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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곰 Oct 23. 2019

외할머니와 엄마의 편지

혼자 사는 어려움

대학생 때 기숙사에서 잠깐 살았던 경험을 제외하고는 혼자 살아보는 게 처음이다. 그것도 한국도 아닌 프랑스에서 혼자 몇 년째 살고 있다. 분명 나만의 공간이 있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다. 마치 나만의 작은 세계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모두가 휴가를 나가고 심지어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날이면 내 방엔 고요함 만이 남는다. 내가 움직이는 작은 소리만이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울 뿐이다.


프랑스에 와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날이 너무 많다. 겨우 잠들었다고 하더라도 새벽에 여러 번 깨고 만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하나 있다면 잠들기 직전의 어둠인데 방 안의 모든 전등을 끄고 내 침대로 향하는 짧은 순간은 지독할 정도로 긴 시간으로 다가온다. 하루는 잠들기 직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하면 며칠 만에 발견될까? 프랑스 사람들은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방문을 두드리지 않기에 사생활을 존중하는 프랑스 문화상 분명히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내가 발견될 게 뻔하다.

 

방에서 바라보는 달은 매우 예쁘다. 어두운 밤이 얼마나 깜깜한지 달빛에 잠을 깬 적도 있었다.


혼자 사는 삶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외로움'과 '두려움'이다. 한국에는 평생 함께 살았던 내 가족이 있다. 엄마가 해놓은 따뜻한 밥을 먹으며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할 수 있고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땐 짜증도 낼 수 있다. 또 한국에는 한밤 중에 갑자기 연락해서 치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여긴 내 가족도, 내 친구들도 없다. 당연히 내 방에 돌아와서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힘든 건 없었는지, 재미있었던 일 등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방문을 열면 오직 고요함만이 나를 맞이할 뿐이다.


두 통의 편지

나는 프랑스 생활이 힘들 때마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나에게 써준 편지를 꺼내 든다.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게 가장 잘 보이는 책장에 고이 껴놓았다. 매번 편지를 읽으면서 꺼이꺼이 운다. 그러면서 외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했던 여러 시간들을 회상하게 된다.


나의 외할머니는 종종 우리 집에 머무셨다.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날엔 몇 달씩 나를 키워주시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때론 나의 큰 선생님이었다.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셨던 경험으로 나에게 공부를 가르쳐주셨다. 할머니 덕분에 반에서 거의 꼴등 하던 내가 3등까지 올라가고 전교 한자 경시대회에서 입상했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또 할머니는 열심한 신앙인이었다. 매일 밤 9시면 방에 혼자 들어가셔서 가족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셨고 동네에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눠주시곤 했다.


나는 길가의 펴있는 꽃을 발견하면 그 아름다운에 매료되어서 발길을 멈춘다. 흙먼지만 가득한 땅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게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꽃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외할머니의 영향이 크다. 방학 때 외가댁에 가면 마당에 펴있는 형형색색의 꽃들을 볼 수 있었는데 마치 천국을 연상시켰다. 더구나 잠깐 시내에 다녀온 사이에 보란 붓꽃이 활짝 핀 것을 발견하고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 순수해 보였다.


외할머니는 내가 한국을 떠나기 한 달 전에 하느님 품으로 가셨다. 갑자기 발견된 암이 원인이었다. 외할머니는 자신의 병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세상 떠날 날을 스스로 준비하셨다. 손자들에겐 편지 한 통씩 남기기도 하셨다. 외할머니는 그렇게 몇 달을 투병하시다가 조용히 돌아가셨다. 외가 쪽에선 가톨릭 장례를 치러본 경험이 없었기에 내가 대부분을 장례를 준비하고 할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었다. 만약 내가 프랑스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면 내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사랑하는 그레고리오.
초심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온 너에게,
할머니는 기쁨과 큰 사랑을 보낸다.
정말 모든 이웃이 존경하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부탁한다.
섬김과 겸손을 잊지 마라.
너를 사랑하는 외할머니, 가슴에 깊이 간직하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내게 남긴 편지)


우리 엄마는 그냥 내 엄마다.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내 눈이 벌게진다. 갑자기 가족에 찾아온 어려움 때문에 엄마 혼자 나와 내 동생을 15년 넘게 키우셨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사소한 일로 싸웠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잔소리하는 엄마를 무척이나 싫어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내가 군대에 입대하던 날, 언제인지도 기억 못 할 정도로 오랜만에 엄마를 꼭 안았다. 그때 엄마의 얼굴을 제대로, 자세히 처음 보게 됐는데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알던 엄마의 얼굴이 아니었다. 수많은 세월을 혼자 이겨낸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이제야 내가 성인이 되고 엄마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 엄마도 엄마 역할이 처음이다. 어린 나이에 갖은 어려움을 홀로 막고 오직 두 아들만을 바라보던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는 두 아들에게 '미래에 무엇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으셨다.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엄마는 한 번도 어떤 것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와 내 동생이 무엇을 하든지 늘 믿고 지지해주셨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프랑스로 떠나겠다는 말을 했을 때도 "너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이면 너 뜻대로 해라"라는 말만 하셨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담담하게 날 보내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한국을 떠나는 날, 엄마가 날 배웅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울었다는 얘기를 동생에게서 들었을 땐 내 마음이 얼마나 미어졌는지 모른다. 게다가 프랑스에 도착하고 나서는 내 캐리어 가방에 몰래 편지를 넣어놨으니 읽어보라는 엄마의 메시지가 남겨져있어서 참아왔던 내 눈물이 결국 터지고 말았었다.


아들 그레고리오.
엄마는 너가 잘 하라리라 믿는다. 그리고 사랑한다.
너를 향한 할머니의 무한한 기도와
엄마의 늘 기도 속에서 온전한 너를 찾아가기를 바란다.

우린 늘 기도 속에서 만날 거야.
모든 것에 너가 부담을 느끼고 힘들어하면 안 돼.
엄마는 늘 너의 편이야.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던 너 편이라는 것을 기억하렴.

(한국을 떠나던 날, 엄마가 내 짐에 몰래 넣어놓은 편지)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

외할머니, 엄마가 사무치게 보고 싶다. 웬수라고 부르는 내 남동생도 보고 싶다. 내가 프랑스에 갈 것인지를 고민할 때 처음 털어놓았던 사람이 바로 동생이었다. 사회에 자리를 잘 잡아서 일하는 동생이 없었다면 내가 여기에 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함께 한다'라는 말은 멀리 있어도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때 성립된다고 본다. 아무리 매일 피부를 맞닿고 눈을 마주 봐도 서로 의지가 안되고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면 어떻게 함께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함께 한다는 건 물리적인 거리와 시간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내게 남긴 편지들


가족 간의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가족은 내가 프랑스에서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지지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날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기에 오늘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지금도 내 방엔 싸늘한 외로움과 어둠이 가득 차 있지만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은 모든 것을 몰아내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내게 남긴 편지는 바로 그 사랑의 매개체인 셈이다.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연락을 해보고 마저 써 내려가고자 했다. 무뚝뚝한 큰 아들이기에 엄마에게 먼저 연락을 한 적이 거의 없어서 이번엔 먼저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조금 전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결국 오늘도 먼저 연락하는 건 실패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래도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은 엄청난 힘을 지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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