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0일부터 26일까지 이탈리아 로마에 다녀왔다. 2027년 서울에서 세계청년대회(WYD)의 본격적인 준비 시작을 알리는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특별히 WYD의 상징물이라고 부르는 '십자가'와 '성모 이콘'을 서울에 전달하는 세리머니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있었다.
WYD의 기원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젊은이들에게 아주 큰 나무 십자가를 건네주며 세계 젊은이들의 상징으로 세웠다. 또한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성모 마리아께 도움을 의탁하는 마음으로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있는 성모 이콘을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번 건네줬다. 이 이콘은 '로마 백성의 구원 성모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던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나를 포함하여 약 30여 명에 이르는 대표 청년을 선발하여 순례단을 구성했다. 나는 차기 WYD 개최지인 서울대교구를 대표했다.
상징물 전달식이 있던 날은 가톨릭교회 전례력으로 '그리스도왕 대축일'이었다. 동시에 39번째 세계 젊은이의 날을 기념했다. 우리는 이날을 위해 가장 좋은 옷,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한복을 입었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중심지에서 우리를 잘 드러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미사 시작은 아침 9시 반, 우리는 8시까지 대성전 안에 입장했다. 나를 포함한 일부 청년들은 미사 중에 교황님 앞에서 펼쳐진 전례 예식 담당자로서 사전 연습도 해야 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연습한 예식을 하나씩 되새기던 찰나, 우리는 단체로 어디론가 불려 나갔다. 일렬로 줄을 지어 성당을 가로질렀고 울타리가 쳐있는 뒤편 공간에 들어갔다.
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거동이 불편한 탓에 휠체어에 앉아계셨지만 우리를 한 명씩 바라보며 웃음으로 맞이해 주셨다. 그분은 언제나 젊은이들과 아이들에게만큼은 귀까지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로 큰 미소를 지어주신다. 하얀 수단을 입은 교황님, 어두운 공간에 홀로 빛나보였다. 나는 그 빛에 압도되어 기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방방 뛰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옆에 있는 동료 청년들을 치댈 수도 없었다. 두 손을 가뿐히 모으고 교황님을 응시하며 차분히 인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씩 인사를 해주기 위해 다가오셨다. 원래 나는 이따 거행될 미사 봉사자로서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제단 제일 끝 쪽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교황님이 계시는 곳으로 이동하면서도 제일 마지막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교황님께서 나의 아쉬운 마음을 알고 계셨을까? 내가 서 있는 끝 자리에 먼저 오셔서 인사를 하기 시작하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붙잡고 눈을 빤히 바라보며 미소로 인사하셨다.
나의 순서가 왔을 때, 나는 교황님께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다' 했다는 것은 단순히 한 문장이 아니라 여러 말을 길게 했다는 뜻이다. 교황님의 손을 잡고 악수하자마자 이탈리아어를 더듬거리며 한 마디씩 말을 건넸다. "교황님, 당신과 대화하기 위해 이탈리아어를 몇 개월간 공부했었어요!"
사실이다. 나는 언젠가 써먹을 날을 위해 지난여름과 가을 동안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 교황님은 내 말을 곧장 잘 알아들으시고 다른 한 팔을 꽈악 잡으시며 "잘했어요! 훌륭해요!" 라며 끄덕이셨다. 나는 여기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저는 지난 2016년 WYD부터 매번 봉사를 했는데 이제 2027년 서울을 위해 봉사를 열심히 할게요!"
그런데 교황님의 휠체어를 잡고 있던 경호원이 갑자기 앞으로 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으니 말을 끊으라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갑자기 하던 말을 끊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교황님께서 아직 내 손을 잡고 계셨다. 나는 재빨리 하던 말을 속사포로 내지르며 마칠 수 있었고 교황님은 다시 한번 "아주 좋아" 라며 화답을 해주셨다.
교황님께서는 함께 했던 청년들과 모든 인사를 마치시고 우리들과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하셨다. 그런데 다시 한번 영광스럽게도 내 옆자리에 오셔서 사진 대형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나는 쭈뼛거리는 다른 청년들에게 교황님 곁에 모이자고 제안했고, 또 일부에게는 교황님 앞에 앉아보라고 말했다. 교황님께서는 먼저 양손을 펴시며 손바닥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나는 재빨리 교황님의 손을 붙잡았고 그 상태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사실 내 순간적인 아이디어로는 교황님께 손가락하트(코리안 하트)를 알려드리며 같이 손짓하게끔 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바쁜 교황님께는 시간이 없었고 나만 손가락 하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손 감촉이 느껴진다. 그분의 인자한 표정, 젊은이들과 함께 했을 때 나오는 특유의 제스처가 생생하다. 엄지 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우며 '최고'를 연신 외치는 모습, 무엇보다 자신을 낮추고 호탕하게 모습을 보이시는 게 감동적이었다.
사실 교황님을 만난 건 처음이 아니다. 두 번째다. 처음 교황님과의 만남은 작년 9월 16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석상을 세웠을 때다. 이날 나는 교황궁 접견실에 들어가서 교황님과 처음으로 안수하며 인사를 드렸다. 생애에 교황님을 한 번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나는 두 번이나 만났다. 또 만날 수 있을까?
교황님께 받은 묵주로 그분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