, 독자가 글을 읽고 나서 어떤 변화를 경험하기를 바라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독자가 글을 읽은 후 어떤 행동을 하거나 생각을 바꾸게 하고 싶은지 명확히 하면 글의 목적이 더 분명해집니다. 독자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거나, 기존의 생각을 확장하거나, 작은 행동을 시작하도록 동기부여하는 글을 쓰는 것, 그게 제 글이 바라는 독자의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서비스 기획을 할 때, 제가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렴 내가 유저고 사용자며 최고의 페르소나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사용성 사용성 사용성을 외치면서도 결국 '내가 편한 사용성'을 외치고 있었던 것이었고. 논리를 가져다 댈 때도, 제가 볼 때 적합한 논리를 끌어다 오곤 했죠 (아전인수)
매번 페르소나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페르소나를 나열하기 바빴고, 매일 같이 배우던 사용자향이라는 단어는 결국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우리는 글을 쓰든 서비스를 기획하든 결국 '사람'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던 글쓰기조차도, 독자가 없으면 빛을 발할 수 없듯이,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서비스도 사용자가 공감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진정한 글은 청중을 향하고, 진정한 서비스는 사용자를 향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그들의 필요를 중심에 둔 선택들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는 '생명력 있는 글'과 '의미 있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청중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의 글과 서비스는 살아 숨 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