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생활 3년 차가 되니 웬만한 한국 음식은 뚝딱 요리해서 먹을 수 있게 됐다. 기숙사에서 삼시 세 끼를 무료로 제공하지만 주말에는 되도록 한국 음식을 직접 요리해서 먹으려고 노력한다. 번거로움도 있다. 간단한 요리를 하려고 해도 여러 마트에 들려서 재료를 사야 한다. 예를 들어 고기는 정육점, 야채는 아침에 열리는 전통 시장, 간장과 고추장 같은 한국 소스는 중국 마트에서 살 수 있다. 그래서 한 번 장을 보러 나가면 1시간은 족히 걸린다. 교통편도 없기 때문에 내 휴대폰에 있는 만보기의 숫자는 끊임없이 올라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요리를 해서 먹으려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소소한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지난 1주일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와 고민들이 한 방에 날아간다. 더불어 내 마음 한 구석에 켜켜이 쌓여있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도 어느 정도 풀린다.
그러나 여기서도 절대 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겨울 길거리 음식의 최고봉인 붕어빵, 달걀빵, 국화빵 등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필수 간식인 호두과자도 없다. 누군가는 방학 때 한국에 와서 먹을 수 있지 않겠냐고 나에게 물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프랑스 학사일정에 따라 긴 시간을 할애해서 한국에 갈 수 있는 때는 여름뿐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바람과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이 되면 이 음식들이 내 머릿속을 괴롭힌다. 게다가 한국 드라마에 각종 길거리 음식들을 보고 입맛을 다시다가 드라마 전개를 놓치기 일쑤다.
한국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집에서 짐을 한창 싸고 있을 때 떼제 기도모임에서 알게 된 아녜스 누나가 우리 집으로 택배를 하나 보냈단다. 프랑스에 꼭 가져가라는 당부도 남겼다. 다음 날 집에 온 작은 박스를 조심스레 상자를 열어보니 다름 아닌 '붕어빵 팬'이었다. 무려 4개나 구울 수 있는 어마 무시한 팬이었다. 가정용 붕어빵 팬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지만 내 아쉬움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던 그 성당 누나에게도 너무 고마웠다.
나는 프랑스에 돌아와서 바로 붕어빵 팬을 집어 들고 붕어빵을 구웠다. 먼저 프랑스의 좋은 밀가루로 빵 반죽을 만들고 빵 속에 넣을 재료를 고민했다. 정석대로 하려면 팥 앙금을 넣어야 아시아 마트에 있는 팥앙금은 너무 비쌌다. 팥 앙금 서너 스푼이 무려 7천 원이나 했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밤 잼을 넣기로 했다. 금세 고소한 냄새가 기숙사 로비를 지나 복도까지 퍼졌다. 이윽고 기숙사 친구들은 냄새가 나는 주방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붕어빵을 처음 본 친구들의 반응은 딱 한 가지였다. 인상을 쓰면서 이게 무엇이냐는 반응이었다. 생긴 건 물고기인데 분명 빵이니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미리 구워진 붕어빵을 친구들에게 나눴다. 친구들은 조심스레 한 입 베어 물더니 이윽고 나머지 붕어빵을 한 입에 밀어 넣으며 쌍 따봉을 내보였다. 그날 나는 붕어빵 50개를 구웠다.
몇 개월 뒤 한 성당 동생 안티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신앙생활 안에서 우연찮게 여러 번 만났던 동생이다. 전에 내가 붕어빵을 만든 걸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었는 게 그것을 본 모양이었다. 흥미롭게 내 생활을 지켜보고 있었던(?) 안티아는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해왔다. 이번엔 호두과자를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거였다. 내가 붕어빵을 굽는 걸 보고 호두과자 굽기도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정확히 2주 뒤에 한국에서 택배가 왔다. 안티아가 보낸 택배 상자였다. 그 안에는 가정용 호두과자 팬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선 팥 앙금이 비싼 것을 알아차리고 호두과자용 팥 앙금도 함께 보내왔다. 심지어 호두과자 반죽 믹스도 들어있었다. 아주 센스 있는 택배 상자였다. 택배 상자를 열었을 땐 저녁 식사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지만 나는 곧바로 호두과자를 구워보기로 했다.
붕어빵과 달리 호두과자를 굽는 일은 여간 쉽지 않았다. 호두과자는 동글동글하게 구워야 하기에 호두과자 모양이 찍힌 팬의 깊이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반죽을 적게 넣으면 쉽게 탔고, 많이 넣으면 반죽이 부풀어서 팬 밖으로 넘치기 일쑤였다. 포기할 수 없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있는 호두과자를 굽고 싶었다. 또 안티아가 나에게 내준 숙제가 있어서 더더욱 잘 구워야 했다. 그 숙제는 이렇다. 호두과자를 예쁘게 구워서 자신에게 인증을 하고 브런치에 그 후일담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브런치에 글을 남긴다.) 여러 번 시도 끝에 적당한 온도와 반죽 그리고 팥 앙금을 얼마나 넣어야 할지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그 호두과자가 완성됐다.
나는 호두과자를 조그만 종이컵에 담아 같은 층에 사는 기숙사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프랑스에선 각자의 방 문을 잘 두들기지 않는 법인데 내 호두과자만큼은 기쁘게 환영해줬다. 딱 야식이 고플 시간이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기숙사 위층에 사는 어떤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얼굴은 서로 익히 알던 사이였지만 친구라고 말할 만큼 친분이 있었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에게 말을 걸어오다니, 적잖이 당황스럽긴 했다. 그 친구는 눈을 휘둥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너가 한국 요리를 잘하는 그헝 쉐프(훌륭한 요리사)라며? 00가 며칠 전에 너가 만들었던 어떤 이상한 모양의 빵을 먹었는데 굉장히 맛있었어!!" 아무래도 같은 층의 기숙사 친구들에게 호두과자를 나눠준 것을 몇 개 얻어먹었던 모양이었다. 이어 그 친구는 한국 음식과 문화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주식은 무엇인지, 프랑스처럼 지역색이 있는 토속 음식이 있는지 또 식사 예절은 어떤지 등이었다. 나는 한 마디 더 붙여서 한국 음식엔 '조화(Ensemble)'가 있다고 강조했다. 산과 바다, 땅과 물에서 난 다양한 먹거리들이 누구도 튀지 않게 하여 맛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 말이다. 위층 친구는 내 얘기를 곰곰이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에 요리를 하게 되거든 자신을 꼭 초대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생각해보면 한국 음식은 재료의 조화뿐만 아니라 요리하는 사람과 주변 환경과의 조화도 이루어지는 듯하다. 우리나라 옛 정서를 생각해보면 이웃끼리 음식과 재료를 나눠먹었던 모습을 생각할 수 있겠다. 또 누군가를 생각하며 정성스레 밥을 지으면 더 맛이 좋은 것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붕어빵과 호두과자. 분명 우리나라에선 쉽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아녜스 누나와 안티아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 훌륭한 음식(간식)을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머나먼 프랑스에서 더욱더 따뜻하고 배부르게 겨울을 잘 보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