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말, 내 생애에 첫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누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지 알 수 없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봐주었다. 아무래도 남프랑스에서 홀연단신 살았던 한국인의 이야기가 없으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싶다. 더욱이 몇 년 전부터 남프랑스로 향하는 한국인이 늘어났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웬만큼 파리에 간 경험이 있으니 다른 지역으로 눈길을 돌려보려는 시도일 것이다. 또 마침 넷플릿스에서 '에밀리, 파리에 가다' 드라마가 크게 성공했고 그 에피소드 중 일부가 바로 남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조금씩 우리 주변 사람들이 시선을 달리하고 파리가 아닌 남프랑스를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퍽 좋아 보인다.
나에게는 소소하지만 변화가 생겼다. 이곳저곳에서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라고 하면 어릴 때 즐겨 읽었던 박완서, 공지영, 김영하 등 여럿 소설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책으로 나에게 간지러운 재미를 줬던 그 사람들의 타이틀을 내가 갖게 되다니, 거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작가가 아닌 건 아니니까 굳이 거부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몇몇 매거진과 출판사 혹은 웹진에서 글을 써줄 수 있겠냐는 원고 청탁 문의가 들어왔다. 브런치와 네이버를 통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메일로 공무적인 어투의 대화를 하다가 이윽고 휴대폰을 들어 서로의 연락처를 물어본 뒤 목소리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자보다 전화를 선호한다. 아무래도 한정된 문자로 서로 간의 생각과 의미를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여러 곳에서 나에게 바라는 점 중 내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작가님의 미발표된 글'. 어느 플랫폼이건 세상에 빛을 내보이지 않는 글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순간을 내 기억주머니에 다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행히 지금까지 한 번도 이야기가 겹치거나 비슷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내 글로 써 내려갔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해온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일기 쓰는 걸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자기 전에 일기를 쓰려고 종이를 넘기다가 아무런 글도 쓰지 못하고 확 덮어버린 게 부지기수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다가 다시 종이에 오늘 있었던 일을 글로 쓰려니 아무래도 같은 작업을 반복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통꽂이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만년필과 여러 펜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손가락에 힘을 주어 종이에 꾸역꾸역 일기를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시간이 오면 과거에 해왔던 습관이 바뀌기 마련이다. 주머니 안에 많은 걸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게 한 가지가 있다면 주머니에 넣지 않아서 버렸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도전을 하며 설렜던 마음, 그 당시에도 새롭게 배우며 익혔던 기술, 도전을 이뤘을 때 기뻤던 순간 등 우리가 거쳐왔던 시간의 굴레는 결코 버려지지 않는다. 단지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게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해 봤을 때 여러 경험과 지식, 기술 안에서 몇 가지를 추릴 뿐이라고 생각한다.
첫 책을 출판한 뒤, 변화된 상황을 받아들이며 나는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일지 고민해 본다. 그리고 수없이 쌓아온 여러 경험과 지식, 기술 중에 몇 가지를 끄집어 내본다. 어쩌면 이게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만약 도움이 안 된다면 멈추고 다시 필요한 걸 생각하면 된다.
나는 이렇게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곧 출판된 두 번째 책과 함께, 다시 변화될 내 상황을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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