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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곰 Nov 16. 2019

아이에게 인사부터 가르치는
프랑스 교육

친절? 과잉 친절?

서양 문화권에 있으면 누구나 느끼는 게 하나 있다. 서양 사람들은 인사를 참 잘한다는 거다.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반갑게 인사하고 길에서 살짝 부딪혔는데도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프랑스는 더하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마주치면 "봉쥬 Bonjour"라고 반갑게 인사하는데 한마디를 더한다. "싸바 Ça va?" 이는 잘 지냈어?라는 뜻이다. 분명 모르는 사람들인데 서로에게 잘 지냈냐고 안부를 묻는다. 이에 상대방은 "응, 나는 잘 지냈어. Oui. Ça va"라고 친절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한 마디 더 붙여서 말한다. "고마워 Merci" 자신에게 안부를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덧붙이는 거다. 


길을 걷다가 신체의 어딘가를 상대방과 살짝이라도 부딪히면 "빠흐동Pardon!"이라는 표현을 쓴다. "미안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빠흐동! 익스큐즈모아! Pardon! Excuse-moi!" 라며 길게 말하기도 한다. "미안해! 내가 너무 실례했어!"라는 뜻이다. 보통은 미안하다는 말만 듣고 자기 갈 길을 가지만 대부분 프랑스 사람들은 여기에 대답을 해준다. "난 괜찮아. Ca va, bien."라고 말이다. 만약에 고맙다 Merci는 말도 뒤에 붙어주면 금상첨화다.


프랑스어 빠흐동 Pardon은 원래 용서, 사죄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내가 길에서 빠흐동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내가 잘못했으니 용서해줘"라고 말한 걸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이 단어는 길에서 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뒤를 돌아봤는데 다른 사람이 있어서 놀랄 때도 빠흐동, 기침을 해도 빠흐동, 밥을 먹다가 물병을 가지러 옆 사람 쪽으로 팔을 뻗어도 빠흐동, 조용한 가운데 물건을 떨어뜨려서 이목이 집중돼도 빠흐동을 말한다. 내가 무언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빠흐동이라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프랑스 사람들은 메흐씨 Merci라는 말도 빠흐동에 못지 않게 많이 말한다. 고마워라는 뜻이다. 친구가 떨어진 내 연필을 주워줘도 메흐씨, 밥 먹다가 내가 물병을 원할 때 옆 사람이 물병을 줘도 메흐씨, 내가 돈을 내고 산 음식인데도 받을 때에도 무조건 메흐씨라고 말한다. 음식점이나 매장을 나올 때도 메흐씨라고 말하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 더 붙이는 게 의무다. 아침에는 봉 조르네 Bonne journée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점심에는 보나프레 미디 Bon après midi 좋은 오후 되세요! 저녁에는 봉 수아헤 Bonne soirée 좋은 저녁 되세요! 를 말해야 한다.


어쩌면 과잉 친절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어른들이 '인사 많이 한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인사는 누구에게나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도움을 주고 싶다면 더 도움을 주게 되고 화를 내고 싶어도 덜 내게 된다. 그렇다면 프랑스 사람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든 인사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프랑스 가정집에서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어릴 때부터 받아온 가정교육이다. 


밥 먹으면서 이뤄지는 교육

식사 시간에 프랑스 식탁은 우리나라랑 매우 다르다. 여러 반찬들이 놓여 있어서 서로 젓가락질하며 먹는 우리와 달리 프랑스는 큰 그릇에 담긴 메인 음식을 자기 접시에 먹을 만큼 담는다. 나를 식사 초대 해준 그 가정엔 아이들이 여럿 있었는데 바로 내 옆에 옹기종기 앉아서 밥을 같이 먹고 있었다. 나는 내 접시에 음식을 담고 옆에 앉은 아이에게 메인 음식이 담긴 그릇을 건네줬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의 아버지가 나타나서 그릇을 붙잡고 아이에게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물었다. 


"지금 너는 어떻게 말해야하지?"

"..."

"지금 이분에게서 그릇을 받았잖아. 넌 뭐라고 해야 하냐고?"

"메흐씨 Merci 요."


아버지는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

"맞아. 근데 넌 지금 고맙다는 말을 바로 안 했어. 그럴 땐 뭐라고 말해야 하지?"

"빠흐동 Pardon 이요."


눈 앞에서 벌어지는 밥상 교육이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나타나서 아이에게 인사하는 법을 가르쳤다.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까지도 인사를 잘해야 한다는 게 아이 아버지의 교육이었다. 나는 이런 교육법이 매우 낯설었다. 우리나라 밥상에서는 아니 일상생활에서도 흔하지 않은 이런 교육이 매우 신기했다. 순간 어릴 때부터 이뤄지는 인사하는 교육이 프랑스 사회에서 흔한 일인지 궁금했다. 나는 아이가 살짝 자리를 비웠을 때 앞에 앉은 프랑스 사람에게 물었다. 


"보통 저렇게 아이 교육을 시켜?"

"당연하지. 인사 기본 아니겠어? 이걸 제대로 못하는 프랑스 사람은 프랑스 사람이 절대 아니야."


평등한 관계에서 인사하기

나는 어릴 때 이런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없다. 행동으로 예의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에게 혼나면서 배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어른이 주는 건 두 손으로 받아야 하고 어른에게 인사는 반드시 허리를 굽혀야 하며 어른 앞에선 두 손을 공손이 모으고 남자는 왼손을 올려야 한다는 식의 교육이었다. 밥상에서는 가장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하고 수저를 시끄럽게 들거나 놓지 않아야 하며 밥 먹을 땐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수 없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예의는 웃어른을 향한 존경의 몸짓이다. 나랑 동갑인 사람, 나보다 어린 사람, 무엇보다 모르는 사람을 향한 예의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프랑스의 예의는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인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쩌면 프랑스가 오래전부터 인문학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건 사람과 사람을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 존중해주는 인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만약에 어릴 때 인사부터 잘하는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프랑스에서 조금 더 원활한 인간관계를 만들면서 살고 있을까. 지금 나는 프랑스에 와서 아이들이 배우는 기본 인사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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