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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곰 Nov 07. 2019

100인의 프랑스 사람을 위한 식사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아무리 프랑스 음식이 맛있더라도 한국 사람에겐 한국 음식이 제일이다. 종종 내 지인들이 "타지에서 아플 때 한국 음식이 생각나지 않냐"라고 묻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아플 때뿐만 아니라 매일 생각나는 게 한국 음식이다. 내 생에 한 번도 자취생활을 해본 적이 없지만 나는 요리하는 걸 꽤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 옆에 딱 달라붙어서 장도 같이보고 요리도 같이 했었다. 하얀 가루가 설탕인지 소금인지 맛을 보지 않고 단번에 알 수 있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호기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너무 신기했던 것이다. 같은 양념이라도 어떤 재료를 쓰냐에 따라 다양한 맛이 나오고 같은 음식이라도 누가 요리했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바뀌지 않는가. 그래서 한때 나의 꿈이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맛을 느껴보는 거였다. 그러나 이건 분명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맛은 어머니의 숫자와 비례하기 때문이다. 


붕어빵도 성공했다.

하지만 내가 요리하면서 분명한 점을 하나 깨달았다면, 음식의 맛을 가장 극대화시키는 방법은 바로 함께 나누어 먹을 때다. 프랑스에 와서도 종종 한국 요리를 해서 먹는데 혼자 방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며 먹는 것보다 식탁 위에 몇 가지 차려 놓고 친구들과 함께 먹는 게 더 맛있다. 대부분 친구들은 한국 음식을 전혀 모르기에 내가 요리한 한국 음식을 보면 감탄을 내지르고 만다. 음식에 펼쳐진 다양한 색깔에 한번 놀라고 맛에 두 번 놀란다. 그저 한국 음식이 일본 음식이나 중국 음식 혹은 베트남 음식이랑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의 생각을 많이 바꿔주었다. 


나는 매년 겨울에 김치를 직접 담가먹는다. 아시아 마트에 가면 한국에서 온 김치를 살 수 있지만 내가 직접 만들어 먹는 김치가 더 맛있고 경제적으로도 더 싸다. 김장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더 맛있는 김치를 담글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김장할 때 프랑스 친구들을 항상 초대한다. 열심히 버무리지 않으면 김장 후 먹을 수육의 개수가 적어질 거라고 으름장도 놓기도 한다. 물론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도 있다. 어떤 프랑스 신부님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식탁 위에 놓인 빨간 음식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당연히 토마토로 요리한 음식이라고 생각해서 한 숟갈을 크게 먹었는데 그 빨간 음식이 바로 김치였던 것이다. 한국의 매운맛을 혹독하게 치른 그 프랑스 신부님은 아직까지도 내가 한국 요리를 한다고 하면 김치는 빼 달라고 말한다. 


내가 프랑스에서 담근 첫 김치. 빨간 건 딸기가 아니고 유럽 무다.


100인을 위한 음식

내가 프랑스 사람들에게 처음 요리를 해준 건 성당에서 열린 한국 축제 때였다. 프로방스 시골에 있는 셉뗌 레발롱 성당(La Paroisse de Septèmes les Vallon)에 계셨던 한국인 신부님이 프랑스인 100명을 위해 요리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온 것이다.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흔쾌히 하겠다고 말했다. 프랑스 시골 사람들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행사를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미리 성당에 가서 재료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엔 나를 도와주던 프랑스 사람들도 있었는데 연신 채소를 다듬고 자르면서도 자신이 한국 요리를 한다는 게 신기한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채소는 왜 이렇게 길게 자르는 거야?"
"간장은 뭘로 만들어져?"
"불고기 이름의 뜻이 뭐야?"


나는 짧은 불어로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수십 년간 요리를 하며 살아온 마담들(Mesdames)이지만 음식의 의미부터 칼질 그리고 양념을 만드는 것까지 한국 음식을 배우려는 열정이 대단했다. 어떤 사람은 일일이 레시피를 종이에 적어서 나중에 혼자 요리를 시도해 보겠다고도 했다.  


