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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곰 Oct 24. 2019

감자, 너나 먹어

땅의 사과, 감자

못생겼지만 고소한 맛을 지닌 감자는 단연 일품 식재료다. 기르기도 쉬워서 충분한 물과 햇빛만 있으면 누구나 심을 수 있다. 게다가 감자는 심은 것보다 수확하는 게 더 많다. 감자밭에서 땅을 파다 보면 한 줄기 아래 주렁주렁 열린 샛노란 감자가 무더기로 나온다. 그리고 햇감자를 바로 쪄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감자의 껍질을 벗긴 뒤 소금에만 살짝 찍어 먹어도 입안에 감칠맛이 확 돈다. 텁텁할 땐 물김치 한 사발 들이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감자 두세 개만 먹어도 충분히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다. 정말로 감자는 땅의 선물이며 훌륭한 음식이다. 


프랑스 식탁에서도 감자는 가장 흔하게 나오는 음식 식재료 중에 하나다. 감자를 부르는 프랑스어는 뽐므 드 떼르(La pomme de terre)라고 부르는데 직역하자면 땅의 사과라는 뜻이다. 사과랑 감자 생김새는 분명 다른데 왜 감자를 땅의 사과라고 부르는 걸까. 주변에 음식을 좀 한다는 프랑스 친구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지만 그들도 그렇게 부르니깐 자기도 부르고 있었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마치 오래전 대장금 드라마에서 어린 장금이가 홍시를 먹어서 홍시맛이 낫는데 어찌 홍시 맛이 나냐고 되묻는 것과 같은 대답이었다. 


땅의 사과, 감자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다. 질문이 있으면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게 다 물어봐야 하고 직접 찾아볼 수 있는 건 속이 시원할 때까지 찾아본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한 줄기에서 여러 개 사과가 풍성하게 나오는 모습을 빗대서 붙인 게 아닐까 싶다. 땅을 기준으로 사과는 하늘에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감자는 땅에 주렁주렁 작물을 만들어내니깐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사과와 감자가 닮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엔 정말로 많은 종류의 사과가 있다. 마트에 가면 빨간 사과, 노란 사과, 초록 사과 등이 아주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다. 또 내가 종종 먹었던 특별한 사과도 있는데 바로 야생에서 막 키운 노란 사과다. 울퉁불퉁하고 곳곳에 상처가 있는 게 꼭 감자처럼 생겼다. 게다가 수확하고 나서 며칠이 지난 이 못생긴 사과는 더 노랗게 익어서 감자와 생김새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믿거나 말거나 꽤 그럴듯한 설명이 아닌가. 만약 내 생각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사과 같은 내 얼굴 이쁘기도 하지요'라는 동요는 못 부를 수도 있겠다. 


감자, 내일도 감자

프랑스에서 첫 해는 감자가 너무 반가웠다. 음식과 문화 등 모든 게 다른 프랑스 사회에서 내게 가장 익숙했던 게 감자였다. 가끔은 프랑스 감자가 더 고소하고 맛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뭐, 감자 맛이 거기서 거기겠지만 그땐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자를 잘 안 먹는다. 프랑스 사람들이 감자를 먹어도 너무 많이 먹는다. 아직까지 창고에 감자가 없는 프랑스 가정집을 한 번도 못 봤다.


나는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삼시 세 끼를 먹는데 감자 때문에 괴로웠던 1주일이 있었다. 정확히 어떤 요일에 어떤 요리가 나왔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렴풋이 기억하자면 이런 메뉴였다. 월요일은 감자 그라탕, 화요일은 감자 퓌레와 콩줄기, 수요일은 스테이크에 곁들여진 감자, 목요일은 식전 음식으로 감자수프, 금요일은 그냥 찐 감자와 찐 당근. 감자의 연속이었다. 넓디넓은 중국 평야에 나 혼자 서있는데 감자 대군이 저 멀리서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특히 금요일 저녁은 너무하다 싶었다. 내가 사는 곳이 가톨릭 기숙사이기 때문에 아무리 금요일에 고기를 안 먹는다지만, 어떻게 찐 감자와 찐 당근을 식사로 대체할 수 있겠는가. 하도 답답한 마음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옆에 있던 프랑스 친구에게 한 마디 했다. 


"혹시 프랑스 안에서 전쟁이 일어난 곳이 있어?"

"무슨 소리야, 전쟁이라니"

"우리나라에선 찐 감자를 전쟁통에 많이 먹었어"


프랑스 사람들은 감자를 자주 먹는다.


어떤 날은 내가 프랑스 친구들에게 두 팔을 걷어 한국식 감자 요리를 해준 적이 있었다. 먼저 프랑스 마트에 흔히 파는 잘린 베이컨과 대파를 송송 잘라서 냄비에 볶고 물을 부었다. 그리고 미리 잘라 놓은 프랑스 감자를 넣고 푹 익힌 다음, 물이 끓어오르면 간장과 마늘, 후추, 설탕 등을 넣고 양념을 해주었다. 누구나 아는 그 맛, 바로 감자조림이다. 우리네 식탁에 반찬으로 자주 오르기에 프랑스 친구들에게 이 요리를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프랑스 친구들은 게눈 감추듯 감탄을 하며 먹었다. 그중 식사 자리에 늦게 온 어떤 친구는 한참을 맛있게 먹더니 '이 요리 재료가 뭐냐'라고 뒷북치기도 했다. 내가 감자로 만든 요리인 걸 알려주자 '믿을 수 없다'며 그릇에 남겨져있는 소스를 휘적거리기까지 했다. 


친하게 지내자, 감자

프랑스 사람들은 분명 감자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것 같다. 이곳 사람들 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들이 모두 감자를 사랑한다. 유럽에서 감자는 어떤 존재일까. 내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에 방문했을 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 고흐가 가장 사랑한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 앞에서였다. 나는 '이때도 감자를 먹었는데 지금 사람들이 감자를 먹는 건 정상이구나' 싶으면서도 감자가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대중 음식이었다는 걸 알았다. 농부에게는 자신들이 땅을 일궈서 얻은 정직한 음식이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겐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귀중한 음식이었다.


빈 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아마도 감자의 역할은 변하지 않고 우리의 식사를 계속 풍성하게 채워주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감히 예상하건대 나는 오늘도 감자를 먹게 될 것이고 또 내일도 먹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감자가 어떤 존재인지 조금은 깨달았으니 감자를 너무 먹어서 내 얼굴이 감자가 될지언정, 감자와 친해져 보기로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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