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딸이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by 그리움


10살밖에 안 된 친구의 딸이 희귀 암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청천벽력이었다.

내 아이가 많이 아팠던 걸 아는 친구에게
긴 문자가 왔었다.

그동안 얼마나 아팠고 힘들었냐고.

그동안 건넨 위로가 얼마나 형식적이고 피상적이었는지
너무 미안하다며.
자신이 겪어보니 나의 마음을 조금 알겠다며.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줌(zoom)으로

매주 하루를 정하여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친구들이라
거주하는 지역도 심지어 나라까지도 상이했기 때문에
겨우 시간을 정해 줌으로 만날 수 있었다.

내 아이가 아팠던,

죽음을 앞두었던 찰나의
순간들을 아주 조금은 알기 때문에
친구의 딸과 친구 가족을 위해 정말 절절하게 기도했던 것 같다.

병마다 다르고, 처한 여러 상황과 모든 것이 다르니
다 안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고,

내가 감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어서 찾아갈 수도,
가서 다른 자녀들이라도 봐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저 정말 내가 할 수 있는건 기도뿐이었다.

좋은 소식이 들려 한동안 희망에 차올랐었는데
갑자기 온 몸에 전이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며
마음이 저 끝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의사들도 포기했다고 하며 좌절하는 친구를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놓지 않고 기도하는 친구를
보며 나도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오로지 하나님의 기적만 바라며 기도했다.

올 가을 결국 소식이 왔다.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고.



하지만 친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주어졌던 시간들과 딸이 평안히
하나님 품으로 갔다는 것에 더 감사하려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 주고 함께해주는 사랑을 받았다며
고마워했다.


그러나 믿음과 별개로 삶은 처절했으리라.
자녀를 잃는 것은 내 미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모든 일상 속에 가득한 딸 아이의 흔적을 보며 내 친구는
남들에게 말 못할 눈물의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지나가는 또래의 아이를 봐도 생각나고,

어디선가 '놀랐지!'하며 나타날 것 같다고도 했다.
결혼 소식을 전하는 지인을 보면서도, 상급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미래의 그 시간들을 함께하게 되지 못한 슬픔이 차오른다고 했다....

난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그 슬픔에

감히 같잖은 위로도 건네지 못하고 있다.

일전에 수술을 앞둔 내 아이를 보며

만약.. 정말 내 아이를 부르신다면, 하는 가정을 하며

이런 것도 함께 못하겠지.. 이것도 마지막이겠지.. 하면서 모든 삶의 순간에 눈물을 삼키던 날들이 있었다.

나는 과거형으로 말하지만 내 친구는 현재 진행형이니
그 어떤 말도 건넬 수가 없다.


그렇게 친구의 딸이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있지 않아 우리 집에도 계속 일이 일어났다.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고관절, 어깨가 부러지면서
병원으로 실려가신 것이다.
94세의 할머니의 뼈는 작은 충격에도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앞으로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이었다.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지 않겠냐 하는 고민의 시간들 후에 수술이 진행되었고, 오랜 기간 입원하고 재활을 하였는데, 병원 생활이 오래되면서 감염균이 나와 격리 병동에 가시게 되었고 홀로 거동을 할 수 없으니 결국 집을 정리하고 요양병원에 가시기까지의 시간이 흘렀다.

그와중에 고모도 갑자기 희귀암이라는 소식에 온 집안이 뒤집혔다. 딸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할머니는 병상에서 계속 딸을 기다리다 못해 화도 냈다가 슬픔에도 잠기셨다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고모는 너무 희귀적이어서 치료가 어렵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담대히 믿음으로 항암 치료 중이시다.

순식간에 엄마도, 누나도 죽음의 기로 앞에 놓인 것을 보는 아빠는 정신없이 할머니를 매일 간병하고 돌보고 이것 저것 알아보면서도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다잡고 주께 엎드리러 가신다.



아 정말...
뭐가 이렇게 사는 것이 어려운가.
천국의 소망이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의 삶을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기도를 무엇이라 해야 하는가.

기적을 그렇게 바랐지만,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다고 고백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들이 조금은 버겁고 힘이 든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한 일이 없다고 쓰여있는데
삶 속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믿음 부족인가?
겨자씨만한 믿음 조차 없어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가?

모든 것을 죄로 고백하고 눈물로 기도하며 기적을 소망했던
친구와 우리는 믿음 없음을 또 자책하고 자책했다.

나는 할머니와 고모의 병을 듣고도
도대체 무엇이라 기도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가
않는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긴 할까?
이뤄지면 기적이고 감사지만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주의 뜻이라 하며 우린 감내해야 하는가?


뭔가 속에서 화가 나면서도
의문이 들면서도
슬픔이 차오르면서도
어찌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20대 때 읽었던 어느 신학철학자의 책 중에
우리는 한낱 그의 장난감과 같지 않는가 했던
조소어린 대목이 떠올랐다.

인간을 정말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왜 이런 슬픔과 고통을 허락하셔야 하는가.
그저 기쁘고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나님만 바라보고
인간인 우리의 무지와 무능력을 깨닫고
엎드리길 원하시는 그분의 뜻을 알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될 사람들에게
그런 고난을 허락하셔야 하는 원통함에
괜한 심술과 원망이 불쑥불쑥 솟아난다.

한낱 미천한 내가 그분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마는
너무나 힘이 들고 버거우니 뾰족뾰족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저 이 시간들을 어찌저찌 감내하며
또한 견디고 버티며 함께 울고 함께 하며
지나가는 수밖에.



그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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