축제 당일, 주일 미사 후 성당 옆 강당엔 약 100명의 프랑스 사람들이 모였다. 대개는 이 성당을 다니는 신자들이지만 한국 요리에 흥미를 갖고 호기심에 참석한 동네 주민들도 더러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엔 기대감이 한껏 묻어있었다. 이날 메뉴는 이러했다. 전식으론 떡국과 파전, 호박전을 준비했고 본식으론 비빔밥, 불고기, 잡채를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후식은 달콤한 쌀과자를 하나씩 나눠줬다. 축제에 술이 빠질 수는 없었다. 술도 역시 한국 소주와 막걸리를 준비했는데 막걸리 인기가 상당했다.


한국 축제의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연신 엄지 손가락을 올리며 최고라고 칭송했다. 나는 요리도 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축제의 모습을 비디오로 담았는데 몇몇 사람들의 인터뷰가 매우 흥미로웠다. 


"프랑스 음식은 감자가 주를 이루는데, 한국 음식엔 야채가 많아서 너무 좋아요."
"저는 채식주의자인데 프랑스 음식은 고기가 많아서 먹기 힘들었거든요. 이제 한국 음식만 먹을 거예요."
"한국 음식은 여러 재료가 잘 어우러져서 다채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 한국 축제 때 한국 음식을 먹는 프랑스 사람들의 인터뷰 영상 보기

https://youtu.be/kjY0Jqhkve0



요리 아뜰리에

또 나는 엑상프로방스 한글학교에서 1년간 교사를 했었다. 프랑스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요리 아뜰리에를 두 번 열었었다. 그동안 진행된 요리 아뜰리에가 대부분 김치였다는 얘기를 듣고 어떤 요리를 하면 학생들이 좋아할지 많은 시간을 고민했었다. 한글학교가 사용하는 시립 건물은 매우 노후화되어있어서 불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고기 요리였다. 프랑스 사람들이 고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도 이유였지만, 우리나라 고기 요리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양념과 함께 숙성을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업에서는 재우는 것까지만 진행했고 나머지는 집에 가서 직접 구워 먹으라고 일러줬다. 두 번의 아뜰리에 동안 첫 번째는 불고기를, 두 번째는 닭갈비를 요리했었다. 요리 아뜰리에의 반응은 꽤 좋았다. 첫 번째 아뜰리에 때 너무 많은 인원이 모여서 두 번째 때는 인원 제한을 했을 정도였다. 


엑상 프로방스 한글학교 요리 아뜰리에

아뜰리에가 끝나고 몇 주뒤, 한글학교를 다니는 어떤 만학도 학생이 나를 슬그머니 부르더니 책을 한 권 보여줬다. 한국 요리 레시피가 쓰여있는 프랑스 책이었다. 그녀는 프랑스 출판사에서 낸 이 책의 레시피가 정말로 한국 요리 레시피인지 확신이 안 들어서 가지고 왔다고 했다. 또 그녀는 요리 아뜰리에를 하면서 한국 요리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의 다양한 요리를 직접 해보자는 마음으로 이 책을 샀다고 했다. 어떤 학생은 한글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나에게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닭갈비 사진이었다. 그 학생은 자신이 배운 닭갈비 요리를 파리에서 알게 된 한국 친구들에게 해줬다고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무래도 몇 년 전부터 프랑스에 불어닥친 한류의 영향이 큰 작용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전에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이 가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으로 방탄 소년단이 프랑스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한국의 모든 것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 관심이 집중되면 집중될수록 나의 행동은 더 조심스러워진다. 내 모든 행동이 어쩌면 우리나라를 대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요리를 할 때도 프랑스 사람들 입맛에 맞게 퓨전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요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한국 요리를 하는 이유는 한국 요리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으뜸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나눠먹으면 더 맛있고 우리는 큰 친교를 나누게 된다. 오죽하면 가족을 표현할 때 함께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식구(食口)라는 표현을 쓸까. 나는 요리를 하면서 한국과 프랑스의 먼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하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음식만큼 가장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나름 외교관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면서 오늘도 나는 요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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