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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곰 Oct 28. 2022

산티아고 순례길의 원조,
르퓌 엉 발레이 주교좌성당

한 번만 알아보는 성당 이야기, 한알성당 #11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인 성 야고보 사도의 무덤으로 가는 길을 가리킵니다. 천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은 직접 두 발로 걸어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까지 가고 있습니다. 순례길은 프랑스와 스페인 안에서 여러 갈래 길로 나눠져 있습니다. 그중 가장 있기 있는 길은 프랑스 길 Chemin Français입니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지대에 있는 작은 마을인 생쟝 피에드 포르 Saint-Jean-Pied-de-Port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집니다. 우리나라 사람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습니다. 새로운 길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엔 설레는 표정과 기대감이 바로 보입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긴장감마저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 야고보(산티아고) 사도

  하지만 모든 사람의 여정이 생쟝 피에드 포르에서 시작하는 건 아닙니다. 어떤 프랑스 사람은 이보다 훨씬 전에 순례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파리, 리옹에서 걷는 사람도 있고 자기 집에서 발걸음을 떼는 사람도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이 선호하는 길은 ‘르퓌 길 le chemin du Puy’입니다. 프랑스 중부 화산지대에 위치한 르퓌 엉 발레이  Le Puy-en-Velay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생쟝 피에드 포르까지 약 740km를 걷고, 다시 생쟝 피에드 포르에서 산티아고까지 약 780km 정도 걷습니다. 아마 이 모든 길을 걸으려면 최소한 세 달은 걸릴 겁니다. 얼마나 많이 걷는지 감이 잘 안 오죠? 서울에서 부산을 두 번이나 왕복하고 다시 편도로 한번 더 가야 하는 정도의 거리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큰 도전을 시작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성당이 있습니다. 르퓌 길의 시작점, 르퓌 엉 발레이 주교좌성당 Cathédrale Notre-Dame du Puy-en-Velay입니다.


르퓌 엉 발레이 시



순례길의 진짜 의미

  오랜 시간 동안 프랑스는 교황청 다음으로 버금가는 가톨릭 국가였습니다. 교황이 직접 대관식을 치러 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유럽에서 교황이 유일하게 국왕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교황은 프랑스를 통해 정치적인 힘을 얻고, 프랑스 왕은 교황을 통해 종교적 힘을 얻는 비즈니스 관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진짜로 신앙 안에서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던 프랑스 국왕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건 프랑스는 교황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 몸으로 신앙을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신앙 행위는 온 유럽에 퍼지기도 했지요. 산티아고 순례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길을 걷는 주된 사람들은 프랑스 출신이었습니다. 8세기 프랑스 사람들은 저 멀리 이베리아 반도에서 성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열성적으로 순례에 나섰습니다. 가뜩이나 이슬람 세력이 유럽 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에게 성 야고보 사도는 희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순례라는 행위와 길 위에서 이뤄지는 기도로 그리스도교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바람이 통했던 걸까요? 이슬람 세력은 스페인 중부까지만 점령하고 그 이상은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거기엔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짐작컨데 이슬람 세력도 차마 무장하지 않은 순례자들을 공격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향하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해서 순례를 마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순례를 하고자 한 발짝이라도 발을 내딛는 순간 이미 순례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새로 만든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관광청이나 어떤 기업 같은 곳에서 ‘여기 걸으세요’라고 만들어 놓은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미 형성된 여러 갈래의 길을 연결한 게 산티아고 순례길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길이나 연결하지도 않았습니다. 프랑스에 있는 가톨릭과 관련된 지역이나 성당, 수도원 그리고 유서 깊은 도시를 중심으로 연결했습니다. 그래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일 뿐, 유일한 목적지는 아닌 것입니다. 순례길 중간중간에 있는 성당과 가톨릭 유적지가 목적지가 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제가 얘기했던 중세시대 프랑스 사람들을 다시 생각해 볼까요.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걸었을 겁니다. 표지판도 없고, 스마트폰은 더욱이 상상할 수도 없었겠죠. 그래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프랑스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 않았거나 그들의 여정이 순례가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기도를 했고 어디에 도착했더라도 그 자체가 순례였습니다.


르퓌 엉 발레이 주교좌성당


돌 위에 세워진 주교좌성당

  르퓌 길의 시작인 르퓌 엉 발레이는 어떤 도시이길래 산티아고 순례길에 편입되었을까요? 그 비밀은 바로 르퓌 엉 발레이 주교좌성당 안에 있습니다. 성당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주교좌성당이라고 써놓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습니다. 그래도 성당을 살펴보면 이곳이 왜 주교좌성당이 되었는지 알 수 있겠죠. 제단을 중심으로 한번 보겠습니다. 성당 한쪽 구석에 뜬금없이 까만 돌이 놓여있습니다. 얼핏 보면 놀랄 일도 아닙니다. 옛날 옛적에 이 지역이 화산지대였으니까 까만 현무암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이 주교좌성당도 현무암이 섞인 돌로 지어서 까만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돌은 사뭇 다릅니다. 현무암보다 더 까맣고 위 부분은 해변가의 자갈처럼 맨질맨질합니다. 일단 이것만 봐도 현무암은 아닌 게 틀림없습니다. 돌 크기도 장난 아니게 큽니다. 그뿐일까요, 아주 넓습니다. 어른 세명이 앉아도 될 만큼의 넓이를 가진 직사각형입니다. 마치 거대한 식탁 아니면 고인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더 재밌는 점은 이 돌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고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돌 위에 드러눕습니다. 그리곤 두 눈을 감고 주님의 기도부터 시작해서 성모송을 마치는 모습은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교좌성당을 방문할 때에는 너도나도 이 돌에 누워보겠다고 줄을 지어 기다리는 풍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열병의 바위


