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딸에게
요즘 부쩍 8살이 된 딸 아이가 죽음에 대해 많이 얘기한다.
조금 컸다고 죽음에 대한 생각도 상상도 부쩍 많아졌다.
날 닮은 건가.. 나도 어렸을 때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우리 가족이 죽으면 어떡하나, 엄마 아빠가, 동생이 죽으면 어떡하지, 나는 죽으면 어떡하지... 지옥에 대해서도 천국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더랬다.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해? 천국에 가면 어떻게 해? 누가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해?"
딸 아이는 계속 걱정 어린 질문으로 나에게 물어온다.
물론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고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찬이지만 '죽음'이라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이별을 뜻하고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딸 아이가 오늘도 편지로 '언제나 내 곁에 있어요. 사랑해요. 멋있어요. 당신이 있어서 행복해요' 이렇게 사랑스럽게 건네주었다.
죽음이 온다면 이런 사랑스러운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내 옆에 없다는 뜻이고 같이 즐겁게 웃을 수도 없고 좋은 시간을 함께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를 왜 하냐고,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 죽을 수 있지. 누가 먼저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천국에 가면 가서 집을 잘 꾸며놓고 예수님과 잘 지내다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자...
그래. 죽을 수 있으니까, 언제 헤어질지 모르니까 오늘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더 즐겁게 보내고 더 사랑해야 해" 라고 말한다
나도 어른이지만 나도 두렵다. 죽음 자체가 두렵지는 않지만 죽고 나면.. 혹시나 내 자녀가 먼저 죽게 된다면 내 자녀와 함께 할 수 없는 미래가, 내 자녀와 함께 할 수 없는 시간들이 너무나 서럽고 무너지고 아주 많이 아플 거 같다. 그리고 내가 먼저 죽는다면, 남겨진 사람들이 슬퍼할 것이 너무나 걱정되고 슬플 것 같다.
그렇다. 정말 죽음은 쉬운 주제가 아니다.
함께 할 수 없는 것, 더 이상 함께 웃을 수 없는 것,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추억할 수 없다는 것(물론 그동안의 시간들과 그동안의 추억들이 남겠지만), 더 이상 미래를 함께 할 수 없다는 그 슬픔은 정말 아무것으로도 채울 수 없겠지. 상상만으로도 정말 두렵고 아프고 괴롭다.
무력한 인간은 정말 죽음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 누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내게 주어진 오늘의 시간을 정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 더 힘을 다하고 오늘 더 최선을 다하고 오늘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오늘 함께 더 웃고 좋은 추억들을 잘 쌓는 수밖에..
그렇게 오늘 더 사랑 할게. 그렇게 내일 더 사랑할게.
아주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