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어릴 때 많이 들어봤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수없이 반 친구들 앞에서 발표했던 주제다. 또 매 학기 시작 할 때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질리도록 말했던 거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처음 가졌던 꿈은 과학자였다. 나를 위해서 무엇이든 만들어줬던 할아버지처럼 만능 재주꾼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1학년 담임 선생님은 날 척척박사라고 불렀었다. 한 때는 선생님도 되고 싶었다. 친척들이 한데 모이면 동생들과 함께 학교 놀이를 하곤 했는데 나는 늘 선생님 역할을 했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가장 보람된다고 그때 느꼈었다. 그 이후에도 개그맨, 신부님, 소설 작가, 화가 등 여러 꿈을 꿨지만 하나도 이뤄진 게 없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했던 방송 PD일도 내 전공과 내 꿈과 아무런 상관없는 직업이었다. 그래서 난 꿈은 꿈일뿐 현실과 맞지 않는 허상이라고만 생각했다.
매년 똑같이 돌아가는 직장 생활도 점점 지쳐갔다. 꿈도 없고 주어진 업무에만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마치 쳇바퀴 안에서 끊임없이 달리는 다람쥐 같았다. 게다가 이런 삶을 적어도 30년을 해야한다니. 너무 내 인생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인생에 새롭고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보고 싶었다.
프랑스에서의 첫해 3개월은 파리 서쪽에 있는 앙제(Angers)에서 공부했다. 앙제는 중세 시대부터 많은 프랑스 귀족들이 교육을 받았던 곳이라서 파리보다 더 표준어를 쓰는 걸로 유명하다. 그래서 지금도 어학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 넘친다. 내가 어학을 공부했던 학교는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수업이 있었다. 또 선생님은 매월 초에 몇 가지 주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1주일에 한 번씩 프랑스어로 발표를 시켰다. 나는 매일 수업이 끝난 다음, 주제에 맞는 원고를 작성하고 선생님께 제출했다. 그러면 선생님이 내 원고를 수정해줬고 다시 나는 그걸 외워서 발표했다.
그리고 앙제에서의 생활이 거의 마무리 될 무렵, 선생님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너는 꿈이 뭐니?"
나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머뭇거리는 날 바라보며 꿈을 주제로 마지막 발표를 해주길 바랐다. 내가 미리 준비했던 발표를 뒤엎고 다시 준비해야 순간이었다. 가뜩이나 발표 하나 준비하는 것도 버거운데 처음부터 다시 준비하는 게 너무 싫었다. 하지만 마지막 발표인데 유종의 미를 거두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꿈에 대해 생각했다. 내 꿈이 뭘까.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머리를 붙들고 산책을 했다. 앙제 강변까지 나와서 시내 야경을 바라봤다. 문득 화려한 불빛이 가득한 시내와 내가 지금 서있는 시외를 이어주는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우두커니 서있는 다리는 왠지 대단해보이기까지 했다. 다리는 앙제시 만느 강(Maine)의 강한 물결을 이겨내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디딤을 버티고 있었다. 수백 년동안 한 자리에서 그렇게 있었다.
순간 나도 다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 다른 곳을 하나로 이어주고 한 자리에서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지키고 있는 다리말이다. 우리나라는 분명 역동성이 있다. 경제적으로 계속 성장하면서 세계 안에서 큰 나라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또 프랑스는 오랜 시간 꽉 채워온 문화적 정체성이 있는 나라다. 과거를 존중할 줄 알고 이를 기반으로 현재와 미래를 건설하고 있다. 만약에 이 두 나라의 장점이 잘 연결된다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조금 더 여유를 갖고 합리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두 나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활발해질 수록 어느 곳이 더 좋아지고 나빠지는게 아니라, 서로를 보완해가면서 누구나 만족하는 삶을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엔 바로 내가 서있어 보는거다.
아무래도 나는 프랑스에 오래 남아서 프랑스라는 나라에 조금 더 풍덩 빠져봐야겠다. 고작 몇 년으로 이 나라를 알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내가 두 나라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 꿈은 별게 아닌 것 같다. 꿈은 손에 잡히지 않는 허황 된 게 아니다. 꿈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의 것이다.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하면서 지금 기쁘게 준비하고 있다면 이미 꿈을 가진 거나 다름이 없다고 본다. 그리고 나는 다시 꿈을 가지고 꿈을 향해 길을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