  이 돌의 이름은 ‘열병의 바위 Pierre des Fièvres’입니다. 혹은 발현의 바위  Pierre des Apparitions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 돌은 원래부터 수천 년 동안 이 자리에 있었던 고인돌이었습니다. 어쩌면 선사시대부터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한 부인이 꿈을 꿨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스 산 Mont Anis으로 가보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부인은 곧바로 산으로 향했습니다. 꼭대기에는 커다란 고인돌 같이 생긴 바위가 있었고 갑자기 잠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부인 곁으로 수많은 천사와 성인들 Saints이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누구보다 빛나는 한 여인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성모 마리아였습니다. 이윽고 눈이 떠진 부인 주변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부인의 눈이 떠짐과 동시에 자신을 괴롭히던 병이 말끔히 사라진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 주교는 감탄을 금치 못했고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 바위 위에 성당을 지었습니다. 이게 르퓌 엉 발레이 주교좌성당의 시초입니다.


주교좌성당 내부


검은 성모 마리아와 검은 아기 예수

  성모 마리아의 발현 소식은 삽시간에 온 동네로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아픈 몸을 이끌고 성모 마리아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이 신비로운 바위에 몸을 맡겼습니다. 순례자들은 점차적으로 많아졌고 르퓌 엉 발레이 주교좌성당은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바위와 함께 성모 마리아 성지로 유명해졌습니다. 성당에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기념하기 위해 독특한 나무 조각상을 세웠습니다. 검은 피부를 가진 마리아 무릎 위에 아기 예수가 앉아 있는 모습인데 당시로서는 흔한 조각상은 아니었습니다. 지중해 연안에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만 가끔 볼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어떤 경로로 프랑스 중부에 있는 이 도시까지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조각상 덕분에 더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수 백 년이 흐른 13세기엔 이 조각상이 바뀝니다. 거룩한 왕이라고 불리던 루이 9세는 십자군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르퓌 주교좌성당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던 성모상을 봉헌했습니다. 기존 조각상과 비슷한 모양에 색깔 또한 검은색이었습니다. 당시 루이는 예수의 흔적을 찾아 지중해 전역을 누비며 물품을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루이가 봉헌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조각상도 자신의 수집 유물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두 조각상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조각상은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채 사라졌고, 루이가 봉헌한 조각상은 18세기 프랑스 혁명군에 의해 성당과 함께 불태워졌습니다. 


검은 성모 마리아와 검은 예수


  현재 중앙 제단 위에는 세 번째 조각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원래 르퓌의 어느 빈 수도원에 있던 것인데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고 먼지만 가득 덮여 있었습니다. 마침 프랑스혁명으로 파괴된 주교좌성당을 새로 지으면서 여기로 옮겨온 것이죠. 게다가 이 조각상 역시 검은 성모 마리아와 검은 아기 예수이기 때문에 이질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1856년 6월, 르퓌 주교는 교황 비오 9세의 이름으로 이 조각상을 축복하고 주교좌성당의 공식적인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조각상으로 선포했습니다. 매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이 조각상은 주교좌성당 바깥으로 나갑니다. 건장한 남자들이 조각상을 들고 시내를 행진하면 곧이어 약 만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뒤따르며 기도합니다. 사람보다 높이 올려진 검은 성모 마리아와 검은 아기 예수는 르퓌 엉 발레이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고 있습니다. 


8월 15일에 열리는 행진


 

1호 산티아고 순례자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종교적 의미까지 있는 르퓌 엉 발레이 주교좌성당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으로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게다가 르퓌 길은 성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발견된 직후 생겼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붐이 일어났던 12세기 이전에 이미 르퓌 엉 발레이 사람들은 산티아고로 향하고 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르퓌 주교였던 고데스칼 Godescalc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는 순례길을 통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간 최초의 프랑스인입니다. 그가 순례길을 직접 걸었는지 아니면 마차를 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950년 아흔 다섯 명과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했고 951년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스페인 로그로뇨 아델다 수도원의 고메즈 수도자에 따르면 고데스칼 주교는 성 야고보 사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습니다. 그 이유가 아주 기가 막힌데, 고데스칼 주교는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인 7월 25일에 태어났고 또 같은 날 주교로 축성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저 같아도 성 야고보 사도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주교좌 성당 바닥 정문 그리고 연결된 곳


  1호 순례자인 고데스칼 주교 덕분에 르퓌 길은 산티아고로 향하는 가장 오래된 순례길이 되었고 르퓌 엉 발레이 대성당은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성당 앞에는 병원 L’Hôtel-Dieu을 지어 다른 곳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을 돌봐주기도 했습니다. 아마 마음과 몸을 다 돌봐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서인지 1998년 르퓌 엉 발레이 대성당과 바로 앞에 있는 옛 병원 건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명성에 따라 사람들은 지금도 르퓌 엉 발레이 대성당에 모여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매일 아침에 거행되는 순례자 미사는 이제 막 순례자로 거듭난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신부님의 축복을 받은 순례자들은 주교좌성당 바닥을 뚫고 시내로 향합니다. 성당이 산 꼭대기에 지어졌기 때문에 지형적인 이유로 정문을 바닥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나둘씩 바닥 아래로 사라지는 이 모습은 오히려 감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어쩐지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성당 안에 남아 있는 신자들은 그들을 향해 박수와 기도의 힘을 보탭니다.


주교좌 성당에서 시작되는 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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