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한 대상의 유일함을 드러낸다. 이름을 들으면 정체성과 성격을 단번에 알 수 있고 머릿속으로 이미지화시킬 수 있다. 스스로를 홍보하는 걸(자기 PR) 최우선시 여기는 요즘 사회에서 이름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름이 곧 브랜드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내 이름의 주현은 한자 이름이다. 두루 주(周)에 솥귀 현(鉉)이라는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 뜻을 잠깐 살펴보면, 무쇠솥은 무척이나 무겁지만 열전달이 좋아서 요리하기에 안성맞춤이지만 그만큼 뜨겁고 함부로 만질 수 없다. 그러나 솥뚜껑에 톡 튀어나와 있는 작은 손잡이는 이상하리만큼 뜨겁지 않다고 한다. 이 손잡이를 일컫는 솥귀가 반드시 있어야만 무쇠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내 이름에는 작지만 두루두루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또 나는 그레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내 가톨릭 세례명인 그레고리오와 동물 곰을 합쳐서 만들어졌다.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학과에 다니던 동기 수녀님이 지어주셨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오는데 저 멀리서 동기 수녀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왔다. 아무래도 나를 부르고 싶은데 말하기가 답답했던 모양이다. 이내 헐레벌떡 뛰어온 수녀님이 대뜸 나에게, “너는 세례명이 너무 길어! 넌 곰 닮았으니까 이제 그레곰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레곰이 되었고 이 별명으로 나를 소개할 때 브랜딩할 수 있는 좋은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어쩌면 이름보다 서로 호칭을 부르면서 높낮이 계급을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어디서든지 먼저 눈에 띄는 건 회사에서 볼법한 조직도뿐이다. 우리는 누가 직책상 높은 위치에 있는지 자동으로 찾아보게 된다. 직책에 따른 호칭은 효율적인 일의 분배와 진행을 위해 만든 임시적인 이름일 뿐 호칭이 이름보다 앞서 사람대 사람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없지 않을까. 또 우리는 이름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서로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이름을 호칭보다 더 우선시 여긴다고 해서 상대방을 편하고 막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그 성격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서상, 서양처럼 평등한 위치에서 살아가는 관계가 되지는 못할지언정, 동등한 인식에서 서로 존중하는 관계로 사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