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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Dec 02. 2020

[일편단상一篇短想] 하루 한 편 짧은 생각


십이월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둘째 날이고요.  

어제는 새로운 달을 맞이하여 하루 한 편씩 꾸준히 단편소설을 읽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올해는 사놓은 단편소설집이 여러 권 있습니다.

그런데 읽은 지가 오래되니 이야기가 잊히고 맙니다.

좋았던 이야기, 기억하고 싶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요.

얼마 전에 새로 사둔 단편소설집도 몇 권 있고요.

그래서 십이월 동안 서른 개의 단편소설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하루 한 편 짧은 생각

- 짧은 생각이라도 글로 남기고 난 후에 마음 속에 오래 간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크림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 문학동네, 2020.



그녀에게 미움을 살 만한 짓을 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남의 마음을 짓밟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내거나, 불쾌감을 안겨 주거나 한다. 그렇게 아주 없다고는 못할 몇 가지 원망의 가능성을, 생겼을지도 모르는 몇 가지 오해의 가능성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내가 수긍할 만한 것들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감정의 미로를 수확 없이 왕복하는 사이, 내 의식의 표지판을 놓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39-40


화자는 열여덟   겪은 기묘한 이야기를 아는 동생에게 들려줍니다. 우연히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닌 여자애로부터 피아노 공연에 초청을 받고 찾아갔다가 겪은 일이었습니다. '우연'  단추가 되어  다른 '우연' 불러옵니다. 우연히 생긴 일들 중에는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이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요.   이야기  화자는 연속되는 우연들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을 놓치기도 하고요.


지난   동안 일어난 일들 중에 제가 기억 속에 놓치고 있는 일들 있는지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미움을  만한 짓을 저질러 놓고 정작 스스로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은  같습니다. 머릿속을 뒤적여 보면 흐려졌던 일들이 하나씩 선명해지기 시작하고. 본의 아니게 지각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소중히 아끼는 대상에게 마음을 다하는 일에 게을르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기억들을 꺼내다 보면  자신이 아직 나잇값도 못한다는 생각이  만큼 부족한 사람이란  깨닫고 맙니다. 너무나 창피하고 차마 이야기하기도 부끄럽고 누군가에게 실망을 주고 미안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생각 끝에는  혼자서 '감정의 미로'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렇다. 모든 것은 수수께끼의 고대 문자처럼 해독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그때 일어났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설명이 안 되는 사건이었고, 열여덟의 나를 깊은 당혹과 혼란에 빠뜨렸다. 잠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 정도로. 47-48


그런 일(들)이 혹시 여러분에게도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주말 동안 만난 친구가 알려 준 <퀸즈 갬빗>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체스 게임을 소재로 하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인데요, 체스 게임을 마치고 나면 주인공 베스 하먼은 방 안으로 돌아와 혼자서 이미 마친 게임을 복기합니다. 체스 선수들에게는 게임에서 어떤 수가 잘못되었는지 혼자서 시간을 들여 복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같은 실수를 안 할 수 있고 상대의 수를 읽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먼은 체스가 좋은 이유에 대해 "64개의 칸으로 이루어진 작은 세상은 안전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는 기물들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부대껴야 하니 충분히 예측가능하거나 규칙적인 일만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불가사의한 뜻밖의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많은 일들 중에서 나에게 '크림'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인 '크림'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소설을 함께 읽어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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