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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곰 Nov 17. 2019

상상도 못 했던 삶

나는 내가 프랑스에서 살게 될 거라고 단 1분 1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프랑스어도 마찬가지다. 배울 생각은커녕 봉쥬~ 의 한국식 발음 봉주르가 잘 못됐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한국에서 주야장천 억지로 배운 영어 때문에 외국어를 다시는 배우고 싶지 않았다. 그저 프랑스라면 모름지기 에펠탑과 개선문 앞에서 사진 찍고 바삭한 바게트에 치즈를 올려먹는 관광객스러운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프랑스에 다시 도착한 나

2016년 8월, 여름이 거의 지나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 즈음, 나와 엄마 그리고 내 동생과 함께 프랑스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한 번도 유럽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동생과 같이 돈을 모아서 기획한 여행이었다. 처음엔 스페인을 갈지, 독일을 갈지, 이탈리아를 갈지 고민을 많이 했다. 프랑스는 갈 생각이 없었다. 나는 이미 2014년에 파리를 여행했었기에 프랑스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어디서 얘기를 들었는지 유럽 여행은 파리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해왔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여러 나라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열흘이었다. 파리에서만 구경해도 1주일은 걸리는데 다른 나라에 갈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결정한 나라가 바로 프랑스였다. 파리를 시작으로 루르드, 툴루즈, 마르세유를 거쳐 다시 파리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었다.


마르세유

그중 마르세유(Marseille, 프랑스어로는 막세이라고 읽는다)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엑상프로방스에서 불과 몇십 분만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지중해에 인접한 항구 도시에서 나와 엄마 그리고 동생은 사흘이나 머물렀었다. 지금도 나는 마르세유에 갈 때마다 가족들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가족들과 함께 머물렀던 호텔, 정어리 피자 시키지 말라고 했는데 불어를 몰라서 결국 시켰던 음식점, 갑자기 취객이 행패를 부려서 무서웠던 바닷가 등 곳곳이 추억으로 가득하다. 그러다가 나 혼자서 실실 웃을 때가 있는데 그 당시에 내가 프로방스에서 살 게될 거라는 걸 알았을까라는 이유에서다. 또 만약에 미리 알았다면 그 여행이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을까 라는 상상도 해본다.


미리 프로방스에 왔다간 경험 덕분에 프랑스에서 첫 달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없었다. 모름지기 새로운 장소에선 모든 게 신기해야 하는데 나에게 엑상프로방스는 그렇지 않았다. 이미 한 번쯤 다녀갔던 장소, 이미 걸었던 길이기 때문에 모든 게 익숙했었다. 여행을 마치고 딱 1년 뒤, 2017년 8월에 이곳에 왔으니 내 기억은 생생하다 못해 살아 움직일 정도였다.



새롭게 느끼고 새롭게 배우는 것들

어학당에서 공부할 때, 내 외국인 친구들은 부모님을 이곳에 초대해서 방학을 같이 보낸 경우가 많았다. 대개 부모님들은 자식이 타지에서 어떻게 공부하는지 보고 싶어 하고 어려운 건 없는지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도 엄마에게 늘 내가 사는 동네, 내 방 등 여러 가지를 사진 찍어서 보내준다.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표시다. 가끔은 나도 내 외국인 친구들처럼 이곳에 가족을 초대해서 휴가를 같이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었다.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나의 강렬한 바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 남프랑스에서 가족여행을 했던 만큼 날 보러 와달라는 얘기를 쉽게 하지 못하고 있다. 먼 곳에서 프랑스까지 오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많은 시간을 빼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는 걸 난 알고 있다. 오직 나만 보기 위해 프랑스에 와달라는 나의 바람은 욕심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한국에서 친구들이 종종 놀러 온다. 그때마다 나를 위해 프랑스에선 구하기 힘든 한국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지고 온다. 가방이 꽤나 무거울 법한데도 기쁜 표정으로 내게 줄 땐 큰 감동을 밖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은 '친구' 그 자체였다. 자신의 여행 일정을 쪼개서 일부러 엑상프로방스로 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공자는 말했다.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와 주니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만약 내가 이곳에서 살지 않았다면 이 즐거움을 평생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프랑스에 살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리자고 다짐했다. 현재는 미래를 위한 시간이 아니고 현재는 현재를 위한 시간인데 미래 때문에 현재를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지 굉장히 궁금하다. 과거에 내가 프랑스에서 살게 될 거라고 상상을 못 했던 것처럼 상상치 못한 또 다른 미래가 곧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알지 못하는 미래를 기다리는 삶. 이 얼마나 흥분되고 설레는 현실인가. 이것을 위해서 체계적인 계획도 세울 필요가 없다. 늘 우리가 하는 말이 있지 않는가,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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