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곰 Nov 15. 2019

언어를 몰라서 생긴 웃픈 일

저기, 방 있어요?

중년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유럽에서 자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발길이 닿는 대로 여행하고 숙소도 빈 방이 있는 호텔을 찾아서 바로 머무는 식이었다. 마침에 그들은 프랑스에 도착해서 숙소를 알아보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숙소 예약은 쉽지 않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하루에도 수만 명씩 오다니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도시 외곽에 있는 허름한 호텔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한참을 걷던 중 여행객 중 한 명이 시내에서 가장 위치가 좋아 보이고 건물도 예스러워 보이는 호텔을 찾았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당당히 호텔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원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어떻게 오셨어요?"


프랑스어로 물어보는 경비원의 질문에 한국인 관광객들은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프랑스어를 알지 못했다. 그나마 영어를 아는 한 한국인이 자기네 사정을 설명하며 물었다.


"저기 방이 있어요?"


안타깝게도 경비원들도 영어를 못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일단 들어가서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자는 심정으로 호텔에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일단 들어가서 빈 방이 있으면 머물고 빈 방이 없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도움을 받아볼 생각이었다. 경비원들은 격렬하게 그들을 막았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프랑스어가 비 오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간 그 장소는 소란스러워졌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돼서 답답한 상황이었다.


엑상프로방스 시청(Hôtel de Ville)

마침 한 한국인 유학생이 지나가면서 그 소란을 목격했다. 유학생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한국인 관광객과 경비원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몇분 뒤, 그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호텔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들도 무서운 얼굴을 금세 풀고 같이 웃기 시작했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어리둥절하며 유학생에게 어찌 된 것인지 설명해달라고 말했다. 유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 호텔인 줄 알고 오셨죠? 여긴 우리가 생각하는 숙박업소 호텔이 아니고 시청이에요. 프랑스어에서 Hôtel 뒤에 de ville 이 있으면 시청을 뜻해요."


그렇다. 프랑스어에서 '오뗄 Hôtel'은 오래된 저택을 말하는데 그 뒤에 '드 빌 de Ville' 이 붙으면 마을의 오래된 저택, 즉 시청이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숙박업소 호텔은 영어와 똑같이 '호텔 HOTEL' 이라고만 쓰여있다.



젓가락과 바게트의 차이

내가 엑상프로방스에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다. 매운 음식으로 속을 달래고 통통한 배를 한번 두드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베트남 사람이 운영하는 김치찌개 음식점에 갔다. 엑상프로방스엔 한국 식당이 하나도 없지만 이곳에서 파는 김치찌개는 그나마 한국 음식과 비슷하게 보여서 들어간 곳이었다. 사실 한국 음식과 비슷하기만 해도 뭐든 입에 넣을 수 있을 처지였다. 내가 김치찌개를 주문하자 종업원은 테이블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업원은 나에게 물었다.


"바게트가 필요하세요?"


굉장히 이상한 질문이었다. 김치찌개에 바게트 빵이라니. 분명 전혀 어울리지 않는 궁합이었다. 나는 속으로 프랑스에 있는 식당이라서 프랑스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바게트를 거절했다. 김치찌개 국물에 바게트를 찍어먹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마침내 시뻘건 김치찌개가 내 앞에 놓였다. 베트남인 식당 주인이 직접 담근 김치에 돼지고기 그리고 두부까지 완벽한 조합이었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입 후루루- 빨아들이자 식당 밖 거리가 달라 보였다. 이제 김치를 먹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테이블에 젓가락이 놓여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테이블 세팅을 하던 종업원이 깜빡했나 싶었다. 나는 아까 그 종업원에게 젓가락을 달라고 했다. 프랑스어로 젓가락이 뭔지 몰라서 영어로 찹스틱 chopsticks을 달라고 했다. 종업원은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아까 제가 바게트를 원하냐고 물어봤는데 손님이 거절하셨잖아요? 바게트가 젓가락이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바게트 빵과 젓가락의 차이는 한 끗 차이다. 바게트라는 단어 앞에 어떤 관사가 붙느냐에 따라 의미가 확 달라진다. 하나의 바게트 Une Baguette는 빵을 뜻하고 여러 개의 바게트 Les Baguettes는 젓가락을 뜻한다.



알고 보니 사투리

대학교 후배가 프랑스에 놀러 온다고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인터넷 전화로 한국에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프랑스 파리와 남프랑스에서 어떻게 구경하면 좋을지, 무엇을 먹을지 등 최대한 프랑스에서 좋은 시간만 보낼 수 있도록 나름의 내 노하우를 알려줬다. 더불어 프랑스에서 더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려면 프랑스어도 약간은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도 해줬다. 그런데 그 후배는 이미 프랑스어를 조금 알고 있다고 했다. 대학교 교양 수업에서 프랑스어 수업을 통해 공부했던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즉시 후배에게 간단한 프랑스어를 해보라고 요청했다. 후배는 자신 있게 인사부터 시작해서 자기소개를 프랑스어로 유창하게 말했다.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한 사람치곤 발음도 정확하고 억양도 양호했다. 나는 후배의 프랑스어를 더 듣고 싶어서 숫자도 일부터 말해보라고 했다.


"앙, 두, 투와.... 뱅!"


뱅? 분명히 내가 귀로 들은 숫자 20의 발음이 뱅이었다. 나는 후배의 발음에 깜짝 놀라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 웃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내 반응에 후배는 매우 어리둥절했다. 사실 20의 정확한 발음은 '봥 vingt'이다. 그런데 후배는 프랑스 남부 사투리로 뱅이라고 발음하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남프랑스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투리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후배는 내일이라는 프랑스 단어 드멍demain도 드맹으로 알고 있었다. 후배를 가르친 교수님은 분명 남부에서 공부를 했던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후배의 대답은 의외였다. 자신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준 교수님은 파리 대학교에서 박사까지 공부를 한 사람이라는 거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방쇼는 프랑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마실 수 있는 뜨거운 와인이다.

우리 일상 속에서 흔히 말하는 프랑스어 중에도 남부 사투리가 있다. 예를 들어 초콜릿이 듬뿍 들어있는 빵의 이름인 빵오쇼콜라를 뺑오쇼콜라라고 말한다든지, 겨울에 마시는 뜨거운 와인인 방쇼를 뱅쇼라고 말하는 것 등이다. 이미 이 이 단어들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하나의 표준 명사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결국 내 후배는 프랑스에 와서도 남부 사투리로 프랑스어를 실컷 쓰다가 돌아갔다. 그래도 사투리를 쓰면 좀 어떠겠는가. 머나먼 타지 한국에서 불어를 알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현지에서 용기 있게 써먹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다쟁이와 수다쟁이의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